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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가면 ‘사왓디’, 우리말로 ‘안녕’이란 말로 인사해. 태국에 가지 않아도 사왓디라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어. 아랫동네 다문화 여인은 태국에서 왔대. 맛난 국물요리 ‘똠얌꿍’을 만들려고 식자재 마트에 왔는데, 누가 신청을 안 해주는 모양이었다. “오케이 일루 와봐쇼잉. 새우도 있고 뭣도 있고 다 있지만 라임은 없어요. 레몬을 대신 쓰면 되겠죠 뭐.” 분홍빛깔 플루메리아가 가득 핀 고향집을 그리며 만들어 먹었을 똠얌꿍. 플루메리아 꽃말은 ‘당신을 만난 건 행운입니다’. 꽃들도 반기며 ‘사왓디 사왓디’ 인사하는 그쪽 동네 생각을 잠깐 했어.
한번은 읍내 다문화 행사위원장을 맡았었는데, 생김새도 다문화처럼 생긴 나는 ‘자연스럽다’는 눈치였다. 행사마다 나타나던 꼬마 녀석이 길에서도 반갑다며 인사를 했다. 그 아이 엄마도 고향이 태국인가 그랬어. 우리나라도 스무 명 중에 한 명이 이주민. 부글부글 부엌에서 카레가 끓는지 냄새가 좋아라. 카레가 끓는 연기인지 하얀 민들레 홀씨가 하늘로 날아가네.
명절 쇠라고 누이들이 가져다준 나물 반찬. 요걸 재료로 날마다 비빔밥 볶음밥, 좀 질리려고 하네~. 볼록했던 배가 금세 오목하게 꺼져. 읍내 베트남 쌀국수 전문집이 있는데, 베트남 가족분이 운영한다. 그쪽으로 한번 행차했지. 추천하더라만 나는 매워 먹지 못하는 국수 ‘분보’, 다음에 꼭 도전해 봐야지. 좋아하는 생코코넛 주스도 팔아. 코코넛 통째로 달라고 했더니 “한국말을 참 잘하시네요?” 그런다. 시커멓게 타서 선글라스를 끼고 갔더니 딴 나라 사람인 줄 알았나 봐. 그래도 미국인처럼 안 생겨서 동남아 친구들이랑 같이 멸시 천대(?)를 받으니 마음이 편해.
말이 서툰 이주민이 슈퍼에 가서 ‘빵이랑 우유’ 달라고 하면 ‘바나나 우유’를 쥐여 주더란 얘기, 시어머니에게 요쪽 말로 엄니라고 해야 하는데 입술이 잘 안 닫히니 ‘어니(언니)’라고 부르면서 지낸다는 얘기. 장편소설보다 길고 긴 얘기를 여기에 어찌 다 풀어 옮기랴. 그리움과 사랑, 용기와 도전, 슬픔과 기쁨의 시간들.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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