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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아동학대 피해와 대책

정서적 아동학대 기준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 결국 법관 재량에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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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교사가 기소된 사건 판결문 20건 분석
대법원 판례는 "여러 요소 종합적 고려해야"
그러다보니 다른 사건보다 재량 영역이 넓어
고의성 있어도 '무죄', 훈육이어도 '유죄' 가능
한국일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교권보호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을 들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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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주호민씨의 아들을 담당하던 특수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해당 특수교사의 혐의인 '정서적 아동학대' 기준의 모호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법원은 '훈육'과 '학대'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정서적 학대에 대한 판결을 내려왔지만, 실제 하급심 판례를 보면 담당 법관이 얼마나 전후 맥락을 살피는지에 따라 판단이 엇갈릴 여지도 충분히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결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


2일 한국일보가 분석한 20여 건의 아동학대 사건(피고인이 모두 보육교사) 판결문에 따르면, 신체적 학대 없이 정서적 학대만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유죄 사건의 대부분은 신체적 학대의 반복성이 드러난 상황에서, 아동을 차별하거나 고립시키는 행위가 정서적 학대로 인정된 경우였다. 다만 낮잠을 자지 않으려는 아동에게 무서운 영상을 강제로 시청하게 한 보육교사의 경우, 정서적 학대만으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었다.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정서적 학대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고의성'이다. 다만 문제는 교사의 고의성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법원이 △교사와 아동의 관계 △교사의 구체적 행동 △아동의 연령·성별·성향 △행위의 장소·시기·반복성 △그런 행동이 나오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2020년 3월 대법원 판례)는 점이다.

결국 동일한 행동, 예컨대 아동에게 소리를 지르는 행위가 상황에 따라 학대인지 훈육인지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아동학대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사회통념에 비춰봤을 때 (교사의) 언행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을지, 또 그 언행으로 인해 교사가 거두려고 했던 훈육 목표가 인정되는지 등을 두루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서적 학대 개념 '무한확장' 주의해야

한국일보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가 함께 인정된 사건의 범죄일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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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개별 상황에 대한 판단이 중시되다 보니, 2019년엔 재판부가 "학대의 고의가 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명시하고서도 정서적 학대를 인정한 사례도 있었다. 당시 법원은 피해 아동이 '장난감을 치우라는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거나, 1세 반에 데려가 다른 아동들이 주목하게 만든 혐의로 기소된 보육교사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기본적으로는 훈육 목적이었지만, "훈육을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반면 교사가 감정적으로 흥분해 저지른 언행임을 인정했음에도, 전후 맥락을 살펴 무죄 판단을 내린 경우도 있었다. 2018년 청주지법은 떼쓰는 아동의 공책과 졸업앨범을 던져 정서적 학대 혐의로 기소된 보육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법원은 "보육교사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지적했지만, "아동이 온몸으로 달려들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위 등을 반복했고, 해당 교사가 8분간 타이르고 훈계하며 실랑이를 벌이며 상당히 지쳤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감안했다.

그리고 당시 청주지법은 "정신적 또는 정서적 학대행위는 그 개념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으므로, 최소한 형사처벌의 대상 행위에 있어서는 객관성·명확성·예견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며 정서적 학대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함을 강조했다.

대법원 "가능성만으로도 학대 인정"


이렇게 모호한 정서적 학대 판단 기준은 과거 헌법재판소 심판대에도 오른 적이 있다. 2014년 아동학대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보육교사와 어린이집 원장이 정서적 학대 처벌조항인 아동복지법 제17조 5항을 두고 "명확성 원칙(기본권을 제한하는 법규범은 명확해야 한다)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낸 사건이었다. 헌재는 이 사건에서 "해당 조항이 다소 추상적이고 광범위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법관이 범행 동기, 경위, 아동의 상태, 가해자 성향, 범행 반복성 등을 따져 구체적 사례에 적용할 수 있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어떤 행위가 정서적 학대인지는) 법관의 해석과 조리(사물의 본질적 법칙이나 이치)에 의해 구체화될 수 있다"고 밝히며 법관의 재량을 인정했다. 여기에 대법원이 2015년 12월 "△아동 발달이 저해될 위험 또는 가능성만으로도 △위험 또는 가능성에 대한 미필적 인식만으로도, 정서적 학대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하면서, 정서적 학대 사건은 사안에 따라 다르게 판단(케이스 바이 케이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정서적 학대 사건에서 법관 재량을 넓힌 대법원 취지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교권침해 및 학교폭력 사건을 다수 대리한 이지헌 변호사는 "정서적 학대가 존재한다는 법의 취지는 인정하지만, 추상적 법 조문에 해석 범위를 넓혀버린 바람에 법관 재량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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