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폐기비용 줄이며 소득 얻고 소비자는 합리적 구매에 인기몰이
김치·떡·주스·디저트로 다양한 변신…대형매장 진출에 수출까지
지자체들 판로개척 앞장…기업도 농가·소비자 상생 ESG 생태계 조성
고물가에 못난이 농산물·저가 상품 인기 |
(전국종합=연합뉴스) 표면에 상처가 있거나 모양이 조금 찌그러진 것처럼 상품성은 다소 떨어져도 맛과 영양, 신선도는 그대로인 채소와 과일 등 '못난이 농산물'이 주목받고 있다.
예전 같으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기 쉬웠겠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속에서는 이들의 못난 외모보단 저렴한 가격표가 더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농가는 흠이 있어 상품성이 떨어진 농산물의 폐기비용을 줄이며 소득을 얻고, 소비자는 합리적 구매로 못난이 농산물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높은 가성비가 미덕이 된 고물가 시대에 농가는 물론 지자체도 새로운 소득원으로 떠오른 못난이 농산물 판로 개척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제 못난이들은 대형마트 매대에 진열돼 소비자 장바구니에 담기는 동시에 수출길에도 올라 농가 소득 증대에 톡톡히 이바지하고 있다.
고물가에 못난이 농산물·저가 상품 인기 |
◇ 길거리 싸구려 과일은 옛말…지자체가 판촉 앞장
"과수원에 찾아와 직접 맛보고 등외품을 사가는 소비자가 적지 않아요. 못난이 복숭아는 정상가보다 20% 정도 저렴해 많이들 사갑니다."
경기지역 최대 복숭아 주산지인 이천시 장호원읍에서 1만1천500여㎡(3천500평) 규모로 복숭아 농사를 짓는 백광현 씨는 길거리 판매점을 통해 거래를 튼 단골 300여명과 연락을 지속하며 직거래한다.
출하한 작물은 주로 지역 농협에 납품하는데 표면에 경미한 멍이 들어 상처가 있거나 검은 점이 있어 상품성이 떨어진 등외품은 이런 식으로 판다.
못난이 농산물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처럼 길거리에서 저렴하게 파는 과일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제는 농가뿐 아니라 지자체까지 앞장서 판매 촉진에 나서고 있다.
충북도는 올해 초 못난이 농산물 판로 확대를 책임질 조직인 기업사랑농촌사랑 운동본부를 가동해 껍질에 흠이 있거나 가격 폭락 등으로 팔지 못하는 못난이 농산물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못난이 농산물 할인 행사 |
경남 밀양시와 얼음골 사과 재배 농민들은 못난이 사과를 가공하는 방법으로 부가가치를 키워 소득을 올리고 있다.
밀양 농민들은 2∼3년 전부터 못난이 과일, 제철이 지난 사과를 사과즙이나 주스·아이스크림·과자·맥주 등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밀양시는 또 무르고 단맛이 적다는 평가를 받아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끝물 딸기'(4∼6월 수확 딸기)를 잼을 포함한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고자 애쓰고 있다.
강원 강릉시는 수확·유통 과정에서 버려지는 지역산 못난이 감자를 적극 활용해 만든 과자를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선정해 활용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은 최근 도내 생활개선회원을 대상으로 못생긴 과일이나 깨진 쌀 등 상품 가치가 없어 폐기될 농산물로 과일찹살떡, 포도주스, 인삼코디얼 등 디저트를 만드는 교육을 진행하는 등 활용법을 전파하고 있다.
경북 의성군 비안면의 마을기업 농뜨락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B급 농산물을 농협 수매가보다 20% 높은 가격에 사들여 가공·포장 상품화해 팔고 있다.
매출액은 2018년 5억3천여만원에서 지난해 13억원(추정) 이상으로 늘었고 직원 수도 초기 6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35명이 근무해 일자리 창출에도 이바지했다.
허환 경기 동부 원예농협 상무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흠 없는 농산물 재배에는 농약이나 비료 사용 증대가 뒤따른다"며 "먹는 데 전혀 문제없는 못난이 농산물이 제 값어치를 받는 유통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북 '못난이 김치' 제조 |
◇ 못나도 귀한 몸…대형마트 진출에 수출까지 판로 활짝
충북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못난이 김치'를 생산하고 있다.
못난이 김치는 속이 덜 차거나 포기가 작은 배추로 담근 김치다.
가격 폭락으로 출하를 포기한 배추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김영환 충북지사가 제안해 만들었다.
농민들은 배추 손실을 줄일 수 있어 좋고, 소비자는 국산 김치를 저렴하게 구매하는 장점이 있다. 김치제조업체도 일감이 늘어 반색한다.
도는 여기에 김치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중국산 김치를 몰아낸다는 의미에서 '김치 의병운동'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였다.
못난이 김치 가격은 10㎏ 한 상자당 2만9천원으로 1만5천∼2만원 선인 중국산 김치보단 다소 비싸지만, 5만원대를 웃도는 국산 김치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저렴하다.
도는 못난이 김치를 구매하는 음식점에 '인증마크'도 붙여줄 계획이다.
못난이 김치를 맛볼 수 있는 곳이자 우리 농산물을 활용하는 데 앞장서고 있음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차원에서다.
못난이 김치는 지난해 12월 1일 첫 생산을 시작해, 현재까지 도내 5개 업체에서 172t을 생산했다.
이 김치는 대부분 외식업체 또는 단체급식용으로 납품되고 있다.
호주, 베트남, 홍콩 등 7개국에 6t가량을 수출하며 해외시장 개척에도 나서고 있다.
충북 못난이 김치 첫 출하 |
대기업과 대형마트도 못난이 농산물 모시기에 나섰다.
삼성웰스토리는 농산물 유통 플랫폼 예스어스와 함께 일반 상품보다 5∼10% 저렴한 실속형 엽채류 상품을 각 업체에 공급하는 등 농가와 소비자, 기업이 상생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
공급 엽채류는 시금치, 적상추, 부추 등 12종으로, 잎 크기가 균일하지 않거나 작은 상처가 있는 속칭 '못난이 농산물'이다.
삼성웰스토리는 재료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급식 업체와 외식 업체에 실속형 상품 공급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홈플러스는 못난이 농산물을 평균 3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고 롯데마트는 물가안정 기획 상품으로 상생 과일·채소를 소비자에게 선보였다.
컬리는 애호박, 당근, 오이 등 못난이 채소 12종을 담은 '제각각'을 출시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못난이 농산물의 인기는 고물가 시대에 실질 소득이 줄면서 '최대한 실효성 있는 구매를 하겠다'는 소비자들의 의지가 반영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겉모습에 흠이 있더라도 제품 신선도 등 본질적인 측면에 문제가 없다면 신경 쓰지 않는 소비자가 계속 늘고 있다"며 "앞으로도 합리적인 구매를 선호하는 경향이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소연 김상연 김도윤 김선경 이강일 장지현 이우성 전창해 양지웅 기자)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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