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이 기업부터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국적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100년 역사의 당뇨병 치료제 기업이 최근 몇 년 간 놀라운 속도로 커가면서 덴마크 증시뿐 아니라 경제까지 들었다 놨다 하고 있는데요.
과연 노보 노디스크의 질주는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혹시 노보 노디스크는 ‘덴마크의 노키아’가 되는 건 아닐까요. 오늘은 너무 잘 나가서 국가 경제에 대한 걱정마저 불러일으키는 기업, 노보 노디스크를 딥다이브 합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외곽의 노보 노디스크 본사. 노보 노디스크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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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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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100년 한 우물, 그 결과
시가총액 4100억 달러(약 546조원). 노보 노디스크는 올해 들어 주가가 33% 오르면서 시총 기준 유럽연합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1위는 LVMH)이 됐습니다. 급기야 얼마 전 노보 노디스크 시총이 약 4060억 달러인 덴마크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죠. 덴마크 경제에 있어 존재감이 얼마나 큰 기업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노보 노디스크는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노보 노디스크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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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 노디스크가 지금 이렇게 잘 나가는 이유를 살펴보기 전에 옛날이야기 먼저 해볼까요. 1920년대 초만 해도 당뇨병 진단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뇨병 환자는 평균 8년밖에 살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1921년 캐나다 연구원들이 인슐린을 발견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아우구스 크록 부부는 캐나다 연구진을 만나 덴마크에서 인슐린을 생산할 수 있는 허가를 따냅니다. 부부는 1923년 ‘노디스크 인슐린연구소’를 세우고 인슐린 제품 판매를 시작했죠. 1925년 덴마크에서 또 다른 당뇨병 치료제 기업 ‘노보 테라퓨티스’가 설립되면서 경쟁 구도를 형성했는데요. 치열하게 경쟁하던 두 기업이 1989년 합병하면서 노보 노디스크가 탄생합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당뇨병 한 우물을 팠는데요. 유전자 재조합으로 만든 인간 인슐린 세계 최초 생산(1978년)과 세계 최초의 펜 형태 주사제 출시(1985년) 같은 제품혁신을 이어가며 당뇨병 치료제 업계 1위(현재 점유율 약 32.7%)에 오릅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순풍에 돛단 듯 성장세를 이어갑니다. 당뇨병이 ‘21세기 유행병’이라 불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환자가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죠. 2000년 1억 5000만명이던 전 세계 당뇨병 환자 수는 이미 5억2900만명으로 늘어났고요. 최근 미국 워싱턴대 보건계량분석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이대로 가다간 2050년엔 당뇨병 환자 수가 13억명까지 늘어날 거란 무시무시한 전망마저 나옵니다.
2000년 이후 노보 노디스크 주가 차트. 구글 금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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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로서뿐 아니라, 주식으로서도 노보 노디스크는 독특한데요. 전 세계 경제에 위기가 닥치고 금융시장이 출렁거려도 노보 노디스크는 웬만해선 끄떡 없었습니다. 당뇨병 환자와 치료제 수요는 갈수록 늘기만 하니까요. 2008년 금융위기로 다른 기업들이 휘청거릴 때, 머스크(세계 최대 해운사)를 제치고 노보 노디스크가 덴마크 증시에서 시총 1위에 오릅니다. 이후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지기만 했죠.
오죽하면 2013년 코펜하겐 증권거래소가 벤치마크 지수(OMX 코펜하겐 25) 산출법을 바꿨습니다. 노보 노디스크 시총이 지수 구성종목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기 때문인데요. 시총이 아무리 커도 지수에선 20%까지만 반영하도록 상한선을 만들어 버립니다. 노보 노디스크 시총이 1000억 달러를 갓 넘어섰던 2013년 당시, 덴마크의 한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했죠. “노르웨이에는 석유가 있고, 스웨덴에는 산업이 있으며, 핀란드에는 기초소재가 있고, 우리에게는 제약이 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노보 노디스크의 실적과 주가가 2016년 들어 모두 제동이 걸립니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 부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인슐린 치료제 가격을 낮추라’는 심한 가격 압박에 부닥친 건데요. 사노피, 일라이릴리 같은 쟁쟁한 경쟁사들과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자연히 매출은 뚝 떨어졌고 직원 1000명을 정리해고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는데요.
노보 노디스크는 2016~2019년 매출 성장이 저조했다. 미국의 가격 압박으로 당뇨병 치료제 매출이 줄어든 영향이다. 참고로 미국 정부의 당뇨병약에 대한 가격 압박은 최근까지 계속됐고, 노보 노디스크는 일부 제품 가격을 결국 75% 인하했다. 자료:유진투자증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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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초 400크로네 안팎이던 주가가 그해 말 240크로네 수준으로 급락하며 덴마크 주식시장이 쑥대밭이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덴마크 개인 투자자들은 이때 외국인이 팔아치운 노보 노디스크 주식을 쓸어 담았습니다. 마치 2020년 한국 증시의 ‘동학개미운동’ 같은 움직임이었는데요. 덴마크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을 되레 매수 기회로 여긴 겁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일단 사면 은퇴할 때만 파는 주식’이라는 장기투자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죠.
위고비와 비아그라의 닮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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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호르몬을 아시나요. 밥을 먹으면 장에서 생성돼,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뇌에 포만감을 느끼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하는데요. 노보 노디스크는 GLP-1과 같은 작용을 하는 신개념 당뇨병 치료제 ‘빅토자’를 2009년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 약이 알고 보니 아주 놀라운 효과를 보인다는 게 입증됐는데요. 주사를 투여하기만 하면 살이 빠진 겁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 성분으로 만든 비만치료제 ‘삭센다’를 2015년 선보입니다. 1년 동안 매일 맞으면 약 6~8% 체중이 줄어드는 주사였죠. 삭센다는 비만치료제 시장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다만 하루 한 번씩 주사를 놔야 한다는 게 불편했죠.
위고비는 2021년 미국 시장에 출시된 뒤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같은 성분이 담긴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 판매도 덩달아 크게 늘었다. 자료:유진투자증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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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비 인기에 대한 덴마크 자산운용사 BLS인베스트의 분석이 재미있는데요. 위고비가 1998년 출시돼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화이자의 비아그라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의약품은 뭘 처방할지가 의사에게 달려있죠. 그래서 제약사는 환자가 아닌 의사에게 제품을 홍보해야 하는데요. 위고비의 경우엔 비아그라 때 그랬던 것처럼 환자가 직접 ‘위고비를 달라’고 요구하는 제품이란 겁니다. 그만큼 환자들의 직접적인 수요가 엄청나단 뜻이죠.
비만치료제의 수요 폭발로 노보 노디스크 매출은 급성장 중입니다. 얼마 전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1년 전보다 30% 넘게 증가했죠. 여전히 위고비 공급 부족이 심각하기 때문에 그나마 덜 늘어난 게 이 정도라는데요(위고비 매출은 1년 전보다 523% 증가). 애초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을 13~19%로 내다봤던 노보 노디스크는 전망치를 대폭 상향 조정해야 했습니다(매출액 27~33%, 영업이익 31~37% 성장 전망).
위고비는 아직 미국·덴마크·노르웨이 정도에 출시했을 뿐입니다. 비만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중국은 진출도 안 했죠. 게다가 노보 노디스크는 비만치료제 신제품도 준비 중입니다. 위고비와 성분은 같지만 주사제가 아닌 하루 한 알씩 먹는 알약입니다. 올해 미국과 EU에 승인 신청을 해서 내년쯤 출시될 텐데요. 그래서 주가가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보 노디스크의 주요 투자자인 컴제스트의 아르노 코세라 CEO는 이렇게 말합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덴마크의 노키아’라는 걱정
노보 노디스크는 각종 설문조사에서 레고와 함께 ‘덴마크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로도 꼽힌다. 노보 노디스크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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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분석자료이긴 하지만, 덴마크 개인 투자자 중 21%는 노보 노디스크 주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노보 노디스크 주가가 대중의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데요. 최근엔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이런 투자자들의 고민까지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노보 노디스크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 지금 팔면 차익의 42%를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팔기 전에 주식을 좀 더 사서 평단을 높이면 세금을 아낄 수 있나요?”(이에 대한 전문가의 답변은 ‘그렇다. 그런데 팔고 나서 다시 사고 싶을 수 있으니 주의해라.’)
투자자들의 이런 고민이야 사실 행복한 고민이죠. 진짜 고민거리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너무 커진 노보 노디스크가 과거 핀란드의 노키아 같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겁니다.
핸드폰 제조사 노키아를 기억하시죠. 한때 전 세계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을 주름잡았던 기업인데요. 닷컴 버블이 터질 무렵이던 2000년 노키아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시가총액 기준 유럽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었고요. 시총이 핀란드 GDP의 두 배였으니까요. 당시 노키아는 핀란드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었죠. 하지만 2007년 애플 아이폰 등장으로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침몰이 시작됐습니다. 노키아 쇼크로 핀란드 경제 전체가 휘청거렸죠. 2008년 이후 10년 동안 핀란드는 다섯차례 마이너스 성장을 겪는 등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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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 노디스크가 덴마크 경제에 있어 ‘노키아 모멘트’에 도달했다는 분석은 사실 10년 전부터 나왔습니다.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에 지나치게 성공적인 기업이 있으면 노키아처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막연한 걱정이었는데요.
최근 위고비로 인한 노보 노디스크의 엄청난 성공은 이런 우려에 설득력을 한층 더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시드뱅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티아스 돌러럽 슈프뢰겔은 “제약 부분의 강세가 덴마크 경제 다른 부분의 둔화를 위장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노보 노디스크로 대표되는 제약회사가 지난 1년 반 동안 덴마크 GDP 성장률을 2%포인트나 끌어올렸지만, 제약을 뺀 GDP 성장률은 –1%에 그쳤다는 거죠. 그는 자칫 노보 노디스크가 “덴마크의 노키아”가 될 위험이 있다고 보는데요. “노보 노디스크가 혁신을 계속할 수 없거나, 미국이 (인슐린의 경우처럼) 제품에 대해 엄격한 가격 통제를 시행한다면 덴마크 경제에 압력이 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실제 노보 노디스크의 성공이 이미 덴마크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기준금리(3.35%)를 유럽중앙은행(4.25%)보다 상당히 낮게 유지 중인데요. 위고비·오젬픽의 미국 판매가 급증해서 달러가 대량 유입되다 보니, 크로네 가치가 너무 강세를 띨까봐 일부러 금리를 낮게 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덴마크 통화인 크로네는 유로화에 고정돼 있어서(크로네-유로화 페그제), 가치를 유로화의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물론 금리가 낮아도 덴마크 인플레이션은 안정돼있고(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3.1%),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5월 상향 조정했습니다(0.2%→0.6%). 아직까진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징후는 없죠. 그러니까 우려가 현실이 되느냐는 결국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과연 노보 노디스크가 이 성장세를 계속 이어가느냐 마느냐.
물론 답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만, 비교적 희망 섞인 관측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날 노보 노디스크가 10~15년 전 연구의 결과인 것처럼, 미래의 노보 노디스크 역시 발전하는 시장과 수요를 따라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그동안 바로 이 분야에서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를 계속해 나가야 할 겁니다.”(덴마크 자산운용사 포뮤플예의 주식 책임자 오토 프리드리히센) By.딥다이브
올해 초만 해도 덴마크 일부 주식 전문가들은 노보 노디스크의 PER이 너무 높다며 ‘주가가 40% 빠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놀라운 실적으로 이런 비관론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100년 역사를 가진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당뇨병 치료제 분야의 1위 기업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가 빠르게 늘면서 승승장구했던 노보 노디스크는 2016년부터 미국의 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며 멈칫했습니다.
-이 위기를 벗어나게 한 건 신제품 비만치료제였습니다. 2021년 출시한 비만주사 ‘위고비’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주가와 실적 모두 빠르게 점프 중입니다.
-작은 나라에 있는 지나치게 성공적인 기업. 많은 이들이 ‘제 2의 노키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냅니다. 실제 덴마크 경제와 증시를 노보 노디스크가 좌우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잘못 되고 있다는 징후는 없지만, 앞으로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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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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