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체육대학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체육 특성화 국립대학으로 그동안 메달리스트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왔습니다. 그런데 한체대 출신의 체조선수가 실업팀에 들어가면 계약금의 10%를 학교 측이 사실상 강제로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저희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관행과 전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학교 측이 선수들의 돈을 얼마나 어떻게 가져갔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끝까지판다'팀의 단독 보도, 먼저 유수환 기자입니다.
<기자>
한국체육대 체조 전공 학생 중에 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에 입단하는 선수들 대부분은 계약금이라는 것을 받습니다.
각자의 능력, 또 입단하는 팀의 사정에 따라 액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어린 선수들이 눈물과 땀을 쏟으며 노력한 것을 처음으로 인정받는 상징적인 돈입니다.
저희 '끝까지판다'팀에 들어온 제보는 이 소중한 계약금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A 씨/한체대 출신 선수 : 받은 계약금의 10%를 이제 학교에 내야 한다고 연락이 와서 이제 냈죠. 계좌 이체로.]
[B 씨/한체대 출신 선수 : 계약금 10%는 대학교에다가 내야 된다고. '내기 싫으면 내지 말라'고 했으면 안 냈을 것 같은데….]
실업팀 입단 계약금 가운데 10%가량을 학교 측이 반강제로 가져갔다는 것인데, 피해자는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C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이미 위에 선배들부터 쭉 그래와서, 알고 있어가지고. 그때 형들이 낸다고 할 때는 제 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신경 안 썼는데, 내야 된다고 하니까 이제 아까웠죠. 불만 있는데, 불만 있다고 해서 뭐 가서 따지거나 그럴 수는 없으니까.]
국가대표, 국제 대회 금메달리스트도 포함됐고, 수수 기간은 확인된 것만 최근까지 최소 10년에 달합니다.
[D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우리가 이걸 왜 내야 되지?'라는 게 많았었죠. 우리가 고생해서 받은 돈인데…. (그 당시) 친구 한 명이 이걸 안 내면 네 인생이 고꾸라질 수도 있는데 (안 내는 게) 가능하겠냐. 저희들도 '어쩔 수 없이'…. 그냥 그게 관례였던 거죠.]
경제적인 형편이 어렵다고 했는데도 수십만 원을 받아 간 사례도 있었습니다.
[E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원래 10%로 돼 있는데 제가 그거는 안 된다 해가지고, 개인 사정이 있어서 수십만 원만 냈어요.]
한체대 체조부 입학생은 매해 7명 정도, 많게는 한 해 3천만 원 이상 걷기도 해 수수 기간을 감안하면 총액은 최소 억대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왜 받아 갔는지 체조부 측에 묻자 "학생들의 자발적인 기금 문화"라며 "비인기 종목의 취약한 재정 지원 탓에 40년 전부터 시작된 기부 관행"이라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한체대 체조부 관계자 :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통상적으로, 전통적으로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이거는 강제적인 건 절대 아니에요.]
해명이 사실일까.
끝까지판다팀이 입금 과정을 따져봤더니, 독촉 전화까지 있었고,
[D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전화로 계속 아직 입금 안 됐냐, 어떻게 됐냐 왜 너만 아직 안 됐냐, 이런 식으로….]
'학교발전기금 공식 계좌'가 있는데도, 조교 명의 또는 재학생 명의 계좌를 통해 돈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F 씨/한체대 출신 선수 : (학교 계좌로 입금하셨나요?) 아니요. 그 당시에 선수, (재)학생, 그 친구 계좌로 (보내줬어요).]
[G 씨/한체대 출신 선수 : (10%를) 000 조교한테 보내고, 나머지는 부모님 통장에 보내드렸죠.]
자발적 납부다, 오랜 전통이라는 말은 무색해졌고, 개인 계좌로 받았다는 점에서 사용처에 대한 의혹만 커졌습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오영택, VJ : 김준호, CG : 이준호, 스크립터 : 김창호)
---
<앵커>
들으신 것처럼 선수들은 고생해서 번 돈을 왜 학교에 내야 하는지 의심하면서도 학교 측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이 실제로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도 선수들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런 일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 것인지 저희가 취재해봤더니, 체조계의 유력 인사인 한국체대의 한 교수 이름이 나왔습니다.
계속해서 화강윤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끝까지판다팀은 한체대 체조부를 거쳐 실업팀에 입단한 졸업생 수십 명을 일일이 인터뷰했습니다.
이들은 조교들의 요구에 따라 입단 계약금의 10%가량을 송금했지만, 이 돈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B 씨/한체대 출신 선수 : 그냥 어디에 썼는지만 알고 싶어요. (어디에 썼는지 설명은 안 해주던가요?) 네,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어요.]
조교들은 후배들을 위해 공용품이나 단체복 같은 것들을 사는 데 쓴다고 했는데, 처음엔 침묵하던 선수들도 '후배 대물림'은 막아야겠다며 처음부터 이 설명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C 씨/한체대 출신 선수 : (후배들) 단체복을 맞춰준다거나… 근데 그게 그렇다 해도 그 액수가 훨씬 남는단 말이죠?]
[D 씨/한체대 출신 선수 : (후배) 옷 해주는 데 몇천만 원이 들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정작 받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후배'도 있었습니다.
[E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옷도) 우리 돈으로 사 입었고. 그렇다고 회식을 한번 했나? 아니에요.]
선수들은 이런 부적절한 송금의 배후에 대한체조협회 임원으로 한국 체조계에 영향력이 큰 체조부 A 교수가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F 씨/한체대 출신 선수 : '그 10%를 누가 쓸까?'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교수님 말고는 없어요.]
[G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좋겠다. 이거 교수가 먹을 거 아니야?" 이런 얘기하죠. 그냥 추측일 뿐인 거죠.]
[H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조교 선생님들은 4년마다 한 번씩 바뀌신단 말이죠. 그럼 4년마다 조교 선생님들이 계속 그렇게 했을 리는 없고….]
취재진을 만난 A 교수는 졸업생들이 자발적으로 낸 돈이며 일종의 기부라고 말했습니다.
[A 교수/한체대 체조부 : 애들한테 발전기금을 받은 건 사실이죠. (학생들을 위한 비용은 나오지만) 그거 가지고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학교가 어려울 때는 도네이션(기부) 받아서 학생들한테 지원하고 그런 겁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기부 행위로 인정받지도 못했다고 반박했습니다.
[I 씨/한체대 출신 선수 부모 : 연말정산을 하려고 (기부 내역을) 떼어달라니까 안 된다고 그랬대요. 안 떼어줬대요.]
[이상현/변호사 : (만약 일부라도) 교수들이 사적으로 유용했다면 이것은 공갈죄, 사기죄 등이 문제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한체대 측은 "이번 사안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건 분명하다"며 자체 조사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학칙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이승진, CG : 서승현, VJ : 김준호)
---
<앵커>
저희는 학교 측이 전통과 관행이라면서 선수들로부터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계속 추적해봤습니다. 선수들이 돈을 보냈던 그 계좌를 확보해서 내역을 분석해봤더니, 곳곳에서 수상한 흔적들이 발견됐습니다.
이 내용은 권지윤 기자 단독 취재했습니다.
<기자>
끝까지판다팀이 입수한 계좌 내역입니다.
2013년에 개설되어 2년 정도 사용한 계좌인데, 체조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입금한 흔적이 나옵니다.
입금된 돈은 어디에 사용됐을까,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은 계좌 주인은 한체대 체조부 출신 B 씨였습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형들한테 10%씩 떼간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게 여기로 들어올 줄은 몰랐어요.]
B씨는 대학 신입생 시절 조교 지시로 통장과 체크카드를 자신 명의로 만들어 건넨 뒤 계좌 존재도 몰랐었다고 말했습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조교가) '공금 통장 만들어와라. 공금 통장 쓸 거다' 해가지고… 싫어요!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진짜 말 그대로 까라면 까야 해요 그냥…]
문제의 계좌에는 총 4천여 만 원이 입금되었고 45번 출금이 이뤄졌는데, 그 가운데 36번이 현금 인출입니다.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100만 원씩이었고, 어떤 날은 3분여 사이 100만 원씩 6번 연속 출금된 기록도 있습니다.
체조부 측은 밥값, 단체복 등 학생을 위해 투명하게 사용했다고 해명했지만, 내역을 보면 대부분 사용처를 알 수 없는 현금으로 인출되었습니다.
체크카드가 없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딱 3번만 사용된 체크카드, 한 번은 체조부 공용 냉장고 구매로 추정되고 나머지 두 건은 음식점에서 결제됐는데, 금액은 3, 4만 원 수준입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저희는 학교 밥만 먹고 지냈어요. 거기 밥 되게 잘 나오거든요. 따로 나와서 먹진 않았어요.]
B 씨 계좌를 사용한 체조부 측은 "사용한 내역을 빠짐없이 기록해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면서도 내역 공개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계좌 내역을 확인한 B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아 이거를 이런 식으로 이렇게 썼구나. 공금 통장으로 쓴다 해놓고선. 저도 뒤통수 맞은 기분… 후회가 돼요. 이거 빌려준 게 보니까 이런 식으로 썼다는 게.]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이승진, CG : 조수인·임찬혁)
---
<앵커>
이 내용 취재한 유수환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피해 선수 익명 보도 이유?
[유수환 기자 : 이제 피해 선수들을 만나보니 대부분 좁은 체조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공개될 경우 앞으로 선수 생활에 불이익을 당할 것을 매우 우려했습니다. 심지어는 저희에게 공개했던 계약금 액수만으로 본인 추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저희가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 모습이 과거 저희가 취재했던 미투 피해자들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취재를 시작해보니 체조계에서 제보자를 색출한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목소리를 내준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Q. 체조부 해명, 어떻게 봐야 하나?
[유수환 기자 : 문제의 A 교수와 체조부 측이 공식 입장문을 통해 언급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들, 피해자들을 두 번 상처입히는 말이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원하지 않는 송금을 강요할 때 썼던 말들이고, 또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이를 왜곡하려고 사용했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한체대의 공식 발전기금 내역서도 확인을 했는데요. 문제의 A 교수, 다달이 2만 원씩 돈을 내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또 한체대 본관에 가면 500만 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의 명패가 나열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수백만 원씩 낸 한체대의 선수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Q. 내일 보도 내용은?
[유수환 기자 : 내일(2일)은 저희가 입수한 이 계좌 내역에서 빠져나간 수상한 뭉칫돈이 어디로 갔는지 보도해드리겠습니다. 또 이 체조부의 해명처럼 정말 이 돈이 학생들을 위해 쓰였는지, 그런 것이 맞는지 확인한 내용도 같이 전해드리겠습니다.]
유수환 기자 ysh@sbs.co.kr
화강윤 기자 hwaky@sbs.co.kr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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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대학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체육 특성화 국립대학으로 그동안 메달리스트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왔습니다. 그런데 한체대 출신의 체조선수가 실업팀에 들어가면 계약금의 10%를 학교 측이 사실상 강제로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저희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관행과 전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학교 측이 선수들의 돈을 얼마나 어떻게 가져갔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끝까지판다'팀의 단독 보도, 먼저 유수환 기자입니다.
<기자>
한국체육대 체조 전공 학생 중에 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에 입단하는 선수들 대부분은 계약금이라는 것을 받습니다.
각자의 능력, 또 입단하는 팀의 사정에 따라 액수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어린 선수들이 눈물과 땀을 쏟으며 노력한 것을 처음으로 인정받는 상징적인 돈입니다.
저희 '끝까지판다'팀에 들어온 제보는 이 소중한 계약금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A 씨/한체대 출신 선수 : 받은 계약금의 10%를 이제 학교에 내야 한다고 연락이 와서 이제 냈죠. 계좌 이체로.]
[B 씨/한체대 출신 선수 : 계약금 10%는 대학교에다가 내야 된다고. '내기 싫으면 내지 말라'고 했으면 안 냈을 것 같은데….]
실업팀 입단 계약금 가운데 10%가량을 학교 측이 반강제로 가져갔다는 것인데, 피해자는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C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이미 위에 선배들부터 쭉 그래와서, 알고 있어가지고. 그때 형들이 낸다고 할 때는 제 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신경 안 썼는데, 내야 된다고 하니까 이제 아까웠죠. 불만 있는데, 불만 있다고 해서 뭐 가서 따지거나 그럴 수는 없으니까.]
국가대표, 국제 대회 금메달리스트도 포함됐고, 수수 기간은 확인된 것만 최근까지 최소 10년에 달합니다.
[D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우리가 이걸 왜 내야 되지?'라는 게 많았었죠. 우리가 고생해서 받은 돈인데…. (그 당시) 친구 한 명이 이걸 안 내면 네 인생이 고꾸라질 수도 있는데 (안 내는 게) 가능하겠냐. 저희들도 '어쩔 수 없이'…. 그냥 그게 관례였던 거죠.]
경제적인 형편이 어렵다고 했는데도 수십만 원을 받아 간 사례도 있었습니다.
[E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원래 10%로 돼 있는데 제가 그거는 안 된다 해가지고, 개인 사정이 있어서 수십만 원만 냈어요.]
한체대 체조부 입학생은 매해 7명 정도, 많게는 한 해 3천만 원 이상 걷기도 해 수수 기간을 감안하면 총액은 최소 억대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왜 받아 갔는지 체조부 측에 묻자 "학생들의 자발적인 기금 문화"라며 "비인기 종목의 취약한 재정 지원 탓에 40년 전부터 시작된 기부 관행"이라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한체대 체조부 관계자 :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통상적으로, 전통적으로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이거는 강제적인 건 절대 아니에요.]
해명이 사실일까.
끝까지판다팀이 입금 과정을 따져봤더니, 독촉 전화까지 있었고,
[D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전화로 계속 아직 입금 안 됐냐, 어떻게 됐냐 왜 너만 아직 안 됐냐, 이런 식으로….]
'학교발전기금 공식 계좌'가 있는데도, 조교 명의 또는 재학생 명의 계좌를 통해 돈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F 씨/한체대 출신 선수 : (학교 계좌로 입금하셨나요?) 아니요. 그 당시에 선수, (재)학생, 그 친구 계좌로 (보내줬어요).]
[G 씨/한체대 출신 선수 : (10%를) 000 조교한테 보내고, 나머지는 부모님 통장에 보내드렸죠.]
자발적 납부다, 오랜 전통이라는 말은 무색해졌고, 개인 계좌로 받았다는 점에서 사용처에 대한 의혹만 커졌습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오영택, VJ : 김준호, CG : 이준호, 스크립터 : 김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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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들으신 것처럼 선수들은 고생해서 번 돈을 왜 학교에 내야 하는지 의심하면서도 학교 측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이 실제로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도 선수들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런 일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 것인지 저희가 취재해봤더니, 체조계의 유력 인사인 한국체대의 한 교수 이름이 나왔습니다.
계속해서 화강윤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끝까지판다팀은 한체대 체조부를 거쳐 실업팀에 입단한 졸업생 수십 명을 일일이 인터뷰했습니다.
이들은 조교들의 요구에 따라 입단 계약금의 10%가량을 송금했지만, 이 돈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B 씨/한체대 출신 선수 : 그냥 어디에 썼는지만 알고 싶어요. (어디에 썼는지 설명은 안 해주던가요?) 네,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어요.]
조교들은 후배들을 위해 공용품이나 단체복 같은 것들을 사는 데 쓴다고 했는데, 처음엔 침묵하던 선수들도 '후배 대물림'은 막아야겠다며 처음부터 이 설명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C 씨/한체대 출신 선수 : (후배들) 단체복을 맞춰준다거나… 근데 그게 그렇다 해도 그 액수가 훨씬 남는단 말이죠?]
[D 씨/한체대 출신 선수 : (후배) 옷 해주는 데 몇천만 원이 들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정작 받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후배'도 있었습니다.
[E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옷도) 우리 돈으로 사 입었고. 그렇다고 회식을 한번 했나? 아니에요.]
선수들은 이런 부적절한 송금의 배후에 대한체조협회 임원으로 한국 체조계에 영향력이 큰 체조부 A 교수가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F 씨/한체대 출신 선수 : '그 10%를 누가 쓸까?'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교수님 말고는 없어요.]
[G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좋겠다. 이거 교수가 먹을 거 아니야?" 이런 얘기하죠. 그냥 추측일 뿐인 거죠.]
[H 씨/한체대 출신 선수 : 조교 선생님들은 4년마다 한 번씩 바뀌신단 말이죠. 그럼 4년마다 조교 선생님들이 계속 그렇게 했을 리는 없고….]
취재진을 만난 A 교수는 졸업생들이 자발적으로 낸 돈이며 일종의 기부라고 말했습니다.
[A 교수/한체대 체조부 : 애들한테 발전기금을 받은 건 사실이죠. (학생들을 위한 비용은 나오지만) 그거 가지고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학교가 어려울 때는 도네이션(기부) 받아서 학생들한테 지원하고 그런 겁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기부 행위로 인정받지도 못했다고 반박했습니다.
[I 씨/한체대 출신 선수 부모 : 연말정산을 하려고 (기부 내역을) 떼어달라니까 안 된다고 그랬대요. 안 떼어줬대요.]
[이상현/변호사 : (만약 일부라도) 교수들이 사적으로 유용했다면 이것은 공갈죄, 사기죄 등이 문제될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한체대 측은 "이번 사안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건 분명하다"며 자체 조사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학칙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이승진, CG : 서승현, VJ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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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저희는 학교 측이 전통과 관행이라면서 선수들로부터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계속 추적해봤습니다. 선수들이 돈을 보냈던 그 계좌를 확보해서 내역을 분석해봤더니, 곳곳에서 수상한 흔적들이 발견됐습니다.
이 내용은 권지윤 기자 단독 취재했습니다.
<기자>
끝까지판다팀이 입수한 계좌 내역입니다.
2013년에 개설되어 2년 정도 사용한 계좌인데, 체조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입금한 흔적이 나옵니다.
입금된 돈은 어디에 사용됐을까, 수소문 끝에 어렵게 찾은 계좌 주인은 한체대 체조부 출신 B 씨였습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형들한테 10%씩 떼간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게 여기로 들어올 줄은 몰랐어요.]
B씨는 대학 신입생 시절 조교 지시로 통장과 체크카드를 자신 명의로 만들어 건넨 뒤 계좌 존재도 몰랐었다고 말했습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조교가) '공금 통장 만들어와라. 공금 통장 쓸 거다' 해가지고… 싫어요!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진짜 말 그대로 까라면 까야 해요 그냥…]
문제의 계좌에는 총 4천여 만 원이 입금되었고 45번 출금이 이뤄졌는데, 그 가운데 36번이 현금 인출입니다.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100만 원씩이었고, 어떤 날은 3분여 사이 100만 원씩 6번 연속 출금된 기록도 있습니다.
체조부 측은 밥값, 단체복 등 학생을 위해 투명하게 사용했다고 해명했지만, 내역을 보면 대부분 사용처를 알 수 없는 현금으로 인출되었습니다.
체크카드가 없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딱 3번만 사용된 체크카드, 한 번은 체조부 공용 냉장고 구매로 추정되고 나머지 두 건은 음식점에서 결제됐는데, 금액은 3, 4만 원 수준입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저희는 학교 밥만 먹고 지냈어요. 거기 밥 되게 잘 나오거든요. 따로 나와서 먹진 않았어요.]
B 씨 계좌를 사용한 체조부 측은 "사용한 내역을 빠짐없이 기록해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면서도 내역 공개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계좌 내역을 확인한 B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B 씨/계좌주·당시 한체대 재학생 : 아 이거를 이런 식으로 이렇게 썼구나. 공금 통장으로 쓴다 해놓고선. 저도 뒤통수 맞은 기분… 후회가 돼요. 이거 빌려준 게 보니까 이런 식으로 썼다는 게.]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이승진, CG : 조수인·임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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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내용 취재한 유수환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피해 선수 익명 보도 이유?
[유수환 기자 : 이제 피해 선수들을 만나보니 대부분 좁은 체조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공개될 경우 앞으로 선수 생활에 불이익을 당할 것을 매우 우려했습니다. 심지어는 저희에게 공개했던 계약금 액수만으로 본인 추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저희가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 모습이 과거 저희가 취재했던 미투 피해자들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취재를 시작해보니 체조계에서 제보자를 색출한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목소리를 내준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Q. 체조부 해명, 어떻게 봐야 하나?
[유수환 기자 : 문제의 A 교수와 체조부 측이 공식 입장문을 통해 언급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들, 피해자들을 두 번 상처입히는 말이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원하지 않는 송금을 강요할 때 썼던 말들이고, 또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이를 왜곡하려고 사용했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한체대의 공식 발전기금 내역서도 확인을 했는데요. 문제의 A 교수, 다달이 2만 원씩 돈을 내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또 한체대 본관에 가면 500만 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의 명패가 나열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수백만 원씩 낸 한체대의 선수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Q. 내일 보도 내용은?
[유수환 기자 : 내일(2일)은 저희가 입수한 이 계좌 내역에서 빠져나간 수상한 뭉칫돈이 어디로 갔는지 보도해드리겠습니다. 또 이 체조부의 해명처럼 정말 이 돈이 학생들을 위해 쓰였는지, 그런 것이 맞는지 확인한 내용도 같이 전해드리겠습니다.]
유수환 기자 ysh@sbs.co.kr
화강윤 기자 hwaky@sbs.co.kr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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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체육대학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체육 특성화 국립대학으로 그동안 메달리스트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왔습니다. 그런데 한체대 출신의 체조선수가 실업팀에 들어가면 계약금의 10%를 학교 측이 사실상 강제로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저희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관행과 전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학교 측이 선수들의 돈을 얼마나 어떻게 가져갔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한국체육대학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체육 특성화 국립대학으로 그동안 메달리스트를 비롯해 많은 선수들을 배출해왔습니다. 그런데 한체대 출신의 체조선수가 실업팀에 들어가면 계약금의 10%를 학교 측이 사실상 강제로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저희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관행과 전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학교 측이 선수들의 돈을 얼마나 어떻게 가져갔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