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의 지정석]④
(서울=뉴스1) =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3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 위치한 한인기독교회를 방문해 이승만 동상에 헌화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2022.7.3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신냉전'이라 불리는 불안정한 대외 정세에 직면한 한국에서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주요 인물들이 하나둘 검증대에 다시 올랐다. 보수층에서 6·25전쟁이라는 국난을 극복한 주역이라며 '국부'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뿐 아니라 문재인 정권에서 재조명했던 월북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행적 관련 논란이 정치권에서 재점화했다.
사학계에서는 영웅의 과오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을 양날의 칼처럼 보고 있다. 근현대사와 관련한 건전한 논의를 촉발하고 국민 이해를 높이는 긍정적 측면 못잖게 사회 분열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는 논리다. 우리나라처럼 일제강점기, 6·25 전쟁, 분단 등 격동과 분열의 세월을 보낸 나라는 좌우 양쪽 진영이 모두 납득할 만한 무결점 인물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는 분석도 있다.
━
한강 인도교 폭파·북한 정권과 직결·이중서훈…흠결 논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문재인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 시기를 거치며 홍범도 장군 뿐 아니라 독립유공자 이승만·김구·여운형,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 행적과 관련한 논란이 재점화했다. 이는 외교관계의 다변화를 표방하는 '균형 외교'에 초점을 맞춘 문재인 정부와 한미일 3국 관계를 중시하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주도의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에 공조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그리는 이상적 인물상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7일 영웅 논란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공산 전체주의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은 지금 신냉전이 시작됐기 때문인데 낡은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역사적 인물을 둘러싼 논란은 지도자의 자질부터 외교·민족관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친 평가를 놓고 첨예해졌다. 지난 3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주호영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과보다 공이 훨씬 크다"며 '합당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지목한 대상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가리켜 SNS(소셜미디어)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터진 나라에서 싸울 생각은 않고 재빨리 도망가면서 전작권을 전쟁 발발 20일 만에 이양했다"고 비판했다.
이승만 정권 당시 벌어진 6·25 전쟁 중 우리 군이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던 사건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유엔군사령관에게 국군의 작전지휘권(작전통제권)을 이양했던 행적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 논란이 제기돼왔다.
반면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5월 전국 9개 민방 공동 특별대담에 출연해 "일제 36년 동안 해외 독립운동의 대표적 인물"이라며 "1945년 이후 상당히 어지러운 해방 공간에서 김일성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길을 갔고, 6·25를 막아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만든 공이 있다"며 이 초대 대통령을 두둔했다.
박 장관은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여운형 선생에 대해 과거 정권에서 이뤄진 이례적인 이중 서훈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아울러 박 장관은 2019년 현충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면서도 현 여권 중심으로 적절성 문제를 제기했던 '김원봉 재평가 바람'에 대해 "북한 정권과 너무 직결되기 때문에 상당히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뜻도 밝혔다.
━
전직 대통령 부친까지 올라간 '검증대'…고발 예고 사태까지
━
약산 김원봉. |
문 전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있던 2015년 광복절엔 김원봉에 대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는 글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가 보수층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 왔다. 현행법상 서훈 대상에서 원천 배제되는 '월북자'인 김원봉을 문 전 대통령이 마치 국군의 뿌리인것처럼 묘사하는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게 보수층의 반발 배경이다.
박 장관은 6일 국회에서 백선엽 장군이 친일 행적을 걸었다는 평가의 기반이 되는 일제 강점기 간도특설대 장교 복무 이력에 대해서는 "문 전 대통령 부친은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는데, 친일파가 아니냐"라며 일제 강점기 관직에 올랐던 것이 친일파의 증명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 전 대통령 부친이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한 것은 일제 치하가 아니라 해방 후"라고 반박하며 문 전 대통령이 박 장관을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이라고 주장해 민주당의 반발을 샀다.
검증 잣대가 엄격해질수록 '역사의 거인'보다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행보에 치중했던 인물들만 보훈 대상으로 조명받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는 좌우 양측 진영에서 모두 만족할 만한 역사적 인물에 대해 "우리 역사 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기를 거친 나라엔 사실상 거의 없다"며 "어느 나라든 고대사로 국민이 통합되지만 현대사로 내려올수록 분열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모든 해로운 성분과 오염성분을 통과한 사람들만 보훈의 대상으로 삼겠다' 하면 미니멀하게 움직인 사람들은 남지만 큰 물고기와 거인들은 다 배제가 된다"고 했다.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박상곤 기자 gonee@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