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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잘 빨아 썼습니다만?’ 콘돔 재사용, 자연복원된 정관…무지와 오해의 1970년대 가족계획[선데이서울로 본 50년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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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1970년대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 부부가 보건복지부와 대한가족협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산아제한 캠페인’에 출연했다. 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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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5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험한 경고(?)가 횡행하던 시절, 50년전만해도 ‘출산장려’는 커녕 ‘출산협박’ 표어가 난무했다.

인구증가율이 폭발적이던 그때를 지나 2023년 현재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1명. 이제서야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곳에 미래가 없고, 다둥이 부부가 애국자라고 외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장려금을 내걸고, 많이 낳을수록 지원도 다양해졌다.

반세기라는 세월이 짧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180도로 국가정책이 달라진 사례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먹고살기 빠듯했던 50년 전 ‘가족계획’ ‘정관수술’ ‘피임’이라는 국가시책은 일반 국민들 사이에 숱한 해프닝을 유발했다.

‘선데이서울’은 239호(5월 13일)에 당시 가족계획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천태만상의 시행착오를 소개했다. 대부분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때로는 가정이 깨질 위기도 맞는 등 결코 작은 일은 아니었다.

국가시책에 따라 빠짐 없이 콘돔을 사용해온 부부, 어느 날 아내가 임신을 했다. 분명히 콘돔을 사용했는데 임신이라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병원을 찾은 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뭔가 짚이는 게 있었던지 콘돔을 가져오라고 했고, 이를 유심히 살펴본 의사는 혀를 끌끌 찼다.

콘돔에 미세한 구멍이 나 있었던 것. 당시 보건소에서는 공짜로 콘돔을 나눠줬지만 부부는 자꾸 받으러 가기가 부끄럽고 미안해 한번 쓴 콘돔을 깨끗이 씻어 다시 썼다. 이른바 콘돔 재활용, 1회용이라는 것을 몰라 다시 쓴 알뜰함이 자칫 이혼을 부를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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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괴산의 한 콘돔생산업체에서 직원이 성형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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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시용품을 방불케하는 여러가지 디자인의 콘돔. 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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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체온법으로 피임을 결심한 또 다른 여성. 매일 열심히 체온을 재고, 꼼꼼히 기록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 달 내내 체온 그래프가 똑같이 수평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대체 언제가 임신 가능성이 높은 배란일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체온계 사용법을 몰라 엉뚱한 것을 눈금으로 알고 계속 적은 상황이었다. 국가적인 피임 시책에 맞춰 처음 쓰게 된 체온계 사용법을 몰라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또 다른 케이스. 남편이 정관수술을 받은 지 2년, 탈(?) 없이 잘 지내오던 어느 날 아내가 덜컥 임신했다. 아내는 당황했고 남편은 의심했다. 누가 봐도 아내의 불륜을 의심할 상황이었다.

부부는 급기야 남편이 수술한 병원을 찾았고, 아뿔싸! 검사 결과 남편의 정관이 자연 복원된 걸 확인했다. 당시 정관수술의 자연 복원율은 1000명에 한 명꼴이었다. 0.1% 확률이 멀쩡한 가정을 파탄낼 뻔한 셈이다.

갓 태어난 아기 이마에 임금 ‘왕(王)’자가 보여 해괴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전설처럼 크게 될 인물이라고 좋게 생각해도 되련만 이상한 소문이 났다. ‘기형이다’ ‘루프 피임 중 임신하면 생기는 자국이다’ ‘그런 아기는 수명이 짧다’라는 소문까지.

부부는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결국 출산을 도왔던 의사에게 궁금함을 물었다. 의사는 “마흔이 넘은 산모가 난산을 겪고 있어 진공 흡입기를 사용한 자국이다”라고 설명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피임과 관련해 엉뚱한 소문을 만들었고, 부부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했다. 모두 무지와 오해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성(性)을 외면하고 숨기고 살아온 세월이 길었던 당시 갑자기 피임, 가족계획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맞닥뜨리며 생긴 부작용이었다. 제발 ‘아이 좀 덜 낳자’던 나라는 이제 ‘아이 좀 많이 낳자’고 출산율 높이기에 발 벗고 나섰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갖가지 문제가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줄어들고 유아용품 시장이 무너지고, 어린이집·유치원에 이어 초·중·고·대학 순으로 문을 닫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시작된 붕괴는 도시, 그리고 수도 서울까지 밀려오고 있다. 머지 않아 나라를 지킬 군인도, 세금으로 나라창고를 채울 국민도 부족한 시대를 맞게될 처지이다. 공짜로 뿌렸던 콘돔은 이제 돈을 주고 사야 한다.

50년 전, 국내 콘돔제조사는 단 하나였다. 당시 콘돔은 주로 수출품이었다. 전국 보건소에서는 국민들에게 무료로 콘돔을 나눠줬다. 원래 공짜면 귀히 여기지 않는다. 아이들이 풍선으로 알고 골목길로 다니며 가지고 놀았다. 그 시대에 좋은(?) 장난감이었다.

최근에는 마약 밀수꾼들이 가끔 사용한다고 한다. 물이 1리터 이상 들어갈 정도로 신축성이 좋아 물통으로도 사용된다니 정말 다용도다. 우리나라는 그 콘돔의 세계적 수출국이다.

자유기고가 로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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