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로 관리돼온 크기·형태 비슷한 칼 한 쌍
길이 2m에 달해…날 위쪽에 호국 의지 새겨
"의장 또는 마음 다스리는 용도로 쓰였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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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검은 1963년부터 보물로 관리돼온 크기와 형태가 비슷한 칼 한 쌍이다. 길이가 2m에 달하는데 각각 칼집을 갖추고 있다. 칼자루는 나무에 어피(물고기 가죽)를 감싸고 붉은 칠을 해 만들었다. 쥐었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직사각형 금속판을 대고 검은 칠을 한 가죽끈을 'X'자로 교차해 감았다.
칼날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구가 있다. 몸체 길이가 196.8㎝인 칼의 날 위쪽에는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이라고 새겨졌다.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라는 뜻이다. 길이가 197.2㎝인 또 다른 칼에선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라는 문구가 확인된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라는 의미다.
문화재청 측은 "'이충무공전서(1795)'의 기록과 일치한다"며 "칼자루 속에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이라는 글귀가 있어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갑오년은 1594년이다.
이순신 장검은 조선 시대 군용 도검의 전통 양식을 보인다. 다만 칼자루를 단단하게 쥐도록 가죽끈을 'X'자로 교차해 감은 방식과 칼날이 휘어진 곡률, 혈조(칼날에 낸 홈)를 넣은 방식 등은 일본 칼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충무공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유물로서 가치가 크다고 봤다. 칼날의 예리함과 물결무늬 선각 장식, 칼자루·칼집의 테·고리를 장식한 은입사 기법, 전통공예 활용, 세련된 균형미, 양호한 보존상태 등도 높게 평가했다. 길이가 2m에 달해 실제 전투에서 쓰였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유물 현장 조사에 참여했던 이상훈 전 육군박물관 부관장은 "실전용이라기보다 의장용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용도로 썼으리라 추정된다"며 "옛 문헌을 봐도 이 정도로 큰 칼을 실전용으로 썼다는 기록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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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문화재청은 국보 지정을 예고하며 이름을 '이순신 장도'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검'이라는 단어를 권위나 의례와 관련해 칼의 격을 높일 때 사용하고, 특정 소장자를 강조하거나 용도가 확실한 경우 외날이어도 '검'이란 명칭을 사용한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변경했다.
보물로 관리되는 요대함은 원형의 나무함이다. 함 속에 요대를 넣고 뚜껑처럼 덮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아름드리나무를 베어 일정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 세웠다. 판재에 베 싸기를 한 뒤 겉은 흑칠, 안은 주칠을 했다. 문화재청 측은 "전통적 공예기법과 높은 수준의 기술로 만들어졌고, 비슷한 다른 유물에 비해 크기가 매우 크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보물로 지정된 '요대'와 함께 보존되면 가치도 동반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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