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 로이터=연합뉴스 |
“확실히 문제가 있긴 있습니다. 다만 단순히 출시 초기 해프닝으로 끝날지, 앞으로 정보기술(IT) 역사에서 반도체 업계의 변곡점으로 기록될지는 지켜봐야지요.”
애플의 신형 아이폰15 시리즈가 추석 연휴 직후 국내에 상륙한다. 애플은 오는 13일부터 아이폰15 시리즈의 국내 공식판매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12일(한국시간) 아이폰15 시리즈를 전 세계에 공개한 지 한 달여 만이다.
애플이 지난달 12일 공개한 신형 아이폰15 프로·프로 맥스. 사진 애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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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첫 입장 낸 애플 “과열 인정...곧 해결”
곧 국내에서도 판매될 아이폰15 시리즈를 둘러싼 분위기가 묘하다. 당장 고급형 모델인 프로·프로맥스에서 내구성이 강하고 가벼운 티타늄 소재가 처음으로 채택됐지만 오히려 전작에 비해 충격 흡수성이 약해졌다는 실험 결과가 나오며 논란을 자초했다. 탄소중립을 내세우며 선보인 59달러(약 8만원)짜리 친환경 소재 케이스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올해 최악의 실수”라는 조롱을 들었다.
무엇보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운 제품)’로 불리던 애플의 신형 3나노미터(㎚·1㎚=10억 분의 1m)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A17 프로’의 데뷔전이 시작과 동시에 발열 문제로 얼룩졌다. 애플은 1일(한국시간) 이와 관련한 첫 입장을 내면서 아이폰15 시리즈 과열 현상을 인정하고 곧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아이폰15 시리즈 중국 출시 첫날인 지난달 22일 베이징 싼리툰 애플스토어 앞에서 신형 아이폰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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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케이스는 올해 최악의 실수” 조롱
미국·영국·일본·중국 등 1차 출시국의 공식 발매일인 지난달 22일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아이폰15 시리즈의 발열 논란이 불거진 상태다. “게임 실행 30분 만에 온도가 섭씨 48도까지 치솟았다”는 폭로를 시작으로 IT 전문 유튜버를 넘어 해외 유력 매체들 사이에서도 ‘아이폰 발열(iPhone15 overheating)’ 키워드 관련 기사가 쏟아졌지만 애플은 그동안 침묵해왔다.
출시 초반부터 비정상적인 발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논란이 커지자 삼성전자가 갤럭시 S22 시리즈에서 호되게 당했던 ‘GOS 사태’ 까지 소환됐다. 스마트폰이 어딘가에서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발열 논란의 ‘범인’이 아직도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티타늄 소재로 바뀌면서 열을 막지 못한 것이라는 단순 추측에서부터 칩 설계와 생산에서 결국 문제가 터졌다는 확신에 찬 주장까지. 이제 어디서 문제가 비롯됐는지에 따라 애플과 칩 제조업체인 대만 TSMC, 라이벌 삼성전자의 희비가 엇갈릴 만큼 판이 커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아이폰15 시리즈 발열 논란의 원인으로 크게 4가지가 꼽힌다. 경우의 수에 따라 반도체 업계에 미칠 파장 또한 제각각이다. 하나씩 짚어봤다.
김경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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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늘 있었던 일…곧 해결책 찾을 것”
첫 번째 추측은 단순 최적화 문제다. 출시 초기 운영체제(OS) 등에서 최적화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로 인해 발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애플답지 못했다”는 질책은 듣겠지만, 자체 업데이트 등을 통해 한두 달 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큼 애플이 받을 타격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애플 로고.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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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애플은 이날 발열 논란 일주일 만에 첫 성명을 내고 “최신 운영체제(iOS 17) 소프트웨어 버그와 일부 타사 앱으로 시스템 과부하가 걸리면서 기기 설정과 사용자 데이터 복원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처음 사용하는 며칠 동안 기기가 뜨거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발열 현상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충분히 자체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업데이트가 언제 가능한지 구체적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보다 구체적인 증언도 처음으로 나왔다. 애플에 정통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아이폰15 시리즈에 탑재된 D램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LPDDR은 전력 소모를 최소화한 저소비전력 메모리 반도체(D램)로, 주로 모바일 기기에 쓰인다. 그는 “이번에 탑재된 D램 규격에서 업그레이드가 있었다”며 “데이터 처리속도를 맞추기 위해 전력 소모가 커졌고, 그 과정에서 발열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한두 달 내로 해결 가능한 문제”라며 다른 가능성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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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애플 설계 역량에 한계 온 것인가
애플의 이날 첫 해명과 달리 단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다음으로 꼽히는 건 애플의 설계 역량 부족이다. 애플의 모든 기기에 들어가는 AP 칩은 애플실리콘이 설계해 외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에 생산을 맡긴다. 애플실리콘은 엄청난 성능의 자체 설계 칩을 잇달아 완성하며 운영체제인 iOS와 함께 애플을 오늘날 스마트폰 최강자 자리에 올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명성에도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당장 애플실리콘을 이끌어온 핵심 설계 인력이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으로 연달아 옮겨가며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이에 애플실리콘의 설계 실력이 예전만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TSMC 로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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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SMC의 추락?…삼성엔 기회 될 수도
가장 뜨거운 이슈는 위탁생산을 맡은 대만 TSMC의 3나노 공정 문제다. 말 그대로 TSMC가 칩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추측이다. TSMC의 첫 3나노 노드인 N3의 수율과 성능 문제는 아이폰15 공개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문제다. 이에 퀄컴 등 대부분의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업체) 고객들이 애플과 TSMC의 N3 공정 생산결과를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TSMC의 3나노 공정 수준이 실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경쟁사인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다. 그간 양사는 애플이라는 초우량 고객을 두고 경쟁을 벌여왔다. TSMC는 과거 16나노 공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들고나오며 삼성전자의 애플 물량을 뺏는 데 성공했고, 기세를 몰아 전 세계 1위 파운드리에 등극했다. 삼성은 TSMC의 허점을 파고들어 주요 고객사를 유치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이 지난 6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3'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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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옥의 3나노’…“실력으로 극복해야”
마지막 경우의 수는 세 번째 추측의 연장선에 있다. TSMC 공정 자체의 문제를 넘어 애초에 ‘3나노의 벽’이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그동안 반도체 업계에서는 회로 선폭을 나노미터 단위로 좁히는 식으로 성능을 끌어 올려왔다. 하지만 지금껏 해왔던 방식으론 1.8나노 이하 공정에서 어느 순간 물리적 한계점에 도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반도체의 세계에서도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셈이다. 업계에서도 최첨단 공정으로 갈수록 성능 향상 폭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미세공정으로 갈수록 전원 전압을 얼마나 더 떨어뜨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면서 “3나노 수준으로 내려가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라 말했다. 애플은 A17 프로의 중앙처리장치(CPU) 코어 성능은 전작인 A16 바이오닉 대비 약 10% 향상됐다고 밝혔다.
이 경우 삼성 입장에서도 위기이자 역전 기회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3나노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한 발짝 먼저 게이트올어라운드(GAA)라는 새로운 기술을 TSMC보다 도입했다.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는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사장이 지난달 언급했던 ‘GAA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한 창조자로서의 이점’이 나타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애플스토어에 신형 아이폰 15 프로가 전시되어 있다. 이희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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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 아이폰 발열 논란에 대해 전문가들은 애플이나 TSMC의 실책 여부와 상관없이 삼성 스스로가 실력을 입증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의 3나노 수율이 양호하다는 분석도 있지만 TSMC처럼 AP 칩을 양산하면 실제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삼성에도 기회는 곧 찾아오겠지만 3나노 공정을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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