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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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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광복절 55만명 돌풍…日이 개봉 망설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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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영화' 개봉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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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원폭 실험을 관찰하는 J.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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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터졌다. ‘원폭의 아버지’를 그린 ‘오펜하이머’가 개봉 첫날인 15일 55만 관객몰이를 했다. 올해 국내 극장에 걸린 외화 중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다. 남성ㆍ50대 관객 등 평소 극장을 잘 찾지 않는 관객들도 불러들였다고 분석했다. CGV 황재현 전략지원 담당은 “평소 극장 관객은 남성이 40% 정도 차지하지만 ‘오펜하이머’의 경우 54.5%로 늘었다. 20대가 주축이던 관객 연령대도 30대로 올라갔는데, 특히 10% 미만이던 50대 관객이 이 영화에서는 13.8%, 주말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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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의 각본ㆍ연출을 맡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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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지난달 21일 공개된 것에 비하면 꽤 늦은 개봉이다. ‘전세계 동시 개봉’ 같은 트렌드에 민감한 국내 극장가에서 이례적 선택이라 할 만해 “왜 광복절이었을까”라는 뒷말이 나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지난달 “한국에서는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에 스크린 등장”이라며 관심을 보인 바 있다. ‘오펜하이머’를 배급하는 유니버설 픽쳐스 코리아는 “영화 개봉 시기는 각국 배급사에서 정하며, 가장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징검다리 연휴를 택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개봉 시기에는 아이맥스(IMAX) 상영관 쟁탈전도 한몫했다. 일반 상영관보다 5배 이상 큰 스크린과 고해상도 화질의 아이맥스 관은 국내에 20곳.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오펜하이머’는 ‘미션 임파서블 7’부터 ‘밀수’‘더 문’‘콘크리트 유토피아’로 이어지는 여름 대작들의 아이맥스 개봉에서 더는 상영관 경쟁이 없는 8월 중순 이후를 택했다는 후문이다.



‘세계 첫 원폭 실험 기념일’ 직후 개봉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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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원폭 실험이 성공한 뒤 환호 받는 주인공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과학자의 고뇌와 성취에 역점을 뒀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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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도(Alamogordo)에서 1945년 7월 16일 있었던 세계 최초의 원폭실험 ‘트리니티 테스트’. 영화에서는 CG를 사용하지 않은 폭발 장면이 화제였다. 미국 개봉은 이 시기와 맞물렸다. 영화 제작ㆍ배급사는 개봉 직전 ‘트리니티 기념일 상영 행사’도 열었다. 놀런 감독, 노벨 물리학상의 킵 손 박사, 원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 퓰리처상을 받은 카이 버드 등이 참석했다.

‘오펜하이머’는 이미 49개국에서 개봉, 글로벌 흥행 수익 6억5000만 달러(약 8703억원)를 넘겼다. 3시간이라는 긴 분량에 R등급(청소년 관람 불가), 어려운 물리학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는 묵직한 전기 영화라는 진입 장벽에도 불구하고 놀런 감독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개봉 일정도 못 잡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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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끈 오펜하이머.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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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폭 투하 78년을 맞은 일본에서는 아직 개봉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공개된 ‘바비’‘미션 임파서블:7’이 이미 일본 극장에 걸린 것과도 대비된다. ‘오펜하이머’의 미국 시사회 때 일본 교도통신은 “‘원폭의 아버지’ 전기 공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황폐화 묘사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영화가 R등급을 받은 것이 피폭 묘사가 끔찍해서일 줄 알았는데, 정사 장면 때문이었다”(도요케이자이)며 실망을 표하거나, “과학자의 고뇌를 그리는 데 역점을 둔 나머지 원폭의 위험을 환기하는 것을 간과했다”(아사히신문)는 지적도 나왔다.

영화는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는 장면이나 피폭자들의 모습은 다루지 않는다. 놀런 감독은 이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삶에 대한 나의 해석”이라며 “원폭이 자칫하면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도 (트리니티) 실험 버튼을 누른 바로 그 방으로 관객들을 데려가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 관객들이 불편할 만한 장면들도 있다. 첫 원폭 실험이 성공한 뒤, 또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뒤 연구원들이 환호하는 모습이나, 폭탄 투하 도시를 결정하는 장면이 그렇다. 트루먼의 전쟁 장관 스팀슨이 “일본 내 12개 도시를 꼽았어요. 아니, 일본인들에게 문화적 의미가 큰 교토를 제외한 11곳이요. 교토는 아내와 신혼여행을 갔던 곳이기도 하죠”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대목이다. 감독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연기할 때 회의실의 다른 배우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배우들의 호연이 빛난 순간이 마음에 들어 이 장면을 꼭 영화에 넣겠다 마음먹었다”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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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원폭 피해를 희화화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의 합성 포스터. [사진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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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바비’와 같은 날 개봉하면서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영화의 포스터를 결합한 ‘바벤하이머’ 밈이 SNS에 유행했다. 유니버설 픽처스 재팬 측이 여기 ‘좋아요’를 눌렀다가 일본 네티즌들의 반발을 산 끝에 공식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오펜하이머’의 일본 공개는 한참 늦어질 전망이다.

일본에서는 놀런 감독의 인기가 한국만큼 높지 않다. 국내에서는 역대 박스오피스 100위권에 ‘인터스텔라’(29위), ‘다크 나이트 라이즈’(78위), ‘인셉션’(87위) 등 그의 작품이 세 편이나 있지만 일본에서는 역대 외화 흥행 수익 100위권에 들지 못했다. 근작 ‘테넷’이 2500만 달러, ‘덩케르크’가 1480만 달러 수익을 내는 데 그쳤다. 일본에서 외화 수익 100위를 기록한 ‘다이하드3’의 경우 4954만 달러였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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