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수산물 소비 위축을 막기 위해 올해 예산 1440억원을 투입한다. 기존에 편성된 예산 640억원에 긴급 예비비 800억원을 추가한 금액이다.
이 예산은 수산물 전용 제로페이 모바일상품권 발행, 수산물 할인행사,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환급 등 3개 분야에 쓰인다. 당초 정부는 모바일 상품권을 이달까지 발행할 예정이었지만 예비비가 편성되면서 연말까지 매주 평균 50억원 규모로 상품권을 추가 발행한다.
내년에도 수산물 소비 활성화에 예산 1338억원이 편성됐다. 이에 대해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은 "어업인을 비롯한 모든 수산업 종사자, 소상공인, 소비자까지 살피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지난달 24일 이후 전국 수산물 시장 곳곳에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한 것을 필두로 국무총리, 주요 부처 장차관을 비롯해 공공기관장까지 지역 수산시장을 찾아 '애국 먹방'을 선보였다.
내년도 예산 정부안에서도 '강력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내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대응 예산으로 7380억원을 편성했다. 올해보다 39.7% 증액된 규모며 △해수부 7319억원 △원자력안전위원회 45억원 △식품의약품안전처 16억원 등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오염수 대응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가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는 하루 최대 500t씩 향후 30년간 방류될 예정이다. 최악의 경우 30년 이상 오염수 방류 대응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처지다.
올해 역대급 세수결손분을 메우기 위해 공공자금관리기금 재원까지 투입해야 되는 상황에서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하지 않았으면 쓰지 않아도 될 혈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쓰지 않아도 될 예산을 편성한 후폭풍도 거세다. 정부는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3조4000억원 감액한 21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올해보다 13.9% 줄어든 것으로 국가 예산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4년 이후 R&D 예산 삭감은 사상 처음이다.
정부는 R&D 예산을 삭감하며 과학기술계의 잘못된 관행과 투자 대비 성과가 낮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국가의 근간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디딤돌인 국가 R&D 사업이 일방적으로 축소될 위기 상황에서 국내 과학기술계는 사상 처음으로 연대회의까지 출범하며 반발하고 있다.
일본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의 강단 있는 외교 대응도 아쉬움을 남긴다. 향후 오염수 대응에 얼마나 많은 예산이 투입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적어도 문제를 야기한 일본 측에 책임 있는 행동 정도는 요구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을 묻는 설훈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기준에 맞도록 과학적으로 처리된 방류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야당에서 정부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측 입장만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우리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와 다르게 중국은 오염수가 방류되자 즉각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 같은 중국의 조치는 일본은 물론 자국 수산 관련 산업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극단적인 조치다. 하지만 ‘오염수 외교’에 공을 들여온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강경한 대응이 압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일본 오염수 방류로 어민을 비롯한 국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일본 측에 책임을 물을 계획이 없어 보인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4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서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 있는지 묻는 윤영덕 민주당 의원 질의에 "국제관계가 그런 감정적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구체적인 인과관계 입증을 구상권 청구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달았다.
앞으로 30년 이상 오염수 공포에 시달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은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키우고 있다.
아주경제=박기락 기자 kirock@ajunews.com
- Copyright ⓒ [아주경제 ajunews.com] 무단전재 배포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