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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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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령 항명 수사와 오송·이태원 참사…권력은 왜 책임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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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사단장, 입수 직접 지시 아니라도 현장지도 책임

‘장갑차’로 대통령 책임회피론 국면전환 도운 전력

경향신문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9월 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직해임 집행정지 신청 첫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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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팔각모 얼룩무늬 바다의 사나이 (중략) 불바다 헤쳐간다, 우리는 해병”

지난 9월 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후문. 빨간 티셔츠를 입은 해병대 예비역 남성들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을 마주보고 부른 군가 ‘팔각모 사나이’다. 이후 실시된 군사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박 대령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보수언론까지도 영장 청구가 무리였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여전히 박 대령의 처지는 군가 속 ‘불바다’에 비유될 만하다. 그가 해병대 채모 상병의 순직 사건 수사결과를 경북도경찰청에 이첩했다가 보직해임을 당하고 입건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뿐 그는 곧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로 이첩할 수사결과에서 사단장 혐의를 삭제하라는 종용에 맞서다가 벌어진 일이다.

특히 박 대령은 수사개입 의혹의 배후로 윤석열 대통령을 지목함으로써 “대통령과의 전쟁”(박 대령 변호인) 복판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갔다. 왜 그랬을까. 박 대령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당부를 있는 그대로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 사안의 본질은 채 상병의 죽음이니 저에게만 포커스를 맞추지 말아달라. 채 상병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 박 대령이 지난 9월 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에 한 말이다. 그는 지금 ‘사단장에게 책임이 없다’고 넘어가는 건 자신의 양심에 어긋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주간경향은 박 대령이 제기한 수사외압 의혹을 ‘억울함 죽음’과 ‘책임’이라는 열쇳말을 중심으로 다시 짚어봤다. 박 대령을 향한 항명 수사 뒤에는 채 상병 순직 사건이 있고, 채 상병 순직 사건은 오송 참사와 지난해 여름 폭우로 인한 인명 피해, 나아가 이태원 참사와도 기묘하게 엮여 있다. 일련의 사건들에서 우리는 책임을 부인하는 권력의 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임성근 사단장의 혐의는 무엇이었나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의 수사 이첩 과정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지난 7월 31일이다. 전날 국방부 장관 결재까지 순조롭게 마친 그는 이날 예정된 언론브리핑이 취소됐다는 얘길 듣게 된다. 그리고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혐의자와 혐의내용을 삭제해 이첩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국방부는 지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라는 입장이다.)

상황이 급변하자 박 대령은 사령관에게 이유를 묻는다.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된 박 대령 진술서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기록돼 있다. “도대체 국방부에서는 왜 그러는 겁니까(박 대령).” “오전 대통령실 VIP 주재 회의에서 수사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사령관).” 박 대령이 “정말 VIP가 맞습니까”라고 묻자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 대통령의 질책이 실제로 있었는지와 별개로,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이 지속적으로 ‘사단장 혐의 삭제 후 이첩’을 권고 혹은 지시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현 정권은 왜 사단장을 구하려고 하는 것일까. 일단 채 상병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사단장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를 군인권센터가 제보받아 공개한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올 3월 해병대에 입대한 채 상병이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것은 지난 7월 18일이다. 그가 소속된 부대는 비 때문에 일렬로 하천 주변도로를 걸어가며 수색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사단장님 지시’(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가 전파된다. ‘해병대가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가급적 적색 티 입고 작업’, ‘개개인의 경계구역을 나누고 4인 1개조로 책임 주고 찔러가면서 확인할 것’, ‘바둑판식 수색정찰을 실시할 것’, ‘군 기본자세 유지 철저(특히 방송차량 올 시)’ 등의 내용이었다.

이날 저녁엔 지시자는 불분명하나 ‘(내일부터는)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물속에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하라’는 등 조금 더 구체화된 지시가 전파된다. 또한 중대장으로부터 “내일 7대대 총원 허리까지 강물 들어갑니다. 휴대폰 침수 조심합시다”라는 지시가 전달됐다. 군인권센터는 “이전까지는 물에 들어갈 계획이 없었다가 사단 지시로 사고일인 19일부터 물에 들어가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이날 채 상병이 소속된 부대는 결국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채 허리까지 입수해 바둑판 대형으로 수색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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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원과 소방이 7월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일대에서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채 상병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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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하면 그만’인 상급자들

채 상병 순직 이후 해병대 수사단 조사에서 임성근 사단장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부대가 물에 들어간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고, 해당 부대가 자체 판단한 것이며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직까지 임성근 사단장이 “물에 들어가라”고 직접적 지시를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핵심은 그러나 ‘직접 지시’ 여부가 아니다.

박정훈 대령 법률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임성근 사단장은 채 상병이 순직한 7월 19일 현장 지도를 하며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 없이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그대로 두었다. 또한 하급자를 질책하고 압박함으로써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는 하급자의 입에서 나오도록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상급자는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로 여겨질 줄 몰랐다” 혹은 “물에 들어가는 줄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처럼 심각한 인권침해가 드러났을 때 책임이 있는 가해자들은 다양한 ‘부인’의 기제를 사용하며, 이미 그들은 ‘부인’이 용이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분석한 학자가 있다. 영국의 유대인 인권학자 스탠리 코언이다. 그는 상급자들의 전략적인 ‘모호한 위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직 책임자들이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둘러대려면 (중략)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묻지 않고,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말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자들은 자신이 결코 보고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중급 가담자들은 상급자에게 진실을 보고하지 않음으로써 나중에 ‘진정한’ 부인이 이루어지도록 미리 손을 써둔다. (중략) 그들은 진실에 눈감을 필요조차 없다. 숨길 게 없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 두었기 때문이다.”(코언의 책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의 ‘옮긴이 해설’에서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가 별도로 인용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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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숨진 고 채모 상병 분향소가 마련된 포항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관에서 채 상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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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냐는 논리

“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라고 보고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국방부 장관을 연결하라고 한 뒤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MBC <스트레이트>가 8월 27일 보도한 박 대령 측 진술서 일부) 박 대령이 사령관을 통해 들은 윤 대통령의 격노와 질책이 구체적으로 담긴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은 지난해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를 두고 그가 주장했던 ‘딱딱 책임론’을 떠올리게 한다. 이태원 참사의 ‘국가애도기간’이 끝난 뒤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 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지난해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막연하게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과학에 기반을 둔 강제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이태원 참사의 실체적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지난해 11월 10일 수석비서관 간담회)

임성근 사단장이 ‘책임 회피용 국면전환 기술’을 선보여 윤석열 대통령의 환심을 샀던 인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군사평론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노영희의 뉴스인사이다’(토마토 뉴스 유튜브채널)에 출연해 둘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김 전 의원에 따르면, 임성근 사단장은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경북 포항시 일대에 수륙양용 상륙장갑차를 투입해 언론에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설화를 겪고 있던 윤 대통령을 도왔다. 지난해 8월 윤 대통령은 중부지역 집중호우로 발달장애 가족이 참변을 당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방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은 미리 대피가 안 됐는가 모르겠네”, “내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최종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망각한 발언이었기에 강력한 비판이 이어졌다. 김 전 의원은 ‘노영희의 뉴스인사이다’에서 “임 사단장이 장갑차를 동원해 수해 구조를 한 것에 (언론의) 시선이 쏠리면서 대통령이 언론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면서 “그때 해병대에서 1사단장이 대통령을 구했다는 말까지 돌았다”고 전했다. 대통령은 실제로 수륙양용 상륙장갑차가 투입된 포항 현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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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침수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경향신문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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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1사단의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가 2022년 9월 6일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도로가 침수된 경북 포항시 남구 청림동 일대에서 주민 구조를 위한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장갑차는 수상 운행이 가능하다. 해병대 1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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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사단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경북 예천에서 장갑차를 투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동유럽 순방을 마치고 찾은 곳도 경북 예천이었다. 윤 대통령은 순식간에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14명이 목숨을 잃은, 인재임이 분명한 오송 참사현장은 찾지 않았다.

임 사단장은 지난해 여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오송참사 등에 대한 비판여론을 ‘해병대 활약’으로 덮어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병대가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가급적 적색 티”를 입으라는 지시, “군 기본자세 유지 철저(특히 방송차량 올 시)” 등의 지시는 사단장이 얼마나 언론에 신경을 썼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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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희생자들의 온전한 추모를 위한 재단장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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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과 외면의 고리를 끊는 사람

재난 참사 등 인권침해 사실이 발생하면, 시민들은 진상 규명 이후 처벌, 재발 방지의 순으로 해결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이 같은 프로세스는 실제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코언은 ‘부인하는 권력’과 ‘외면하는 대중’이 있기에 그러하다고 짚었다. 그에 따르면 부당한 고통과 억울한 죽음들을 ‘부인’하는 권력과 이런 권력에 분노하지 않고 인권침해를 ‘외면’하는 대중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세계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이례적이진 않다. 유대인인 그는 팔레스타인 구금자들에 대한 고문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다가 이스라엘 책임자들의 ‘부인’과 이스라엘 대중의 ‘외면’에 맞닥뜨리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부인과 외면의 고리를 밝혀내는 데 천착하게 됐다고 한다.

대신 코언은 질문을 거꾸로 해야 한다고 했다. 다수가 현실을 부인할 때 어떤 사람들은 왜 그러지 않는가. 코언에 따르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작은 공감, 그리고 비인간성에 대한 작은 저항”을 실천하는 이들이 부인과 외면의 고리를 끊어내는 이들이다.

박 대령은 대통령의 개입을 모른 척할 수도 있었고, 국방부 측에서 권고·요구한 대로 사단장 혐의를 삭제해 사건의 경찰 이첩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상급자의 책임을 면해주면서도 채 상병 죽음의 원인을 제대로 밝혀냈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채 상병의 죽음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박 대령의 존재는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고통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을 일깨우고 잘못을 부인하는 권력의 문제를 도드라지게 한다. 어쩌면 그는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아킬레스건이 돼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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