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 국악재즈밴드 ‘덩기두밥 프로젝트’
7인조 크로스오버 국악재즈밴드 ‘덩기두밥 프로젝트’의 보컬 김보라 씨(38)의 말이다. 경기민요와 정가(正歌)를 넘나드는 보컬답게 밴드 역시 재즈와 민요의 경계를 허문다. 국악 장단인 ‘덩기덕’과 재즈 장단 ‘두비두밥’을 합친 밴드의 이름은 베이시스트 이원술 씨(51)가 직접 지었다. 2021년 이 밴드를 기획한 계명국 음악감독(48)은 “요즘 크로스오버 국악밴드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우리만 할 수 있는 역할과 의미를 찾다가 전국팔도 지역민을 통해 전해지는 토속민요(通俗民謠)를 조명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 씨와 이 씨, 계 감독은 “지난해부터 전국팔도를 유랑하며 요즘은 잊힌 지역 민요를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재즈 선율로 되살려낸 토속민요는 전문 소리꾼들이 불러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통속민요(通俗民謠)와 달리 지역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대대로 전승되거나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소리가 아니다 보니 오늘날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아랫줄 왼쪽부터 보컬 김보라, 트럼페터 배선용, 베이시스트 이원술, 윗줄 왼쪽부터 기타리스트 김동환, 드러머 이도헌, 거문고 연주자 황진아 씨. 크로스오버 국악재즈밴드 ‘덩기두밥 프로젝트’는 연주자 6인에 설치작가 최종운 씨가 더해진 7인조 밴드다. 덩기두밥 프로젝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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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덩기두밥 프로젝트를 기획한 계명국 음악감독. 덩기두밥 프로젝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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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노래’가 대표적이다. 이 노래는 강원 정선군에서 베를 짜는 아낙네들 사이에서 불리던 ‘부모 부음 민요’를 재즈로 재해석한 것이다. ‘시금시금 시어머니/ 부모 죽은 부고 왔소/ 예라 요년 방자할 년/ 짜던 베나 마주 짜구 가레미나’라는 노랫말에는 친정 부모의 부고가 왔는데도 시댁 식구들의 눈치를 보느라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며느리의 설움이 담겼다. 이 노래를 발굴해 재즈로 재해석한 보컬 김 씨는 “10여 년 전 이 노래를 부른 90대 할머니의 녹취 음성을 듣고 언젠가 이 소리를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무런 반주 없이 담담하게 읊조리는 목소리에는 그 시절 시집살이를 겪은 며느리의 한이 녹아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이 노래(베틀노래)의 고장인 강원도에서 공연할 때 객석에 앉아 계신 중년 여성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셨어요. 어릴 적 그분들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불렀던 소리가 여전히 그들 마음속에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보컬 김 씨)
지난해 8월 강원 춘천시의 KT&G 상상마당 야외 무대에 오른 덩기두밥 프로젝트의 모습. 이들은 이 무대에서 첫곡으로 강원도 토속민요를 재즈로 재해석한 ‘베틀노래’를 선보였다. 덩기두밥 프로젝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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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에 대해 묻자 김 씨는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마소 모는 소리’를 재즈로 재해석해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말과 소를 몰며 농사를 짓던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이 소리에는 뚜렷한 노랫말이 없다. ‘으허어허 어허어 어허어 어러렷’ 하는 추임새가 노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김 씨는 “가사 없이 울부짖는 추임새만으로 농민들의 고된 몸짓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며 “이 소리를 어떻게 재즈로 풀어나갈지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뱉었던 옛 노래들도 언젠가 조명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팀명에 ‘프로젝트’가 붙었듯 이들은 “공연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더 많다”고도 했다. 이 씨는 “지역 공연 때 현지 아티스트와 아이들과 만나 재즈와 민요를 함께 부르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 민요를 기억하는 일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계 감독은 “민요의 참뜻은 ‘평범한 이들의 노래’”라며 “언젠가 국경을 초월해 세계 각국 민요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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