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70주년
정전협정 [헤럴드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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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해,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정전 조건과 규정을 접수하며 제약과 통제를 받는 데 동의한다”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으로 이날 밤 10시를 기해 휴전선 일대에서 포성이 멈췄다. 현재까지 한반도는 ‘무기한 휴전 상태’다. 정전협정에 따라 284㎞의 군사분계선(MDL)과 동서 800m, 남북 400m의 장방형 공동경비구역(JSA)이 설치됐다. 정전협정을 관리하고 감시하기 위한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와 중립국감독위원회(중감위)가 설치됐다.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2022.11.29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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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70주년을 일주일 앞두고 발생한 미군 무단월북 사건으로 유엔사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지난 19일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23)은 판문점을 견학하던 도중 유엔사 군정위 회의실인 T2 건물과 군정위 일직장교 회의실인 T3 건물 사이를 질주해 무단으로 월북했다. 주한미군이 월북한 초유의 사태다.
전문가들은 자칫하면 우발적 충돌이 벌어질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2017년 11월 북한군 병사 오청성 씨의 탈북 당시 북한군의 대응과 피격 상황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긴박했던 총격의 자국은 현재도 남측 건물에 생생히 남아있다.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판문점 비무장지대화가 이뤄지면서 JSA 내 권총 등 일체의 총기류를 소지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로 병력을 철수시킨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도 있다.
수교국이 아니기 때문에 외교 채널이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 킹 병사와 관련한 대화 창구는 유엔사가 맡고 있다. 앤드루 해리슨 유엔사 부사령관은 지난 24일 “정전협정하에 수립된 장치를 통해 북한군과 대화가 개시됐다”고 밝혔다. 비록 실질적인 소통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북한군과 연락이 닿고 있는 것이다.
JSA에서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이 소통하는 직통 전화기, 일명 '핑크폰'.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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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 부사령관이 언급한 ‘정전협정하에 수립된 장치’는 유엔사와 북한군이 소통하는 직통 전화기, 일명 ‘핑크폰’을 지칭한다. 판문점 남쪽 유엔사 일직장교 사무실과 북쪽 판문각에 각각 놓여있는 ‘핑크폰’으로 양측은 하루에 두 차례씩 통신점검을 하고 있다. 이 ‘핑크폰’ 역시 북한이 2013년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하면서 일방적으로 끊어버렸으나 2018년 7월 남북미 대화 국면에서 복원됐다. 양쪽은 지난해 기준 총 130건의 통지문을 서로 주고받았다.
미국 측은 평양에서 미국의 영사업무를 하던 스웨덴 대사관과도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은 1975년 서방 국가로는 처음으로 북한에 대사관을 열었다. 정전협정 당시 중립국감독위원회에 유엔군 측에서는 스웨덴과 스위스를, 북한군 측은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를 선임했고, 이에 따라 스웨덴 군과 스위스 군은 판문점 남측 지역에 기지를 설치했다. 이 중 체코는 1994년 중감위에서 탈퇴했다. 스웨덴과 스위스 대사관은 코로나19 여파로 북한에서 철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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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에 서명한 당사자는 한국군이나 미군이 아닌 ‘유엔군 총사령관’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1950년 창설된 유엔사는 22개국으로 다국적군으로 구성돼 정전협정 당시 93만명의 병력을 기록하고 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했다.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인 유엔사는 이후 지난 70년 동안 한반도의 ‘안전핀’ 역할을 해왔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의 내용을 충실하게 집행하고, 유사시 국제사회의 교량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판문점은 정전협정의 산실이다. 실제 정전협정이 체결된 판문점은 현재 판문점으로 불리는 군사정전위원회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개성 쪽으로 약 1㎞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정전협정 후 회의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1953년 10월 JSA를 설정하면서 현재의 판문점이 탄생했다.
초기에는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말 그대로 ‘공동경비’했으나, 18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MDL을 경계로 이남은 유엔군 측이, 이북은 공산군 측이 분리 경비한다.
남북 왕래가 가능한 유일한 통로였던 판문점은 전쟁 직후 포로 교환이 이뤄졌고 1985년 이산가족 방문 등 처음으로 민간 차원의 왕래가 이뤄졌다. 1998년 6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500마리의 소를 싣고 넘어간 ‘소 떼 방북’도 이곳이다. 1970년대 남북대화가 이곳에서 시작되면서 대화의 장으로 기능했다.
지난 2019년 6월 30일 남북미 정상 판문점회동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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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걸음. 남북미 대화가 이뤄지던 2018년 4월27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서로 한 발짝을 내디뎌 MDL을 넘었다. 남북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만난 최초의 기록이다.
김 위원장은 당시 “(판문각에서) 불과 200m를 오면서 왜 이리 멀어 보였을까, 또 왜 이리 어려웠을까 생각했다”며 “분단선이 높지도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 보면 없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19년 6월에는 북미 정상의 첫 판문점 만남이 이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MDL을 넘어 북한 땅을 최초로 밟았다. 남측 자유의 집에서는 최초의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이 성사됐다.
유엔사와 판문점의 존재는 거꾸로 여전히 한반도가 정전 상태라는 것을 증명한다. 유엔사에 이양됐던 전시작전지휘권이 1978년 창설된 한미 연합군사령부에 넘어갔고,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게 환수됐다. 유엔사의 역할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미국은 유엔사의 기능을 꾸준히 확대하면서 향후 전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될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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