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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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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감각의 오페라…젊은 관객 열광하게 한 '일 트로바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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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폐막작…미국 도시의 두 갱단 대결 구도

연합뉴스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는 관객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오페라다. 차별에 분노하고 격정적 이야기에 공감하고, 질주하는 음악에 압도당해서다.

지난 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국립오페라단의 '일 트로바토레'는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폐막작이다.

지난해 선보인 오페라 '아틸라'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오페라단 작품의 연출을 맡은 이탈리아의 거장 잔카를로 델 모나코는 현대적 연출로 관객들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덕분에 객석의 열기는 최대치로 끓어올랐다.

원작의 배경은 15세기 스페인이지만 이번 무대는 현대 미국의 한 도시로 배경을 옮겨왔다. 원작에서 출생의 비밀을 품은 채 적이 돼 싸우는 형제 만리코와 루나 백작은 각각 다른 갱단을 이끄는 보스로 등장한다.

획일적인 가죽 코트 차림으로 등장하는 루나 백작의 갱단은 백인우월주의 조직, 블루진과 후드 티셔츠, 점퍼 등을 되는대로 걸친 만리코의 갱단은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로 구성된 조직으로, 얼핏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연상시키는 구도다.

연출가가 무대디자인과 의상디자인을 모두 담당해 전체적인 통일성을 높인 이번 프로덕션에서 무대 위 세 개의 타워와 집 한 채가 장면마다 위치를 옮기며 집시들의 거처, 벌집 형태의 감옥 등으로 변했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막을 내려 극이 자주 끊기는 느낌은 있었지만, 무대 사용은 상당히 효율적이었고 조명 역시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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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무엇보다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혼재 속에서 웹툰을 보는 듯한 속도감이 느껴진 이번 연출은 노장의 젊은 감각을 돋보이게 했다.

설득력 있는 레지테아터(연출가가 원작의 시대와 캐릭터 설정 등을 자유롭게 바꾸는 연출가 중심의 극)의 대표적인 장면은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2막 '대장간의 합창'이었다. 원래는 집시들이 모루를 두드리며 하루 일을 시작하는 장면이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만리코 측 조직원들이 싸움의 온갖 기술을 선보이는 두 젊은이의 대결에 돈을 걸고 응원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만리코 역의 테너 국윤종은 손에 감은 체인을 능숙하게 무기로 사용하며 반항아 변신에 성공했다. 1막 루나 백작과의 대결 장면부터 그의 명징한 음색은 극장 안에 풍성한 울림을 만들어냈고, 3막 결혼식의 카바티나(아리아의 느리고 서정적인 전반부)에서는 고요한 간절함이, '저 타오르는 불길을 보라'에서는 칼로 찌르는 듯한 강렬함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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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루나 백작이 아닌 만리코를 택해 비극을 감수하는 레오노라 역을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은 그 이상을 바랄 수 없을 만큼 배역을 소화했다. 1막의 첫 아리아 '고요에 잠긴 밤에'부터 3막 '사랑의 장밋빛 날개'에 이르기까지 리릭, 스핀토, 콜로라투라의 모든 테크닉을 동원해 사랑의 환희와 고통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객석에서도 열광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루나 백작 역의 바리톤 이동환은 악역임에도 당당한 기품을 살려 무대 위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리아 '그 미소의 찬란한 광채'에서 보여준 깊이 있는 감성의 표현은 만리코와 대결하는 장면의 냉혹함과 대비를 이루며 이동환의 탁월한 역량을 드러냈다.

메조소프라노 김지선은 억울하게 화형당한 어머니의 복수를 완성하는 집시 아주체나 역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았다.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음색, 트라우마로 인해 온전한 정신을 잃어버린 듯한 연기는 아리아 '불꽃은 타오르고'부터 '복수를 해냈다'라는 마지막 외침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관객을 설득했다.

페란도 역의 베이스 최웅조와 이네스 역의 소프라노 박누리 역시 뛰어난 가창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게오르그 솔티 국제지휘콩쿠르 우승자인 젊은 이탈리아 지휘자 레오나르도 시니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휘몰아치는 템포로 박진감 넘치는 베르디의 음악을 살려내면서도 정교함과 섬세함을 잃지 않고 시종 음악적 긴장을 유지했다.

국립합창단과 위너오페라합창단 그리고 코드공일아트랩의 배우들은 동선이 복잡하고 리얼한 연기가 요구되는 이번 프로덕션을 훌륭하게 소화해 관객의 집중도를 높였다. 조원정의 세심하고 치밀한 자막 번역, 알차게 구성된 프로그램 북도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을 줬다.

공연은 오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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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osi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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