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아마존 기적의 생환, 13살 ‘영웅’ 첫째의 ‘정글 지식’이 살렸다

경향신문
원문보기

아마존 기적의 생환, 13살 ‘영웅’ 첫째의 ‘정글 지식’이 살렸다

서울맑음 / -3.9 °
9일(현지시간) 아마존 정글에서 무사히 발견된 아이들과 구조대원들.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아마존 정글에서 무사히 발견된 아이들과 구조대원들. AP연합뉴스


아마존 열대우림 한복판에서 경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한 콜롬비아 어린이 4명이 보호자도 없이 행방불명된 지 40일 만에 무사히 발견됐다.

스페인어권 매체 EFE통신과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아마존 정글에서 지난 5월1일 실종됐던 콜롬비아 어린이 4명이 추락사고가 발생한 지 40일 만인 9일(현지시간) 발견됐다. 이들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엔진 고장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의 신원은 레슬리 무쿠투이(13), 솔레이니 무쿠투이(9), 티엔 노리엘 로노케 무쿠투이(4), 크리스틴 네리만 라노케 무쿠투이(1)로, 이들과 함께 비행기에 타고 있던 어머니와 조종사 등 성인 3명은 모두 사망했다. 실종 당시 만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막내는 정글에서 첫돌을 맞았다.

비행기 추락 현장에서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자 콜롬비아 당국은 실종된 이들을 찾기 위해 헬리콥터 5대, 탐지견, 수백 명의 군인과 지역 주민들 2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구조 작업을 진행했다. 수색대가 추락지점 인근 숲속을 샅샅이 뒤져 유아용 젖병, 머리끈, 기저귀, 먹다 남은 과일 조각 등을 찾아내면서 아이들이 살아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커졌다.

실종된 아이들이 무사히 발견되자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온 나라의 기쁨’이라며 “그들은 정글의 아이들이고, 이제는 콜롬비아의 아이들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에 대해 “생존의 모범”이라며 “이들의 이야기가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제일 처음 발견한 것은 군 탐지견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은 개가 한마리 나타나 그 개와 한동안 시간을 보냈지만 그 다음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군은 이를 군탐지견인 ‘윌슨’이라는 벨기에 셰퍼드로 보고 이 개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윌슨은 5월1일부터 수색에 투입됐는데, 일주일 쯤 전부터 사라졌다.


군 대변인은 발견 당시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아이들이 매우 약해져 있었다”며 “며칠이 더 지났더라면, 그들을 살아있는 채로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은 “기적”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견됐던 아기 젖병. AFP연합뉴스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견됐던 아기 젖병. AFP연합뉴스


이들 남매가 먹을 것도 부족하고, 독사들이 우글대는 아마존에서 어른도 없이 어떻게 한 달 넘게 버틸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의 기적적 생환에는 4명의 아이 중 첫째인 레슬리가 동생들을 보살피며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남미 원주민 후이토토족 출신으로, 열대우림 지역인 아마조나스 지방의 아라라쿠아라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왔다. 아이들의 삼촌에 따르면, 레슬리는 어린 시절부터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보고 길을 찾았고, 식용버섯과 독버섯을 구별하는 등 ‘정글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이를 통해 레슬리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고, 동생들도 모두 안전하게 구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엘파이스는 분석했다.


아이들의 삼촌인 피덴시오 발렌시아는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그들은 (잔해에서) 파리냐를 꺼냈고, 그것으로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파리냐는 아마존 지역에서 먹는 카사바 가루로, 열대 지방에서 나는 길쭉한 고구마 모양의 작물이다. 발렌시아는 아이들이 이후에는 과일이나 씨앗을 먹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구조 당국이 수색 작업 중 공중에서 떨어뜨린 생존 키트들도 아이들이 버티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의 할머니 파티마 발렌시아도 레슬리에 대해 “평소에도 엄마가 일을 나갈 때면 어린 동생들을 돌봐왔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며 그가 맏이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강조했다.

콜롬비아의 아마존 원주민 단체는 트위터에서 “아이들이 생존했다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배우고 연습한 자연환경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했다.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의 열대림 생태학 교수인 카를로스 페레스도 “같은 나이대의 서양 어린이들이었다면 죽었을 것”이라며 “아이들이 가진 숲에 대한 지식이 생존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기적적으로 구조된 어린이들이 입원해있는 병원에 찾아 의료진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기적적으로 구조된 어린이들이 입원해있는 병원에 찾아 의료진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페트로 대통령과 이반 벨라스케스 고메스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10일 아이들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을 찾았다.

고메스 장관은 “우리는 레슬리의 용기뿐만 아니라 리더십도 인정해야 한다”면서 “레슬리와 세 동생이 살아남은 것은 레슬리의 보살핌과 정글에 대한 지식 덕분”이라고 밝혔다.

현재 어린이 4명의 건강 상태는 모두 양호한 편으로 알려졌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중앙군사병원 의사인 카를로스 린콘 아랑고 장군은 “종합 검사를 실시한 결과 아이들은 임상적으로 괜찮은 상태로 확인됐다”며 “영양·심리치료를 받으며 회복하기 위해 당분간 입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이 긁힌 상처 등 비교적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며 “2주~3주 안에 퇴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은 현재 수척한 모습이지만, 또래 아이들처럼 놀거나 책을 읽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국가 아동복지기관의 책임자 아스트리드 카세레스는 “레슬리는 우리에게 웃으며 포옹했다”라며 “그녀는 놀고 싶어하고, 침대에서 지루해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9살인 둘째 솔레이니는 말을 많이 하며, 셋째인 5살 티엔은 책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1살짜리 막내 크리스틴에 대해서도 역시 “간호사와 있을 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함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종된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희망 작전’이라고 불린 이번 공동 수색 작업에서 군인들과 원주민들은 약 1650마일을 수색했다. 병원을 방문한 뒤 페트로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군과 원주민 단체의 협력, 정글에 대한 존중을 칭찬했다. 그는 “여기 콜롬비아의 다른 길이 있다”라며 “나는 이것이 진정한 평화의 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실종됐다 발견된 콜롬비아 어린이가 구조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비행기 추락 사고로 실종됐다 발견된 콜롬비아 어린이가 구조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