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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통일부 ‘남북대화·교류’ 사실상 폐지···장관 교체기 외부출신 차관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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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영호 신임 통일부 장관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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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남북 대화·교류·협력 조직을 형해화하는 ‘부처 폐지’ 수준의 조직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북한을 적대적으로만 바라보는 윤석열 대통령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법에 규정된 통일부 본연의 역할과 역행할뿐더러 향후 대화 재개에 대비하는 조직적 역량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통일부 차관이 장관 교체기에 조직개편을 주도하면서 윤 대통령의 ‘차관 정치’가 현실화한 모습이다.

남북 대화·교류 대폭 축소


문승현 통일부 차관이 28일 발표한 통일부 조직개편 방향은 남북 대화·교류·협력 조직을 사실상 없애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현재 별도 조직인 교류협력국, 남북회담본부, 남북출입사무소, 개성공단 업무를 다루는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을 하나의 전담기구로 통폐합한다는 것이다.

현재 실장급 조직(남북회담본부)과 나머지 3개 국장급 조직이 하나의 국장급 조직으로 축소되면 남북 대화·교류·협력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통일부 현원 617명에서 감축될 80여명의 상당수는 해당 조직들 소속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 인권과 북한 정보분석 조직은 강화된다. 장관 직속으로 납북자와 국군포로, 북한 억류자 문제를 다루는 ‘납북자대책반’이 만들어진다. 문 차관은 “(김영호 신임) 장관의 어젠다(의제)”라고 말했다. 북한 정보의 경우 주민 수용소 등 인권 분야에 대한 분석을 강화하고 국내외 정보기관과 협력을 증진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은 적’ 윤 대통령 의지


이번 통일부 조직개편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 대화·교류·협력 기능을 약화해온 세 차례 조직개편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교류협력실을 교류협력국으로 급을 낮추고, 남북회담본부의 하위 부서들을 통합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주요 실·국을 사실상 폐지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통일부 역할을 바꾸겠다는 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이 지난 2일 “통일부는 북한지원부가 아니다”라며 “앞으로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러한 대대적 조직개편은 예상돼왔다.

윤 대통령은 그간 핵무력을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대결적 통일·대북정책을 강조해왔다. 북한과의 대화·교류를 추진한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적의 선의에 의존한 가짜 평화”라고 비난하며 “힘에 의한 평화”를 주창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주장은 내부의 체제 변화를 기대하는 ‘북한 붕괴론’ 인식이라는 분석도 제기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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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정부서울청사 내 통일부 간판 아래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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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고유 기능에서 ‘역행’


통일부 조직개편 방향은 통일부 본연의 역할에서 역행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대통령령인 ‘통일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는 통일부 직무를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북한정세 분석,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로 규정한다. 대화·교류·협력이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다.

통일부는 현재 남북 대화·교류가 끊긴 상황을 감안하면 관련 조직의 축소는 업무 효율화 측면에서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북 긴장 국면에서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려면 대화·교류·협력 기능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대적으로 조직을 줄여놓으면 향후 펼쳐질 수 있는 대화 국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 맞닿는다.

한 전직 통일부 장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통일부 조직은 현재 업무뿐 아니라 달라지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남북 관계가 교착 국면일수록 대화를 더욱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 관계가 잘 안 풀린다고 대화·교류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일부 내부 역량을 결집해 막힌 길을 뚫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조직개편은 남북 관계에 부정적 신호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북한은 대북 압박을 앞세우면서 대화를 제안하는 남한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 대화·교류·협력 조직 축소는 남북 관계를 더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북 강경론자인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이날 취임하며 남북 ‘강 대 강’ 기조는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관 정치’ 현실화


이번 조직개편은 지난 3일 취임한 외교부 출신의 문승현 통일부 차관이 주도했다. 권영세 전 장관에서 김 장관으로 교체가 추진되던 시기에 부처 위상을 뒤흔드는 조직개편 밑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다. 김 장관은 지난달 29일 지명되고 이날 취임했다.

윤 대통령이 차관을 대거 바꿔 집권 2년 차 국정 장악력을 키우려는 ‘차관 정치’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직개편은 대통령실과 교감 아래 이뤄졌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당연히 이런 업무를 할 때 관계부처와 의견 교환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용산(대통령실)도 당연히 그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논란을 짊어지지 않도록 문 차관이 책임을 떠안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차관은 “장·차관 교체를 계기로 조직을 유연하고 경쟁력 있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문제의식을 갖고 조직개편 작업을 검토해왔다”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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