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중국 항저우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 중국과의 경기. 전반 홍현석이 선제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이 경기 뒤 다음 응원페이지엔 해외 IP를 통한 클릭이 쏟아졌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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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된 포털사이트 ‘다음’의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응원페이지 여론조작 의혹과 관련해 해외 IP를 통한 매크로(자동화 프로그램) 조작 정황이 포착됐다. 4일 ‘다음’ 운영사인 카카오는 한·중 축구대표팀의 아시안게임 8강전이 끝난 지난 1일 저녁 이후 다음 응원페이지에 네덜란드와 일본의 2개의 IP에서 1989만건의 매크로를 활용한 응원 클릭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수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으로부터 이같은 내용의 현안보고를 받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회적 재앙”이라며 “과거 드루킹 사건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통위를 중심으로 여론 조작 왜곡 방지를 위한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신속하게 꾸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 위원장은 국무회의 보고 뒤 기자들과 만나 “이런 것을 방치하면 바로 국기 문란 사태가 된다”며 “이번 건은 응원 댓글 이야기이지만, 이런 사태가 매크로 기술을 동반해 선거 때나 긴급 재난 시, 금융 시장에서 엄청난 충격을 주는 사태로 일어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서 ‘차이나 게이트’란 의혹까지 제기한 이번 사건은 지난 1일 한국 축구대표팀이 중국을 2대 0으로 꺾은 뒤 벌어졌다. 당시 다음 ‘응원페이지’엔 총 3130만건의 클릭 응원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 중국 응원이 2919만건(93.2%)으로 한국 응원인 211만건(6.8%)보다 압도적으로 높아 논란이 됐다. 중국은 다음 접속이 차단된 국가다. 이전 다른 축구 경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지난달 30일 북한에 4대1로 패한 여자 축구팀 8강전 경기에서도 한국을 응원하는 비율(25%·22만회)은 북한을 응원하는 비율(75%·65만회)보다 훨씬 적었다. 지난달 28일 조별리그 홍콩전에서도 한국은 9%(11만회), 홍콩은 91%(117만회)의 응원을 받았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한 총리는 이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게 포털 조작 의혹 관련 범부처 TF구성을 지시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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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커지자 카카오는 한·중 8강전 응원페이지 3130만건의 클릭 가운데 2294만건에 대해 IP 주소를 긴급히 확인해 방통위와 국회에 보고했다. 조사 결과 네덜란드의 1개 IP에서 1539만건의 클릭이, 일본의 1개 IP에서 449만건 클릭이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카카오에 따르면 두 IP로부터의 접속은 경기가 끝난 2일 새벽 0시 30분부터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카카오는 “분석결과 한·중 8강전 클릭 응원 수의 이상 현상은 이용자가 적은 심야시간대 2개 IP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들어낸 이례적인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서비스 취지를 훼손시키는 중대한 업무방해 행위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국 응원이 실제 네덜란드와 일본에서 발생한 것인지, 혹은 중국이나 북한 등에서 시작돼 단순히 두 나라의 인터넷을 경유한 것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정 세력의 조작이라 판단하기엔 대량의 클릭이 벌어졌다는 것 외에 명확히 드러난 건 없는 상태란 뜻이다.
카카오에선 클릭 응원이 로그인이나 횟수 제한이 없이 가능해 벌어진 일이라 해명했지만, 방통위는 “우리나라 포털 서비스들이 특정 세력의 여론 조작에 취약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란 입장이다. 이 위원장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국민 75% 이상이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다”며 “여론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채 여론을 왜곡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과 같다”고 카카오를 질타했다. 방통위는 법무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함께 범부처 TF를 꾸려 재발 방지 및 관련 법안 마련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의 모두 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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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선 정부가 이번 사안에 대해 ‘국기문란’과 ‘사회적 재앙’이란 표현까지 쓰며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을 두고 ‘드루킹 여론조작의 트라우마’ 때문이란 말도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린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2017년 19대 대선 기간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8800만건의 온라인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징역 2년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드루킹(본명 김동원)도 3년 선고를 받고 지난 2021년 3월 만기 출소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 조작에 취약한 포털의 약점이 또다시 드러났다”며 “확실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총선에서 어떤 일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이 위원장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이미 드루킹 사태를 비롯해 가짜뉴스에 의한 대선 조작 시도 등 사회적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의 배후는 경찰 수사를 통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후 실태 조사를 통해 다음과 카카오에 대한 엄중한 제재 필요성도 언급했다.
드루킹 댓글 문제로 대법원에서 징역2년을 확정 받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지난 2021년 7월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재수감 전 소감을 말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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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도 ‘드루킹 대선조작 재발’ 우려를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성중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특정 반국가세력들이 국내 포털을 기점 삼아 광범위한 여론조작을 하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라며 “이러한 매크로 조작 행위 등은 8800만개의 댓글을 조작한 드루킹처럼 여론을 조작하는 데 쓰이는 교묘한 도구들”이라고 말했다. 이에 여당에선 댓글 국적표기법 등 관련 법안을 추진 중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올해 초 인터넷 댓글 작성자의 국적을 표기하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야당은 정부와 여당의 ‘포털 옥죄기’라고 반박했다. 최민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포털에서 중국 응원 비율이 높았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조작 운운하는 것은 호들갑”이라며 “포털을 검열하고 여론을 통제하기 위한 억지 근거로 삼으려는 속셈을 모를 것 같으냐”고 날을 세웠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권이 정치적인 의도에서 이 문제를 크게 쟁점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 것이다. 최 대변인은 “국민의 커지는 질타에 잘못된 국정운영을 되돌아보지는 못할망정 언론의 입을 막고 국민의 소통창구인 포털을 통제하려고 달려든다”며 “무너진 경제를 바로잡고 파탄 난 민생을 돌보는 데 집중해달라”고 말했다.
박태인·김정재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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