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만화축제서 강연 김보통 작가
“취미로 그리다 웹툰작가 제안받아… 데뷔작 ‘아만자’에 독자들 큰 호응
그림 잘 그리는 웹툰작가보다 이야기 잘 만드는 창작자 돼야”
서울 마포구에서 11일 만난 김보통 작가가 자신이 세운 웹툰 제작사 ‘스튜디오 타이거’를 상징하는 호랑이 탈을 쓰고 있다. 김 작가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인터뷰할 때 탈을 쓴다”며 “‘아만자’가 성공한 뒤 외제차를 사기보단 작화를 도와주는 직원을 고용해 일손을 보탠 덕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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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기업에 입사했다. 자영업을 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쓰디쓴 실패를 맛본 아버지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회사에선 부모님에게 꽃바구니를 보내 합격 사실을 알렸다. 회사 배지를 가슴에 달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자랑스러웠다. 희망찬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회사에선 매일 오전 6시 50분부터 회의가 시작됐다. 영업직이라 접대가 일상이었다. 점심 저녁으로 술을 마셨다. 대리가 된 뒤 오른 연봉이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잡았지만 버티기 어려웠다. 2013년 회사를 박차고 나왔고 우여곡절 끝에 유명 웹툰 작가로 우뚝 섰다. 경기 부천시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17일 ‘청춘월담-불안을 넘어, 현재까지’라는 주제로 웹툰 작가 지망생에게 강연하는 김보통 작가(42) 이야기다.
서울 마포구 작업실에서 11일 만난 그는 자신의 인생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수필 같은 만화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 작가다웠다. 그는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보며 그린 2013년 웹툰 ‘아만자’, 육군 내 탈영병 잡는 군무이탈 체포전담조 DP(Deserter Pursuit)에서 복무한 경험을 담은 2015년 웹툰 ‘D.P 개의 날’ 등을 그렸다. ‘대기업 입사, 웹툰 작가로서의 성공 모두 재능 덕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나 역시 끊임없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퇴사 후 DJ(디스크자키)를 준비하다가 재능이 없어서 포기했어요. 작은도서관을 세우는 사업을 하려고 책 2000권을 샀다가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못 받아 포기하면서 퇴직금도 날려 먹었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도 떨어져 좌절했습니다.”
막막함과 불안에 시달리던 그에게 기회는 우연히 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웹툰 ‘송곳’의 최규석 작가(46)로부터 “웹툰 한번 그려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잠시 돈이나 벌자고 시작했는데 데뷔작 ‘아만자’에 대한 독자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015년 부천만화대상 시민만화상도 받았다. 웹툰 제작사 ‘스튜디오 타이거’도 2021년 세웠다.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심적으론 힘들었어요. 프리랜서라 불안했고, 웹툰을 주 2회 그리려면 잠을 줄이며 일해야 했거든요. 하지만 재밌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은 것만으로 좋았죠.”
그는 자신의 영역을 한정 짓지 않는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2021년 시즌1, 올 7월 시즌2 모두 각본가로 참여했다. 최근엔 미국 할리우드 제작사로부터 “시나리오를 써 달라”는 제안을 받고 검토 중이다. 그는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를 써봤는데 기초 자료조사에 활용할 정도는 된다”며 “작화 부문에선 AI의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웹툰 작가도 그림이 아닌 이야기로 승부해야 한다”고 했다.
“웹툰, 소설, 영화, 게임 모두 매체가 다르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같아요. 그림을 잘 그리는 웹툰 작가보단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유연한 사고를 지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비 창작자에게 당부를 부탁하니 그는 자신이 한때 취미로 했던 권투로 비유해 답했다.
“권투에서 제일 무서운 상대는 잘 때리는(성공) 사람이 아니라 세게 맞았는데(실패) 안 힘들어하는 사람입니다. 웹툰으로 일확천금을 얻을 거라고, 내 작품이 영상화돼 넷플릭스 1위가 될 거라고 기대하면 부담에 창작 못 해요. 기회가 올 때까지 맷집을 키우고,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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