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온라인 카페, 이순신 장도 모조품 주장…국보 지정 시 소송 예고
문화재청 "구국의 영웅 행적 서려 있는 도검…역사·학술적 가치 높아"
국보로 지정 예고된 이순신 장도.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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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문화재청은 국보로 지정 예고된 '이순신 장도'(李舜臣 長刀)의 진위 논란에 "1594년 제작된 종가 유물"이라며 진품이라고 27일 밝혔다.
온라인 카페 '칸코리아'(khankorea)는 이날 이순신 장도에 대해 진검이 아니라 후대에 만들어진 모조품으로 이는 가품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순신 장도가 왕검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허리에 두르는 가죽벨트인 총혁도 일반적인 도장검 형태인 점, 칼의 디자인이 본래의 고려도검 형태가 아닌 일본풍 도검 형태라는 이유를 들어 '가품'이라고 결론냈다.
이들은 "학술적으로 이순신 검은 가작된 것으로 충분하기에 국보로 지정될 이순신 검은 진품이 아니다"라며 "우리의 조사 결과가 무시되고 국보 지정이 강행되면 국보지정 취소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은 설명자료를 내고 이순신 장도가 국왕 하사 검이 아니며 1594년 제작된 후 종가에서 보관되어 내려온 도검이라고 반박했다.
국보 지정 예고 때 이미 이런 사실을 밝힌 문화재청은 칼자루 속에 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인 슴베에 새겨진 글귀로 갑오년(1594년)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든 도검임을 알 수 있고, '이충무공전서'(1795년)의 기록을 통해서는 이순신 종가에서 오랜 기간 보관해온 내역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순신 장도는 그 이후 종가에 계속 전해오다가, 현재 현충사관리소에서 보관돼 있다.
일본풍 도검 형태란 주장에 대해서는 조선 도검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양식과 함께 당시 도검 제조기술이 발달한 일본 도검의 요소가 일부 발견된다며 이 역시 국보 지정 예고 때 이미 밝혔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조선 도검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살펴 보면, 임진왜란 이후 당대 도검 제작기술이 가장 발달했던 일본 도검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순신 장도는 조선 전기와 후기 제작 도검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살필 수 있는 유물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순신 장도는 조선시대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의 숭고한 행적이 서려 있는 도검으로,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명확하고 내력이 분명하며 조선 도검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추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며 "우수한 제작 기술, 가죽·금속·칠 등 다양한 전통공예의 조화로운 활용, 세련된 균형미와 조형감각 등 기술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국보로 지정 예고된 '이순신 장도'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되었던 칼로, 길이가 약 2m에 달하며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한 쌍(두 자루, 2병)이 각각 칼집을 갖추고 있다.
장도 1의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구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이, 장도 2의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충무공전서'(1795)의 기록과 일치한다.
칼자루 속 슴베에 새겨진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이라는 글귀를 통해서는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다.
국보로 지정 예고된 이순신 장도.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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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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