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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국민 목숨 못 지킨 국가’에 세월호 때 이어 또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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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주최자 없는 축제, 책임 없다” 이 장관 주장 되풀이

전문가들 “모든 재난에서 책임 회피할 구멍 만들어준 셈”

탄핵심판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나아가 윤석열 정부에 이태원 참사 책임을 물을 마지막 기회였다. 헌법 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도심 한복판을 걷거나 축제에 나온 시민이 위험을 인식하지 않고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 역할이다.

헌법재판소는 25일 이 장관 탄핵심판 선고에서 이는 “국가기관의 당연한 의무”라면서도 “헌법상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장관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태원 참사 유족과 시민사회는 참사 이후 269일간 수없이 되물었던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의 답을 헌재로부터도 듣지 못했다.

헌재는 이태원 참사를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하고 확대된 것이 아니다”라고 정의했다. 재난안전법상 주최자 없는 축제에 대해선 안전관리 및 매뉴얼의 명확한 근거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점, 정부 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대응 역량을 기르지 못한 점, 재난 상황에서 행동요령 등에 관한 홍보·교육·안내가 부족했던 점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참사 책임을 이 장관 개인에게 돌리기 어렵다는 게 헌재의 논리다.

이는 이 장관 측 주장과 판박이다. 이 장관 측은 ‘주최자가 없는 축제’는 행안부가 사고 예방책을 마련 할 주체가 아니며, 이 장관은 참사 대응 과정에서 경찰과 소방 등을 구체적으로 지휘·감독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태원 참사는 “예측할 수도, 대응책도 없는 특별한 재난”이라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선 헌재가 법을 협소하게 해석해 이 장관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참사 초기부터 전문가들은 매뉴얼과 주최자 유무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용산경찰서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다중 인파 안전사고 대책을 포함한 ‘핼러윈 치안대책’을 세웠고, 특히 2020년 대책에선 ‘압사’를 직접 언급하며 주요 골목 10곳에 경찰기동대 60명을 배치하고 현장 질서를 유지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헌재는 그런데도 “이 사건 참사와 같이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서 발생한 다중밀집 사고는 재난안전법이나 그에 근거한 매뉴얼이 명시한 적용대상은 아니다” “사건 참사 발생 전 핼러윈 기간 이태원 인파 밀집을 예상한 언론 보도가 있었으나 다중밀집 사고를 예상하거나 우려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재난은 계속 새로운 얼굴로 등장하는 추세인데 구조적 원인을 이유로 ‘예측이 어렵다’ ‘대응할 여력이 없었다’는 이유를 인정해주면 모든 재난에서 책임 문제는 회피될 수밖에 없다”며 “재난안전법은 행안부가 재난 상황에서 ‘총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라는 차원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생겼는데도 계속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태원참사 태스크포스 천윤석 변호사는 “헌재가 재난안전법 등에 명확히 규정된 부분의 법 위반 여부를 다루지 않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 장관이 법에서 정한 의무를 위반했는지를 따져야 하는데, 이 장관의 당시 판단이 옳았는지에 대한 관점으로 따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선고를 앞두고 ‘기각’ 결정을 점치는 의견이 다수였다. 탄핵심판이 맥이 빠진 채 진행됐기 때문이다.

헌재는 세 번의 준비기일과 네 번의 변론기일 만에 심리를 마쳤다. 이 장관의 위법 여부를 따지기 위한 구체적 사실관계들은 청구인 측 주장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다퉈졌다. 진행 중인 형사재판 기록을 재판관들이 넘겨받는 것으로 갈음했다.

증인으로 나온 행안부 안전관리 책임자 2명과 경찰·소방의 안전관리 담당자를 상대로도 대부분 피상적인 질의만 오갔다.

국회 측 소추위원인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은 첫 변론기일에만 출석해 “행안부 장관의 공백이 우려되니 신속한 결정이 이뤄지길 바란다”고만 했다. 이 장관은 변론기일을 제외하고는 이날까지 재판정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헌재가 이날 이 장관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 사회적 참사에 대해 공무원의 헌법적 책임을 묻지 못한 사례가 또다시 추가됐다. 헌재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탄핵심판 때도 세월호 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의무 위반은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헌재는 “헌법상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면서도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다.

다만 헌재는 어떤 경우라야 사회적 참사에 대한 장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기준을 제시했다. ‘법 위반 행위의 중대성’과 ‘파면 결정으로 인한 효과’ 사이 법익을 비교해야 하는데, 이 가운데 ‘파면 결정으로 인한 효과’의 경우 비선출직인 장관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에 비해 파면에 따른 사회적·정치적 부담이 한결 덜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선거에 의해 선출돼 직접적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통령과 비교할 때 행정 각 부의 장은 정치적 기능이나 비중, 직무 계속성의 공익이 달라 파면 효과 역시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김희진·이혜리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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