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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가속화한 러-우전쟁…종전 열쇠는 '영토' [창사 기획-세계의 영토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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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침공 7개월 만에 영토 20% 흡수

서방 맞서 북·중·러 결속…브릭스 등 勢 결집

영토 문제 풀려야 평화협상…돌파구 요원

뉴시스

[서울=뉴시스]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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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러시아에 새로운 4개 지역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힘과 수단을 동원해 우리 영토를 지킬 것입니다."

지난해 9월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4개 지역 합병을 선언한 연설의 일부다. 푸틴 대통령은 37분 간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이른바 돈바스 지역으로 불리는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그리고 남부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병합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2014년 크름반도(크림공화국 및 세바스토폴)에 이은 강제 합병이다.

서방 군사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東進) 저지와, 이른바 동부 돈바스 지역 해방을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2022년 2월24일)한 지 7개월 만이었다.

러시아, 침공 7개월 만에 4개 지역 합병…우크라 영토 20% 흡수


영국 BBC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가장 큰 영토 침탈"로 규정한 이 사건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 약 11만㎢를 가져갔다.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60만㎢)의 20%에 육박하며, 남한 면적(10만㎢)과 맞먹는 규모다.

해당 지역 인구는 약 700만 명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의 16% 정도다.

병합은 며칠 만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러시아는 그해 9월 ▲23일~27일 러시아 편입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 ▲편입안 가결 ▲4개 지역 친러 군정, 러시아에 합병 요청 ▲29일 러시아, 4개 지역 독립국으로 선언 ▲30일 푸틴 대통령, 합병조약 체결 등의 절차를 거쳐 합병을 공식 선언했다.

이어 ▲10월 2일 러시아 헌법재판소, 조약 합헌 결정 ▲3일 러시아 하원, 만장일치 비준 ▲4일 러시아 상원, 만장일치 비준 ▲5일 푸틴 대통령, 합병 문서 최종 서명 및 발효까지 마쳐 모든 법적 절차를 마무리했다.

주민 투표는 각 78%~97% 투표율과 87%~99%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당시 총을 든 군인과 함께 투표함을 들고 가정을 방문하거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접지 않고 넣게 한 사례들이 보고되면서 사실상의 공개·강제 투표란 비판이 일었다.

국제사회는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들 지역을 러시아연방 헌법 65조 1항에 포함함으로써, 행정구역이 89개가 됐다고 공표했다.

다만 행정구역 경계선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고,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기존 러시아군 점령지 경계도 계속 바뀌고 있다. 이와 관련 러시아는 합병 조약에 따라 '러시아연방에 가입하고 승인받은 날'을 기준으로 경계를 정할 것이라고 했었다.

러시아는 통합 선거의 날인 지난 8~10일 실시한 전국 지방선거에서 이 지역들을 처음으로 포함했다.

뉴시스

[모스크바=AP/뉴시스] 러시아 정부는 19일(현지시간) 중국과 새로운 무비자 단체관광을 개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3년 3월22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중.러 관광의 해 개막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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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심화…서방 vs 북중러 대결 구도 심화


러·우 전쟁은 영토 분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패권 경쟁과 신냉전이라는 숨 막히게 치열한 물밑 싸움이기도 하다.

여느 영토 분쟁이 그렇듯 이 지역도 정치·경제·지정학적 함의가 깊다.

러시아로선 나토 최전선과의 완충 지역이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시작할 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러시아 인접국 내 나토 무기·병력 철수' 조건으로 내걸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헌법에 명시하고 추진해 왔다.

러시아는 또 '돈바스 지역 해방'을 침공 명분으로 삼았었다. 2014년 발발한 친러 성향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 돈바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민스크 협정', 이른바 '노르망디 형식의 4자 회담'을 통해 정전 협정을 맺었지만 협정은 사실상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더 멀게는 우크라이나는 고대 국가 '키에프 루스' 형성지로, 러시아가 시작된 곳이라는 역사적 상징성도 있다.

무엇보다 러·우 전쟁은 신냉전 구도를 가속화했다.

푸틴 대통령의 당초 의도와 달리 러시아와 국경 1300㎞를 맞대고 있는 핀란드가 지난 4월 나토의 31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로써 핀란드의 75년 군사 비동맹주의는 막을 내렸고, 유럽 안보 지형은 오히려 러시아에 불리하게 새로 그려졌다. 스웨덴도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을 추진했으나, 현재 튀르키예와 헝가리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또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가운데 러시아는 북한, 중국과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립국을 표방하며 한 발을 살짝 뺀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경제·군사 협력을 강화하며 러시아를 받쳐주는 한 축이 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3월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고, 푸틴 대통령은 내달 '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일대일로 서밋) 참석차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위험한 만남도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3일부터 5박6일(러시아 체류 기준) 일정으로 러시아 극동 지역을 방문했다. 13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콤소몰스크나아무레 전투기 생산 공장과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 비행장 및 태평양함대 기지를 방문했다.

4년 만의 북러 정상회담은 러시아의 무기 공급 뿐만 아니라 북한의 인공위성 첨단 기술, 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과 핵잠수함 설계 기술 확보 가능성 때문에 우려됐다. 한미일 밀착 속 북중러와 대치 구도가 심화하면서 한반도가 다시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서도 지지세를 모으고 있다. 주요 7개국(G7) 대항마로 여겨지는 브릭스는 지난달 정상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6개국 가입을 승인하기로 했다. 기존 5개국에서 11개국이 되면 브릭스의 경제 규모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6%로, G7 29.9%를 넘어선다.

아프리카 국가들을 향해서도 계속 손길을 내밀고 있다. 러시아는 그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여기에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엔 곡물과 비료를 무상 또는 저렴하게 공급하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러시아는 유럽이 대폭 줄인 에너지 수입을 중국과 인도 등으로 보내면서 새로운 수출 활로를 찾고 경제 유대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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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AP/뉴시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하며 악수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고통받는 무고한 사람들을 위해 인도주의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3억2500만 달러 규모의 새로운 무기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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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핵심 키(Key) 쥔 영토 문제…돌파구는 요원


영토 문제는 현재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전쟁이 1년 7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양보할 기색이 없어 평화 협상은 멀게만 느껴진다. 그간 중국과 튀르키예, 브라질, 아프리카 7개국, 교황청 등의 중재 노력도 결국 이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9~20일 제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고위급 공개회의 연설에서 영토를 양보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피침략국 입장에서 영토 포기와 정치·군사적 압력이 아닌 영토·주권 회복으로 전쟁을 끝낼 기회"라면서 자신의 10개 항으로 된 평화 공식(Peace Formula) 지지를 거듭 호소했다.

20일 유엔 안보리 연설에선 "1991년 기준 국제적으로 인정된 우크라이나 전체 주권 영토 내에서의 러시아군 및 용병, 준군사조직 완전 철수와 흑해, 아조우해, 케르치해협을 포함한 배타적경제수역(EEZ) 전체에서 실효적 통제권 완전 회복"이란 2단계 영토 회복 조건을 내걸었다.

1991년은 옛소련연방 해체 당시 국경선을 말하는 것으로, 루한스크 등 4개 지역 외에 크름반도까지 반환하란 의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평화공식'을 논의할 각 급별 실무그룹과 첫 세계평화정상회의 등 단계별 실천 계획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역시 러시아가 합병을 고수하겠다고 하는 이상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합병한 4개 지역 외에 더 많은 우크라이나 영토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우리는 현재 헌법에 기록된 모든 땅을 통제하길 원할 뿐"이라고 답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서방 국가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무기 지원이나 곡물 수출과 같은 문제로도 대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양보하는 방안까지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나토 고위 관계자는 한 토론회에서 "현실 가능한 해결책'이라면서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양도하는 조건으로 나토에 가입시키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즉각 우크라이나의 거센 반발을 샀고, 나토 관계자가 "실수였다"고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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