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주요국, 아프간 외교공관 폐쇄
여성들, 극심한 차별·억압에 시달려
국제사회 지원 감소로 빈곤 일상화
유엔이 최근 펴낸 아프간 관련 보고서 일부다. 빈곤이 일상화한 아프간에서 이제 정치적·사회적 자유는 둘째 치고 ‘생존’이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프간 국민을 위한 국제사회 원조는 턱없이 부족하다. 유엔은 “인도주의적 호소에도 불구하고 7월 말까지 모금된 돈이 목표액의 4분의 1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프간을 ‘더는 미래가 없는 나라’로 여겨 실망한 기부자들이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한 직후인 2021년 9월 한 탈레반 대원이 총을 든 채 카불 공항 주변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21년 8월15일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20년 만에 정권을 다시 장악한지 꼭 2년이 되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2021년 4월 “미군을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뒤 불과 4개월 만에 아프간은 다시 탈레반 치하에 놓였다.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한다. 1996년 처음 아프간 정권을 장악한 뒤 국민들, 특히 여성의 권리를 철저히 억압하는 정책을 폈다. 소녀들은 학교에서 내쫓겼고 성인 여자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2001년 9·11테러가 아프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이 사건 주모자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이 아프간에 숨어 있는 것으로 의심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 아래 아프간을 침공했다. 탈레반은 정권을 잃고 쫓겨났다. 미군이 아프간에 주둔하는 가운데 미국에 의존하는 친미 정권이 수립됐다.
비록 정국이 혼란하고 정부는 허약했으나 아프간 국민들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특히 여성들의 기쁨이 컸다. 이제 소녀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복장과 외출 등에 극심한 제약을 받던 여성들은 원하면 직업을 갖고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탈레반은 정권을 잃은 뒤에도 일정한 세력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을 공격했다. 점점 늘어나는 사상자 숫자는 미 행정부를 고심하게 만들었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아프간 철군이 논의되었고 바이든 행정부 들어 실행에 옮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 아프간 전사자 묘역에 늘어선 비석들을 좀 보라”고 외쳤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한 직후인 2021년 9월 카불의 한 대학 강의실에 남녀 학생 구분을 위한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군 없는 아프간 정부는 형편없는 약체였다. 덩치를 키운 탈레반이 수도 카불로 진격하자 정부군은 싸워보지도 않고 무기를 버린 채 달아나거나 투항했다. 카불이 탈레반 수중에 떨어지기 직전 아슈라프 가니 당시 대통령마저 돈가방을 든 채 줄행랑을 쳤다.
탈레반 재집권 후 아프간은 20년 전의 낙후한 사회로 되돌아갔다. 소녀들은 교육에서 배제됐고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여성들은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으면 밖에 나갈 수 없고 심지어 공원이나 체육관 출입도 금지됐다. 최근 탈레반은 전국의 미용실에 폐쇄령을 내렸다. 여성들이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율법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탈레반의 막무가내식 태도는 국제사회로 하여금 아프간에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장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탈레반 정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국가는 한 곳도 없다”고 꼬집었다. 유럽연합(EU)과 일본 정도가 소규모 공관을 유지하고 있을 뿐 서방 국가들은 진작 자국 공관을 폐쇄했다.
최근 탈레반의 미용실 폐쇄령 후 지하로 숨어 몰래 일을 하고 있다는 어느 여성 미용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합법 정부로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여성들에 대한 정책을 바꿀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프간에 살지 않는 이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