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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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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대회에서 상의 탈의 신체검사…인도네시아 경찰 ‘성희롱’ 조사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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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유니버스 참가자 선정

“성적학대와 존엄성 훼손 행위”

CCTV 녹화돼 추가 피해 우려

트럼프·재벌, 역대 세계조직위 관장

“미인대회에서 맨몸의 상반신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상의를 벗은 채 신체검사에 응하고 사진을 찍어야 했어요. 남성이 포함된 심사위원단 앞에서 엉덩이를 보여주라는 요청까지 받았습니다. 누군가 내 몸을 훔쳐보는 것 같아 불쾌하고 힘들었습니다.”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를 지닌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미인대회에서 여성성 비하와 성희롱 논란이 불거졌다. 자카르타에서 열린 미스 인도네시아에서 여러 명을 상대로 한 성추행 행위가 벌어졌다는 폭로가 나왔다. 미스 유니버스 출전자를 선발하는 미인대회 최종심 참가자들이 “상의를 벗고 신체검사를 받았다”며 행사 주최 측과 심사위원들을 경찰에 고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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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인도네시아에 참가한 후보들이 앉아 있다. 미스 인도네시아 조직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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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위 “상의 탈의하고, 엉덩이도 보여줘”

더띡뉴스와 콤파스TV 등 외신에 따르면 미인대회 참가자들은 성추행 등의 혐의로 주최 측을 경찰에 고소했다. 공동 고소에는 참가자 5명 등 6명이 이름을 올렸다. 고소장을 제출한 멜리사 앙그래니 변호사는 8일 이런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경찰도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 자카르타경찰청 트루노유도 비스누 안디코 대변인은 “고소장은 7일 접수됐으며, 경찰의 조사와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율리안사 자카르타경찰청 청소년·여성 담당 국장은 “피해자들을 불러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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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왕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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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인대회는 7월 29일부터 8월 3일까지 자카르타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남성이 포함된 심사위원들이 신체검사를 한다며 참가자들에게 속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더띡닷컴에 따르면 참가자 30명에게 탈의 지시가 내려졌는데, 5명의 탈의 모습이 찍힌 것으로 파악됐다. 변호인 측은 “위원들의 요청에 따라 참가자 5명이 상의를 벗었으며, 이런 과정은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고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CNN인도네시아는 참가자 3명에게는 브래지어를 벗으라는 요구까지 했다고 전했다. 참가자들은 신체검사와 관련해 사전설명을 들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심사 현장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됐던 상태여서 해당 장면 녹화로 추가 피해도 예상된다고 현지매체는 전했다. 한 참가자는 기자회견에서 “다리를 벌리라는 등 부적절한 포즈를 취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피해자의 발언 모습은 음영처리됐다. 변호인 측은 “우리는 주최 측이 여성의 존엄성을 훼손했다고 본다”며 “신체검사를 할 때 남성 심사위원도 있었는데 이는 참가자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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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인도네시아에 참가한 후보들이 웃으며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더띡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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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조사·주최 측 SNS 폐쇄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는 8일 성명에서 (성추행 등의) 혐의를 인지했으며 사안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직위는 “미스 유니버스는 (참가자들에게 자행된) 성적 학대와 부적절 행위에 대한 혐의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여성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미스 유니버스의 최우선 관심”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인스타그램에서 공유되면서 더띡뉴스 등의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인스타그램에서 신체검사 논란을 공론화한 샐리 지오바니는 “참가자들이 옷을 벗고 사진을 찍는 심사에 항의했다”며 “(탈의) 사진이 공유될 수 있어 규정을 심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미스 인도네시아 관계자들은 관련 자료를 없앴다고 해명했다. 일부 심사위원은 위원직에서 사임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무슬림 종교단체 등이 미인대회 개최를 반대해 왔다. 미스 인도네시아는 뿌뜨리 재단(Yayasan Puteri)이 관장해 왔지만, 올해 행사는 CSK가 주최했다. CSK와 이 회사의 포피 짜펠라 대표는 논란이 커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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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미인대회에 참가한 여성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띡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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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슬림 종교단체 “미인대회 반대”

이번 대회는 11월 엘살바도르에서 개최되는 세계 대회에 참가할 인도네시아 대표를 뽑기 위해 이뤄졌다. 1952년 창설된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1996~2002년 운영했다.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는 지난해 태국의 유명 미디어재벌 소유자이면서 트랜스젠더 옹호자인 앤 짜끄라퐁 짜끄라쭈타팁에 2000만 달러의 비용으로 인수됐다.

첨언하자면 이 뉴스를 접하면서 당혹스러웠다. 세계 최고의 미인을 뽑는다는 미스 유니버스와 이 대회의 대표를 뽑는 미스 인도네시아 개최는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 국가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특정 종교를 국교로 두지 않고 있지만,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도 많다. 원리주의 혹은 근본주의 이슬람교가 아닌 세속화된 이슬람교가 대세인 나라다. 최근엔 형법의 혼전 성관계 금지 조항 삽입 추진이나 생활 속의 이슬람 의식 실천이 강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나라에서 상업성이 두드러진 행사가 열리고, 여성을 상품화하는 것도 넘쳐 성희롱과 성적학대까지 미인대회 심사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된 모습은 크게 그릇된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이 편의적으로 이용되는 문제도 잘못이다. 필요할 때는 신성성을 주장하다가, 다른 상황에서는 여성을 남성의 부수적인 대상으로 하는 젠더 감수성은 크게 잘못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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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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