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차정숙’ 김병철. 사진 ㅣ에일리언컴퍼니 |
전매특허 코믹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한 드라마였다.
지난 4일 종영한 JTBC 토일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배우 김병철(49)은 불륜에 혼외자까지 둔 천하의 나쁜 놈이었지만, ‘귀엽고 짠하다’는 웃픈 반응을 끌어내며 비난도 피해갔다.
아내와 첫사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해온 ‘서인호’를 ‘미워할 수 없는 악역’ ‘마성의 하(下)남자’(상남자의 반대말)로 바꿔놓은 것은 김병철의 ‘힘’이었다.
전 국민적 공분을 부르는 빌런을 ‘귀여운 쓰레기’로 승화시킨 얄미울 정도로 능청스러운 그의 연기에 엄정화는 “엉덩이를 확 차주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했단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병철은 “불쌍해 보이는 부분은 생각했지만, 귀여움은 생각하지 않고 연기했다”고 했다. 자신의 코믹 연기에 대해서도 “애드리브를 잘 하지 않는다”며 “나만의 경험으로 터득한 재미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찍으면서도 불륜을 순화하고 희석하는 모습이라서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어요. 세상에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아주 나쁜 사람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서인호를 연기하면서도 그걸 염두에 뒀어요. 나쁜 면 말고 다른 면도 생각하면서 살아있는 사람처럼 그리고 싶었죠. 그 중 허당 같은 모습이나 코믹한 장면이 잘 드러났던 것 같고요.”
김병철은 국민적 공분을 부르는 빌런을 ‘귀여운 쓰레기’라는 반응으로 바꿔놓았다. 사진 ㅣ에일리언컴퍼니 |
‘닥터 차정숙’은 불륜, 혼외자, 고부 갈등, 출생의 비밀 등 막장 요소를 두루 갖췄지만 불편한 소재들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방영 내내 시청자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던 차정숙(엄정화 분)은 최종회에서 서인호와 이혼 엔딩을 선보이며 새 삶을 시작했다. 최종회에서 18.5%를 기록, JTBC 역대 드라마 시청률 4위에 오르는 성과도 냈다.
당초 기대작이 아니었던 드라마, 편성이 밀렸던 드라마였지만 JTBC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김병철은 2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이 나온 것에 대해 “이 작품이 잘 된 건 이야기나 캐릭터 등이 전반적으로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자릿수만 되면 좋겠다 생각했지 예상하진 못했죠. 재미있게 보실 수 있겠다 싶긴 했지만 더 나와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성장만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감동만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코믹한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균형이 잘 맞춰져서 호응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의 높은 인기에 “이전 작품들은 악역을 해도 욕 먹을까봐 부담스러웠던 적이 없었다”는 그는 “한 번은 지하철을 탔는데 ‘누가 나를 알아보면 어떡하지?’ ‘욕 먹으면 어쩌지?’ 걱정했다”는 후일담도 들려줬다.
“만약 그랬다면? 당황했겠지만 조금 기쁜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악역을 했던 분들이 식당에서 등짝을 맞는 것은 얘기만 들었지, 실제 일어난 것은 처음이나 감사했을 것 같아요. 이야기로만 들었던 걸 경험하니까 ‘감사합니다 저한테 이런 경험을 줘서’라고 했을 수도 있겠죠.”
‘닥터 차정숙’ 김병철 취중연기 한 장면. 사진 ㅣJTBC |
차정숙과 최승희(명세빈 분). 두 여자의 사랑을 차지한 서인호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김병철은 이같은 질문에 “전부다 내게 당신을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는 눈빛으로 물어보더라”며 “저도 잘…모르겠다”며 웃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외도를 저지르고 거짓말을 하지만 정숙을 대할 때, 승희를 대할 때 진심으로 대했던 것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웃기지만 관계만 놓고 보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각자에게 어필했고 관계가 쭉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김병철이 생각하는 ‘나쁜 남자’ 서인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였을까. 그의 대답은 “우유부단함이 아닐까 싶다”였다.
“끝맺음을 잘해야 하는데, 상황에 좀 끌려간 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제가 생각해도 진짜 너무하다 싶은 신은 장애인 주차증을 신청하라고 하는 장면이나, 쓰러진 정숙이가 응급실에서 전화를 했을 때 ‘내가 꼭 가야 하는 것이냐’고 물어보는 장면이었죠. 연기하면서도 말이 잘 안 나오더라구요. 진짜 지질하다고 생각했죠.”
김병철은 ‘닥터 차정숙’을 통해 “김병철표 로코 수요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사진 ㅣ에일리언 컴퍼니 |
엄정화와는 첫 호흡이었지만 이질감이 없었다. 말수 없는 그였지만 촬영장에선 반말을 주고받으며 지냈고다고 한다. “20년 산 부부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정화 선배님이 먼저 ‘누나’라 부르고 반말로 하자고 했다. 그런 것들이 효과를 발휘했고 편하게 만들어줬다”고 했다.
“어떤 배우인지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덧붙이는 게 식상할 정도라 생각해요. 엄정화 씨의 장점은 캐릭터에 대한 공감력이라고 생각했죠. 매 작품마다 놀라운 공감 능력과 연기력을 보여주는, 어떤 경지에 오른 분 같습니다. 그렇게 공감지수가 높은 분과 연기를 하니 차정숙 그 자체를 보는 느낌이라 저도 연기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SKY캐슬’까지.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을 견인해온 그는 “계획을 길게 세우는 편은 아니고 그때그때 작업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했다.
‘닥터 차정숙’을 통해 흥행 배우로 또 한번 입지를 굳혔지만, “‘파국’이란 애칭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과연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무엇보다 ‘닥터 차정숙’을 통해 “김병철표 로코 수요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중년의 로맨틱 코미디를 제작할 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참여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중년의 모습을 밝게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을 거예요. 저 같은 연기자는 공감대를 그리기 좋아요. 평범한 느낌이잖아요.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하.”
[진향희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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