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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천태만상 가짜뉴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을 괴롭힌 주범은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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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와타나베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

램지어 교수 “조선인 학살은 정당방위” 주장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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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 등으로 무장한 요코하마(추정) 자경단. 동농재단 강상덕자료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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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이 발생한 1923년 9월1일부터 그해 연말까지 나온 기사 1088개에서 뽑은 2144건의 행위에서 ‘조선인이 폭행했다’는 578건(27.3%)으로 가장 많다. 내용을 보면 방화 66건, 교전·습격 61건, 살인 47건, 폭행 46건, 약탈·강도강탈 45건, 독 살포 36건 순이다.

다음이 ‘자경단 등이 폭행했다’ 260건(12.3%), ‘일반 민간인이 조선인을 폭행했다’가 209건(9.9%), ‘누군가가 조선인을 폭행했다’가 121건(5.7%)이다.

일본 도요대학 명예교수 미카미 슌지와 메이지대학 교수 오하타 히로시가 1986·1987년 두 차례에 걸쳐 ‘도쿄대학 신문연구소 기요’에 발표한 ‘관동대지진하의 조선인 보도와 논조’라는 논문에 나온 내용이다. 두 학자는 일본 신문 17개, 조선 신문 3개의 모든 지면에서 조선인 관련 기사를 찾아내 ‘행위의 구체적 내용’ ‘기사의 정보원’ 등을 분석했다. 이 통계가 보여주는 건 오보, 즉 ‘가짜뉴스’의 방대한 규모다.

두 학자는 당시 보도 경향을 두고 다음과 같이 결론 냈다. “군·경찰·일반인 사이에 퍼진 유언비어를 대대적으로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해 독자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로 인해 각지에서 학살 사건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당시 언론이 조선인 학살에 대해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일부 ‘악한 자경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당국 의도에 편승했으며, ‘불령선인’과 ‘착한 선인’의 호칭을 구별 사용해 조선인에 대한 국민의 편견과 적대심을 조장했다고도 했다.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인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이규수 옮김, 삼인)에서 이 논문을 주요하게 다룬다.

1980년대 후반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의 방화, 강도, 독 살포 등이 유언비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도, 가짜뉴스 활용은 지금껏 이어진다. 책 부제는 ‘램지어 교수의 논거를 검증한다’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미쓰비시그룹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연구자라는 뜻)인 마크 램지어가 2019년 6월 발표한 ‘경찰 민영화: 일본의 경찰, 조선인 학살 그리고 민간 경비 회사’라는 논문이 검증 대상이다. 램지어가 내린 결론은 일본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은 경찰 민영화의 한 사례이자 정당방위였다는 것이다.

램지어는 “조선인 폭도들이 집집마다 방화하면서 요코하마에서 도쿄로 향하고 있다”는 ‘오사카 아사히신문’의 기사, “조선인 집단이 거리에 흩어져 가스에 불을 질러 120곳 이상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어떤 곳에서 그들은 폭탄을 던졌고, 재해 후에는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가호쿠신보’의 기사 등을 인용했다. 램지어는 “기묘하게도 역사가들은 조선인의 범죄에 대한 소문을 기정사실로 다루지 않는다”고도 했다.

와타나베는 역사가들이 유언비어로 여겨온 근거를 제시한다. 내각부 중앙방재회의 ‘재해 교훈 계승에 관한 전문조사회’가 2008년에 정리한 보고서 중 고토 신페이의 문서를 보면,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저지른 살상 사건은 살인 2건, 상해 3건이다. 모두 피의자 미상이고 살해당한 피해자도 미상이라고 밝힌다. 와타나베는 “형사사건에서 조선인의 범행으로 사실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또한 소문으로 떠돌던 무장봉기, 방화, 독 살포 등에 대해서는 일정한 계획 아래 맥락 있는 비행을 저지른 흔적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고토 신페이 문서에는 요코하마에서는 화재가 228건 확인됐지만, “화재 원인으로 방화에 나선 자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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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시노 포로수용소에 갇힌 조선인과 야마나시 계엄사령관. 동농재단 강상덕자료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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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는 유아사 구라헤이 경시총감의 “선인들이 폭탄을 들고 있다고 해서 체포해보니 사과였다. … 뜬소문에 현혹되어 조선인을 폭행한 것은 조선 통치에서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발언을 실은 ‘도쿄 니치니치신문’ ‘선인의 폭탄/ 사실은 사과 /어이가 없는 유언비어’ 보도(9월8일자)를 확인했다. 역사학자 야마다 쇼지는 도쿄의 검찰 수장인 미나미타니 지테이 검사정(지금의 검사장)의 담화를 여러 신문(9월 9일자)에서 찾았다. “이번 대지진 때 불령선인이 제도로 발호하고 있다는 풍설에 대해 당국에서도 상당히 경계하여 조사하고 있지만, 유언비어만 횡행할 뿐이다. 7일 저녁까지 그런 사실은 절대 없다.… 어쩌면 약간의 절도죄나 기타 범죄인이 나올지 몰라도 유언비어와 같은 범죄는 절대 없을 것으로 믿는다.

유언비어는 줄지 않았다.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지 1년 뒤인 1924년 8월 31일 ‘요미우리신문’ 기사 제목은 ‘폭동 계획이라니/ 바보 같은 소문/ 선인 불온의 소문에/ 유아사 내무차관이 말하다’이다. “선인들이 지난해 지진으로 박해받은 것에 대한 복수로 이번 1일에 예전부터 계획한 대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을 두고 유아사가 “아직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는데. 그런 소문을 내는일은 바보 같은 짓이다.…조선인이라고 해서 다수의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설혹 모를 위험한) 그런 일을 대비하여 자경단의 역할 따위는 조금도 필요 없다”고 말한 내용이다.

와타나베는 거리의 피난민에게 들은 풍설이나 철도 통신망을 통해 얻은 정보, 그리고 군의 전문(電文) 등이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마구 호외로 발행됐다고 말한다. “철로를 따라 전국을 연결하는 국철 통신망을 통해 전언 게임”처럼 퍼졌다. 일본 당국은 조선인 학살을 정당화하려면 ‘유언비어가 실재한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와타나베는 “관동대지진 때 민심이 혼란스러워 풍설과 유언비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토록 냉정을 자랑하는 신문기지도 마침내 상궤를 벗어난 오보를 거듭했다. 자연발생적인 가짜 뉴스와 권력이 만든 인위적인 가짜 뉴스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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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당시 요코하마 야마시타정 오리엔탈호텔. . 동농재단 강상덕자료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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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는 2021년 초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사건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쏟아낸 가짜뉴스의 결과로 본다. 관동대지진 때 가짜뉴스와 현시대 가짜뉴스를 연결하며 이렇게 말했다. “특정한 집단에 힘을 실어주는 가짜 뉴스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이 있는 그대로 믿어버리는 거짓말이다. 어떤 사회나 사람들 심성에는 설령 거짓말이라도 마음속으로 믿고 싶은 거짓말이 있을지도 모른다.”

와타나베는 18일 오후 4시 전태일기념관에서 ‘램지어 논문이 나타내는 학살부정론의 구조와 정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다. 라운드테이블엔 옮긴이 이규수(전북대 학술연구 교수), 이성수(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 조경희(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부교수)가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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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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