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교사 이어 최근 나흘새 교사 세 명 추가로 세상 등져 '충격'
정치적 성격의 이전 연가투쟁과 다른 방식…교육부 대응 주목
연단 오른 서이초 교사 동기들 |
(세종=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의 49재 추모일인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지정하고 교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땅에 떨어진 교권 추락에 대한 교원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교사들이 수업 중 학생들로부터 심한 조롱을 당하거나 심지어 학생, 학부모로부터 폭행당하는 등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각종 사건이 잇따르면서 교권 추락, 공교육 붕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던 차에 학부모 악성 민원 의혹으로 교사가 세상을 등지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교단의 충격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여기에 교육부가 교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강경 대응 입장을 고수하면서 교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육계에 따르면 이날 전국 초등학교 수십 곳이 재량 휴업하고, 상당수 교사는 연가나 병가 등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집계는 이날 오후 늦게나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가 앞서 재량 휴업일 지정 학교장에 대해 중징계를 예고하면서 대량 재량 휴업 사태는 막은 것으로 보이지만 교원들이 개인적으로 연가·병가를 사용하면서 학교 수업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학교는 이미 합반 수업, 단축 수업 등을 각 가정에 안내한 상태다.
국회 앞에 모인 교사들 |
교사들이 연가·병가를 사용하는 것은 현행법상 노동 3권 중 단체행동권이 없는 교원들이 의견 개진을 위한 조치다.
그간 교원들이 몇 차례 집단 연가를 낸 적은 있지만 이전에는 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중심으로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반대, 민주노총 총파업 동참,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 정치적 구호를 내건 투쟁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주최 측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전 집단 연가 사태와는 결이 다르다.
특히 교권추락이라는 이슈에 대해 현장 교사들이 이렇게나 대규모로 목소리를 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실제 교원들은 초등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에서 자발적으로 뜻을 함께해 집단 연가·병가에 동참했으며, 지난 2일 국회 앞에서 열린 주말집회에도 주최측 추산 무려 20만명의 교사들이 참석했다.
교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교권 침해가 잦아지고 심각해졌는데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공분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이 가운데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2년 차 교사가 교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채 발견된 사건은 쌓이고 쌓였던 교단의 분노에 불씨를 댕겼다.
숨진 직후 그가 교실에서 벌어진 학교폭력(학폭) 사건 중재로 애를 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원들 사이에서는 '남 일 같지 않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학폭 가해 학생의 어머니가 경찰 출신인 것으로 알려지자 교원들 사이에서는 교사 사망에 대한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공교육 멈춤의 날 직전 세상을 등진 교원들의 추가로 전해진 것 역시 교원들의 비통함을 더욱 고조시키는 요인이 됐다.
지난달 31일에는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경기 고양시의 아파트에서, 지난 1일엔 전북 군산의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전날에는 경기도 용인에서도 한 고등학교 교사가 청계산 등산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직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숨진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이나 특정 교원의 갑질 때문에 힘들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주호 부총리, 교육 현장 정상화 호소문 발표 |
교육부 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교육부는 이날 집단행동에 대해 사실상 파업하는 것으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교육부는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교원 휴가에 관한 예규'를 들어 직계가족 등의 경조사와 같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교원의 연가는 수업 일을 제외해 사용해야 한다고 밝혀왔다.
또 특정 목적을 위한 교원들의 집단 연가나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집단 병가를 사용하는 것 역시 우회 파업에 해당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집단 연가·병가를 승인한 교장은 물론 사용한 교원에 대해 '국가공무원법'상 집단행위 금지 의무 위반, 성실 의무, 복종 의무, 직장 이탈 금지 위반 등으로 최대 파면·해임의 징계는 물론 형사 고발까지 가능하다고 각 학교에 안내하기도 했다.
교원들 사이에서는 교육부가 한쪽으로는 교권 보호에 앞장서겠다면서도 또 다른 한쪽에서는 추모의 뜻을 표하는 교사들을 겁박하고 있다며 교육부의 진의를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짙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서초구 교사 사망 후에 한 달 만에 내놓은 교권 보호 대책 역시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겠냐는 실망감이 큰 상황이다.
강경 대응 일변도인 교육부 태도에 대해서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교육부가 재량 휴업을 막은 탓에 개인적으로 교외 체험학습을 사용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학부모들이 나타났는데, 이 때문에 학교에 자녀를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은 눈치 보인다며 차라리 학교가 재량 휴업을 지정해줬다면 좋았으리라는 것이다.
porqu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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