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허위 정보(disinformation) 대응을 위한 노력을 조율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협의할 것이다.”
한미일 정상이 지난달 18일 합의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
지난달 18일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한 국내 외교가의 평가는 긍정적인 편입니다. "한국 외교의 전환점", "글로벌 중추국가로 도약하는 발판"이라는 후한 발언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최선이었지만 최상은 아니었다"며 아쉬운 부분도 지적합니다. 향후 한중관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는 과제로 남았죠.
윤석열(왼쪽) 대통령이 18일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조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이동하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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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로 군사안보협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간과된 부분이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국립외교원이 주최한 '한미일 정상회의의 전략적 함의' 공개회의에 토론자로 나온 김현욱 국립연구원 미주연구부장의 말입니다.
"(합의문 중) '허위 정보 노력'에 대응해야 한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중요한 합의도 있었지만, 이처럼 정보 조작과 허위 정보에 대응하는 노력을 조율해야 한다는 부분 역시 한미일 정상 간 중요한 합의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좀 어렵지요. 그래서 3국 정상 합의인 '캠프 데이비드 원칙' 문건을 찾아봤습니다. 'Recognizing the increased threat posed by foreign information manipulation and misuse of surveillance technology, we will also discuss ways to coordinate our efforts to counter disinformation'. 번역을 하면 '해외 정보 조작과 감시 기술의 오용이 제기하는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우리는 허위 정보 대응을 위한 노력을 조율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협의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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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번 회의에서 미국과 일본 측은 '해외 정보 조작'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허위 정보 대응을 위한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는 의견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통상적으로 '해외 역정보'라고 불리는, 조작된 허위 정보의 유포와 대응이 최근 중요한 사이버 정보전술 중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역정보는 특정 국가의 선거 또는 정치지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려는 목적으로 악의적이고 고의적으로 뿌려지는 허위 정보들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은 아예 협의문에 담긴 '협력' 문구 수준을 넘어, 해외 역정보 대응 양해각서(MOU) 체결까지 제안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이버 공간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얼마나 심각하기에 미국과 일본이 불을 켜고 대응책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는 걸까요? 미국과 일본은 현재 국무부와 외무성에 역정보 대응 업무를 전담시켰고, 유럽연합(EU) 상당수 회원국은 국방부가 같은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가 미국의 2022년 중간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허위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며 사이버 공격이 언젠가는 실제 전쟁(shooting war)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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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는 꼽히는 사례가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입니다. 눈에 보이는 양국 군인들의 군사적 충돌 이면에서 수많은 사이버 공격과 방어가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몇 년 전에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국면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허위사실이 러시아에 의해 의도적으로 뿌려진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자국의 정보·수사기관 보고서를 바탕으로 "중국이 캐나다의 2019년 총선 과정에 공격적으로 개입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의 인식은 미국과 일본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정입니다.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일본이 거론한 역정보(disinformation)를 처음에는 가짜뉴스(fake news)로 받아들였다는 후문입니다.
물론 둘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공통점보다 차이가 더 큽니다. '가짜뉴스'의 경우엔 주로 언론사나 오피니언 리더를 대상으로 추적을 하게 되지만, '역정보' 대응은 그들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한 이들을 찾아낸 뒤 원천 정보까지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미 국무부에는 '글로벌관여센터(GEC)'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미국 대선과 관련한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SNS 계정을 차단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중국 해외공관 외교관들의 계정이 2, 3개씩 동시에 늘어난 뒤 '코로나19 확산이 미국 때문'이라는 글이 동시다발적으로 유포되는 과정을 추적해 공개한 것도 GEC였습니다. 단순히 가짜뉴스라고 인식했다면, 이를 보도한 언론사나 오피니언 리더를 상대로 대응하는 수준에 그쳤을 겁니다. 그러나 GEC는 허위 역정보의 저수지를 끝까지 찾아내 차단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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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건,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실질적인 해외 역정보 대응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내 이렇다 할 전담 조직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외교부, 국가정보원, 국방부 등을 놓고 어디가 더 적절한지 전담부처를 정하는 작업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다만 관련 부처 간 엇박자가 발생하면서 속도는 더디기만 합니다. 외교부나 국방부는 기존 업무에 또 하나의 일이 더해진다는 점에서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국정원은 해외 역정보와 관련한 정보수집력 강화에는 관심이 있지만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한 대선 개입 등의 '흑역사' 때문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다는 전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해외 역정보와 관련된 학계 연구는 물론 외교안보 부처별 역할 분배, 그리고 이들 간 협의 방안 마련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인다"는 것이지요. 이와 함께 "더 뒤처지기 전에, 해외 역정보로 인한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본격적인 준비를 마쳐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과연 이 같은 제안이 얼마나 받아들여질까요. 앞으로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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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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