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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이태원 참사

재판관 한명씩 부르며 호소한 이태원 참사 유족···“파면, 최소한의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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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주영의 아버지’로 자신을 소개한 이정민씨가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섰다.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딸을 잃은 지 240일 만이다. 그동안 국회와 방송사, 길거리 곳곳에서 숱하게 농성과 인터뷰, 기자회견을 한 그에겐 ‘이태원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이란 낯선 명칭이 붙었다.

이씨가 헌재를 찾은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의 책임을 묻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묵묵히 방청석을 지켰다. 그는 두 번의 준비기일, 세 번의 변론기일을 거쳐 변론이 마무리되는 이날에서야 발언 기회를 얻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유족이 공식적으로 법정에서 피해에 대해 진술한 것은 240일여 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헌재는 그를 증인으로는 채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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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의 대표 직무대행과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참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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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부터 다소 지쳐 보이는 그는 종이 한 장을 들고 터덜터덜 걸어가 9명의 재판관을 마주 보고 앉았다. “저는 오늘 작년 10월29일 밤 참담했던 심정을 담아 재판관님들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며 담담하게 발언을 시작했다. 이내 이씨의 목소리는 중간중간 울먹임에 뭉개졌다.

2022년 10월29일. 이씨가 기억하는 참사 당일은 결혼 준비 중이던 딸 이주영씨가 웨딩플래너를 만나는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던 이씨는 울며 “이태원역으로 와달라”는 딸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12시30분 이태원역에 도착했다. 그는 경찰이 통제선을 치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심하게 밀집돼 있었고 경찰과 시민이 다투는 소리, 음악 소리로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사 발생 2시간이 지나도록 그런 아수라장이 돼 있었는지 납득이 안됩니다.”

이씨는 당시 남자친구로부터 CPR을 받고 있던 딸을 발견한 상황에 대해 말하다 목이 메었다. 딸이 다목적 체육관에 이송됐을 때도, 아무런 연고 없는 의정부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병원에 도착했을 때도 경찰이나 소방으로부터 아무런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참사 이후 유족들이 숱하게 답을 구했던 질문을 재판관들 앞에서 다시 물었다.

“참사 책임을 희생자에게 돌리고, 죄책감은 생존자들에게 돌리는 정부가 도저히 납득이 안 됩니다. 책임자인 이상민 장관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살리려고 온 힘을 다하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국회 측은 이 장관이 참사를 인지하고도 운전기사를 기다리다 1시간40분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고, 그 사이 참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고 본다.

이씨는 “이 장관이 그 시간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경찰과 소방 인력을 보내줄 순 없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이어 “이 장관은 (당시) 집회와 대통령 경호에만 온통 관심이 집중돼 있었으며 이는 이태원 참사란 결과를 일으켰다”며 “참사 당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행안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을 지키고 수호하는 대통령을 위한 행안부 장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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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논란으로 탄핵 소추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네번째 변론기일인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유남석 헌재소장이 입장해 착석해 있다. 2023.6.27 .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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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받치는 감정을 삼키며 말을 이은 그는 9명의 재판관 이름을 하나씩, 또박또박 호명하며 말했다. “존경하는 유남석 헌재소장님, 주심을 맡은 이종석 재판관님, 그리고 김기영, 김형두, 문형배, 이미선, 이영진, 이은애, 정정미 재판관님. 이상민 장관의 파면은 국민의 생명권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의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어 말했다. “우리가 마지막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저희 유가족들은 간곡히,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참사 책임자인 이상민 장관에게 직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참사에서 교훈을 얻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이씨가 마지막으로 말한 문장은 울음에 삼켜져 잘 들리지 않았다. 그가 발언을 마치자 대심판정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씨가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이 장관은 첫 번째 변론기일 이후로는 이날까지 쭉 출석하지 않았다. 국회 측에 따르면 이날 대심판정에는 행안부 공무원 16명이 나왔다.

재판부는 양측의 최종진술을 들은 후 국무위원으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심판을 받는 이 장관의 마지막 변론기일을 이날로 마무리했다. 재판부는 “양측에서 변론으로 주장한 내용과 제출된 증거를 기초로 사실과 법리에 바탕해서 신중하게 검토한 후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선고기일은 따로 밝히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7월 말이나 8월 초쯤 헌재가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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