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아동학대 피해와 대책

무력한 교보위·신고남발 아동학대법…벼랑끝 몰리는 교사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교보위 개최 드물고 조치해도 봉사활동
의심만으로 신고 가능한 아동학대법
"악성민원 책임물어야…교육청 지원 중요"


더팩트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초등교사 2390명 중 2370명(99.2%)이 교권침해를 당했다. 사진은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추도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 /장윤석 인턴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제 편이 돼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고 저를 보호해 줄 장치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학교에는 우리를 위한 제도가 없어요."

서울 지역 초등교사 고모 씨는 학부모의 악성민원에 속수무책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교사들은 학부모 악성민원에 시달려도 혼자 감내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교사를 보호할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제2의 서이초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초등교사 교권침해 1위는 '학부모 악성민원'

지난 18일 서울 서이초에서 20대 교사가 극단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교권침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초교조)은 지난 21일부터 전국 초등교사 2390명을 대상으로 교권침해 실태를 조사했다. 교사들이 당한 교권침해 유형으로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49%)이 1위를 차지했다. 서이초 교사도 학부모의 악성민원 때문에 극단선택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교사들은 수많은 악성민원을 홀로 견딘다. 초등 교사 임모 씨는 "교내 시스템상 교사를 보호해 주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하나도 없다"며 "(악성민원을 받았을 경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관리자(교장·교감)에게 말해도 해주는 게 없다"고 했다.

학교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도 한계가 있다. 교보위는 교권을 침해한 학생을 심의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구다.

하지만 현장에서 교보위가 열리는 일은 드물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심각한 교권침해가 아닌 이상 교보위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선생님들은 '내 제자니까 내 선에서 해결하자' 생각한다. 교보위가 열리기까지는 과정이 복잡한데 그에 비해 실효성은 없다. 처분이 교내 봉사 정도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보위가 악성민원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잦다. 그는 "자녀가 교보위에 가면 학부모가 보복성 악성민원을 넣기도 한다"며 "관리자들도 교보위 개최를 꺼린다. 교사에게 '안에서 해결해 보자'고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더팩트

지난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설치된 분향소에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예원 인턴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동학대법도 교사가 악성민원을 인내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3년 차 초등교사 A씨는 "학생 말만 듣고 아동학대로 고소하는 학부모들을 많이 봤다"며 "4년 전, 7년 전 일로 신고당한다. 몇 년 뒤 갑자기 신고당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가장 스트레스"라고 토로했다.

아동학대법 10조는 '누구든지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심만으로 신고가 가능해 교사들은 일방적으로 범죄자로 몰리기에 십상이다.

교사노조연맹 자문변호사인 이나연 변호사(법무법인 공간)는 "선생님들이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일이 굉장히 많다'며 "교육 차원에서 훈육하는데, 신고당하니 '범죄를 저질렀나' 하는 심정에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지만, (처분이 내려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부담스러우실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교육청, 학부모민원 만큼 교권침해 민감해야"

전문가들은 학부모 악성민원과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 응당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대변인은 "현재는 학부모가 교권을 침해해 교보위가 열리더라도 학부모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악성민원을 제재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에 '학부모 악성민원'을 포함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 대변인은 "제도를 실효성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악성민원을 넣으면 나도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아동학대 면책 조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변호사는 "교사는 직무 자체가 훈육"이라며 "아동이 피해를 주장한다고 무조건 수사할 게 아니라 종합적인 상황을 살펴야 한다. 교사의 책임 여부를 물을 수 있는 부분을 세분화하거나 면책화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청은 교사가 악성민원으로 고통받거나 아동학대로 고소당했을 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교육청이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제반 절차에 필요한 과정을 지원한다면 교사 입장에서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육청은 학부모 민원만큼 교권침해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불합리한 민원을 받았을 때 교육청이 교사 편에 서야 관리자들도 교사 편에 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sohyun@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