이런 고민을 담아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디지털 형태의 새로운 화폐(CBDC) 도입을 실험한다. 동전, 지폐가 아닌 새로운 단위의 ‘사이버 머니’다. 내년 말 CBDC를 기반으로 실제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금토큰도 발행된다. 은행에 있는 돈을 예금토큰으로 바꿔 여러 결제 과정에서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다는 구상이다.
일러스트=이은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장막 걷힌 CBDC 활용성 테스트, 한국은행·금융당국·시중은행 손잡고 디지털 화폐 실험
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 4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서울 중구 한은 통합별관에서 열린 CBDC 활용성 테스트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금융당국은 한국은행이 시중 은행들과 CBDC 활용성 테스트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과 함께 CBDC 활용성 테스트에 나선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라며, IT 강국으로서 이점이 부각됐다고 소개했다.
CBDC가 뭐길래 활용성 테스트에 관련 규제까지 풀어주는 걸까?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새로운 화폐를 의미한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동전(주화), 지폐(은행권)가 아니라 새로운 단위의 사이버 머니로 이해하면 쉽다. 한국은행이 발행·보증하기에 민간에서 발행한 스테이블코인과도 다르다.
우리는 이미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 뱅킹을 이용해 돈을 송금하고, 페이서비스로 대금을 지불한다. 디지털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가상자산으로 은행을 통하지 않고 전 세계에 돈을 보내기도 한다. 이 과정을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게 CBDC의 핵심이다. 물론 CBDC가 도입되면 민간 지급, 결제 부문이 위축되거나 금융기관의 신용창출 기능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번 활용성 테스트에는 시중은행들도 참여한다. CBDC는 기관용 CBDC와 범용 CBDC로 나뉘는데, 이번 활용성 테스트는 기관용 CBDC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기관용 CBDC는 금융기관 간 자금거래 및 최종 결제 등에 활용돼 시중은행의 공조가 필요하다.
방법은 이렇다. 은행들이 보유해야 하는 지금 준비금 일부를 화폐가 아니라 CBDC로 예치하는 방식이다. 은행은 예금자들의 인출 요구에 대비해 예금액의 일정 부분 이상을 한국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한다. 이후 CBDC를 보유한 은행들이 이를 기반으로 예금토큰을 발행해 고객들의 전자지갑에 보낸다.
중앙은행 CBDC 운영방식. /국제결제은행(BIS)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CBDC 기반 예금토큰, 어디에 쓸까?...혁신·창조 기대하는 한국은행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다수 은행들이 CBDC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도입한 나라도 있다. 지난 2020년 바하마에서 범용 CBDC를 가장 먼저 도입했는데, 실제 이용량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지리아, 중국에서도 CBDC가 활용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관용 CBDC 활용성 테스트의 일환으로 내년 말부터 예금토큰 발행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116억원의 예산을 들여 이달 내 시스템 개발 사업자, 은행 대상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예금토큰을 발행할 은행, 고객 기준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만약 CBDC 기반으로 예금토큰을 받는다면, 어떤 이점을 누릴까. 우선 은행이 만든 예금토큰이 개인 전자지갑에 들어있는 생소한 경험을 할 수 있다. CBDC 테스트에 참여한 은행들은 보유한 CBCD를 기반으로 각각 예금토큰을 발행한다. 현재 은행 고객들은 예금통장에 있는 현금을 이용하는데, 이와 비슷하다. 비트코인, 스테이블과 달리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같은 CBDC를 예치하더라도 각 은행마다 다른 예금토큰이 발행될 수 있다. 이에 한국은행은 예금토큰 간 거래가 막히지 않도록, 중앙은행 시스템 안에서 서비스가 오갈 수 있도록 테스트할 예정이다. 예금토큰을 현재 수시입출식 예금과 가깝게 설계해 다른 사람에게도 토큰이 이전되도록 구현할 전망이다. 이어 테스트 기간 예금토큰 이용자는 언제든 은행 예금으로 다시 전환하도록 만들 예정이다.
아직 CBDC 활용성 테스트 준비 기간이어서 결제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는 게 한국은행 측 설명이다. 결제 아이디어 키는 시중 은행들이 쥐고 있다. 시중 은행들이 CBDC를 기반으로 자체적으로 예금토큰을 만들고, 이를 고객들이 사용하도록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간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결제 아이디어·혁신 서비스가 나올 것이라고 한국은행은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토큰증권(STO)에도 예금토큰이 사용될 수 있다. 은행·증권사는 STO 결제를 위해 블록체인망을 만드는데, 실시간으로 STO 거래와 대금 결제가 가능하도록 외부 연계시스템을 만드는 게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이밖에 재난지원금, 중고차 매매, 부동산 거래, 게임 아이템 등 중간 비용이 많이 들고 거래자가 확인해야 할 게 많은 거래에서 특히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전망했다.
곧 CBDC로 게임 아이템을 결제하는 세상이 올까? 다만 한국은행 측은 CBDC 활용성 테스트일 뿐, 당장 도입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바하마, 나이지리아, 스위스, 중국 등에서 범용 CBDC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실제 활용성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한국은행은 주요국 상황 고려,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기술적으로 테스트를 해보고 우려 사항을 해소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인아 기자(inah@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