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로맨스 이미지 벗고 '세련된 미친놈' 변신
'코피노' 소재로 푼 차별…블랙코미디 가미한 액션
선과 악 경계 넘는 캐릭터 열연…배우 앙상블 돋보여
후반부 대저택 액션이 백미…예상 가능 반전은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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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난 타겟을 단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어. 왜냐면 난 프로거든, 전.문.가.”
이 대사처럼, 김선호는 스크린 데뷔작인 ‘귀공자’(감독 박훈정)에서도 ‘프로’임을 입증했다. 해맑음과 엉뚱함, 무자비함과 잔혹함을 겸비한 세련된 미친놈. 김선호는 박훈정 감독의 손길로 탄생한 ‘귀공자’란 이 독특한 ‘안티히어로’적 캐릭터를 그만의 내공, 매력을 담아 멋지고 유쾌하게 표현했다. 아울러 선배들의 업력에 밀리지 않는 신예 강태주의 열연, 영화의 매력을 한층 높인 악역 김강우의 든든함, 고아라에게서 발견한 뜻밖의 액션 여전사 이미지까지. ‘신세계’와 ‘마녀’ 시리즈를 잇는 ‘미’(美)친 캐릭터 액션 무비가 탄생했다.
오는 21일 개봉을 앞둔 ‘귀공자’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분)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 분)를 비롯해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펼치는 논스톱 추격전을 담은 액션 영화다.
마르코는 필리핀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불법 복싱 경기장을 전전하고, 낡은 캐주얼 펍에서 축구 도박을 하며 한탕을 기대하고 실망을 반복하는 게 일상인 인물. 어머니의 약값은 밀리고 수술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던 마르코는 코피노 아동을 위한 센터를 운영하는 김선생(이기영 분)으로부터 한국인 아버지가 자신을 간곡히 찾고 있으며, 어머니의 수술비도 그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말을 듣는다. 아버지가 보냈다는 변호사 무리를 따라 황급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마르코는 비행기 안에서 의문의 남자 ‘귀공자’를 처음 만난다.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한 이 미스터리한 남자는 이후 마르코의 여정 내내 등장, 교통사고 및 총기를 활용해 그의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다. 자신을 쫓는 이유를 물어도 ‘그건 네가 죽기 전 알게 될 거야’란 수수께끼같은 말만 남긴 채 집요하게 추격한다.
마르코를 쫓는 이는 ‘귀공자’ 뿐만이 아니었다. 마르코를 한국에 불러들인 장본인인 재벌 2세 ‘한이사’(김강우 분)와 필리핀에서 교통사고를 계기로 만난 미스터리한 여자 ‘윤주’(고아라 분)까지. 세 주체가 각기 다른 이해관계로 마르코를 필요로 하며 그를 쫓으면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다. 마르코는 자신이 왜 한국에 와야 했던 건지, 세 주체 중 누가 진짜 자신의 ‘친구’이며 ‘적’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혼돈과 좌절을 느끼며 처절히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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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정 감독은 이 영화의 주인공 마르코를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내세워 부자와 빈자, 순혈과 혼혈 등 계급의 잣대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스토리 전개 내내 화두로 던진다. 필리핀에서 가난한 ‘잡종’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온갖 무시를 당하는 마르코는 한국 땅을 밟은 후에도 한이사 등 자신을 쫓는 무리에게 ‘잡종’ 소리를 듣는 수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행기 안에서 처음 만난 귀공자가 마르코에게 ‘한국인들은 미국 영어에 환장한다. 필리핀 억양은 절대 들키면 안 된다. 그걸 들키면 영어를 못하는 것만도 못하다’는 충고를 건네는 장면에선 풍자,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도 느껴진다.
다만 ‘귀공자’는 박훈정 감독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무거움을 내려놓고 액션 등 볼거리와 유머 요소를 가미해 보다 경쾌한 느낌을 준다. 다양한 총기들을 활용한 총격전, 삼나무가 빽빽한 숲지대와 좁은 골목길, 고속도로 등을 오가며 펼쳐지는 격렬한 카체이싱, 지붕 및 다리 위에서 몸을 내던지는 고공 와이어 신 등 다채로운 액션들이 118분간 쉴 틈 없이 극을 채워 눈을 즐겁게 한다. 특히 후반부 한이사의 대저택에서 1대 다로 펼쳐지는 김선호의 원맨쇼 전투 액션신은 이 영화에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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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다채롭게 ‘미쳐있는’ 캐릭터의 매력과 배우들의 열연이 ‘귀공자’의 가치를 높인다. 특히 타이틀롤 ‘귀공자’를 맡은 김선호는 그간의 로맨스 장르 이미지를 벗고 스크린 데뷔작인 이번 작품에서 ‘깔끔하게 미친 놈’으로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지난 사생활 논란에도 박훈정 감독이 끝까지 그를 믿으며 안고 갔던 이유가 납득이 가는 열연이다. 김선호가 연기한 ‘귀공자’는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조끼까지 갖춘 명품 클래식 수트에 이마를 드러낸 포마드 헤어, 늘 챙겨다니는 손수건과 윤이 나는 구두 등 결벽증에 가까운 깔끔한 성정과 술 대신 콜라를 즐기는 어린아이같은 면모 등 외적인 면부터 독특하다. 해맑은 미소로 무자비하게 타겟들을 살육하는 섬뜩함과 함께 어려운 상황에도 여유와 매너, 유머를 잃지 않는 인물이다. 반면 김강우가 연기한 ‘한이사’는 재력도 힘도, 악랄함도 막강한 빌런 그 자체다. 다소 평면적이고 뻔한 캐릭터가 될 수도 있지만, 김강우는 넓은 스펙트럼을 바탕으로 한이사를 시원시원하고 맛깔스러운 악당으로 그려냈다. 극 중 귀공자가 한이사 무리를 따돌리며 약올리고, 응징하는 과정에선 안티히어로물의 정체성도 엿보인다. ‘윤주’ 역을 연기한 고아라도 김선호, 김강우, 강태우 등 남자 배우들에 밀리지 않을 만큼 화려한 카체이싱, 총기 액션을 소화해 톡톡히 제 몫을 해낸다.
‘마르코’ 역의 강태주는 신예답지 않은 깊은 연기로 김선호와 김강우, 고아라 등 모든 캐릭터들과 매력적인 케미를 만들어낸다. 격한 액션, 체력 소비, 감정신 등 험난한 장면들을 매끄럽게 소화해 198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실력과 존재감을 증명했다.
다만 인물들의 모든 행동들을 설명시키는 동기와 그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엮는 스토리라인이 상대적으로 엉성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극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는 반전 요소가 다소 뻔하고 예상가능하다는 점도 약간 아쉽다.
그럼에도 김선호의 새로운 변신, 스트레스를 날릴 다양한 액션신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2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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