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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 사진이 지금 얼굴?…꽁꽁 싸맨 정유정이 부른 신상공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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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 A씨의 이름과 사진, 생년월일 등의 신상이 온라인상에 공개됐다. 이름·나이·출신지에 키와 혈액형까지 공개한 것은 경찰이 아닌 탐정을 자처하는 한 유튜버였다. 그는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공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장 영상이 주는 충격 때문인지 신상공개의 파장은 컸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A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주소가 급속도로 퍼지며 많은 네티즌들이 비난 댓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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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관련해 한 유튜버가 가해 남성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카라큘라 탐정사무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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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자 스스로도 인식했듯이 대상이 범죄 용의자라 하더라도 개인이 공공연하게 누군가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는 명예훼손죄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가 될 수 있다. A씨의 신상이 공개된 영상엔 “너도나도 공개해버리면 걷잡을 수 없다. (공개자도) 처벌은 꼭 받아야 한다”는 우려와 “국가도 하지 않는 일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응원이 맞섰다. ‘공감’ 표시는 후자에 더 많았다. 논란이 일자 사건 피해자 측이 언론 인터뷰에 나서 “가해자 신상 공개에 대해 사전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법적 테두리 안에서 신상정보를 공개하자는 입장”이라고 밝히는 일도 이어졌다.

때마침 같은날 신상공개 결정이 내려진 ‘또래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정유정이 마스크와 모자로 중무장하고 경찰서를 나서는 모습이 보도되자 “수사기관이 촬영한 범인 식별용 얼굴사진인 머그샷(Mugshot)을 공개해야 한다”거나 “마스크 등의 착용을 금지해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이날 공개 결정으로 언론에 제공된 건 언제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증명 사진 한 컷이었다. 김봉석 성균관대 사회학과 초빙교수는 “분노라는 감정을 공유하면서 자신이 건전한 사회구성원임을 확인하고 타인과 교감하려는 자연스런 시도가 신상공개라는 테마로 응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본권” vs “알권리”…신상공개 압력 강화



충격적인 강력범죄가 거듭될 때마다 형사처벌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들에 대한 신상공개를 원하는 사회적 압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09년 강호순의 연쇄살인사건이 알려지며 중앙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강호순의 신상을 공개했고, 일부 언론은 공개하지 않으며 논쟁에 불이 붙었다. 피의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신상 공개 반대론과 국민의 알 권리 및 공익적 목적이 더 중요하다는 찬성론이 팽팽히 맞섰고, 결국 국회는 2010년 특정강력범죄처벌법과 성폭력범죄처벌법을 개정해 피의자의 신상 정보 공개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개정 법률이 시행된 2010년 4월 15일부터 현재까지 경찰에 의해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50명에 달한다. 살인 피의자가 40명, 성폭행 피의자가 1명, 아동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피의자가 9명이다.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여론이 커짐에 따라 공개 건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4월 ‘강남 납치·살인 사건’ 당시엔 피해자를 직접 납치·살해한 황대한·연지호, 범행을 주도한 이경우, 그 배후로 지목된 재력가 부부 유상원·황은희 등 피의자 5명의 신상이 한꺼번에 공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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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19년 ‘n번방 사건’ 당시 피의자들의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나흘 만에 200만명이 동의 할만큼 전 국민적 분노가 일자 경찰은 조주빈 등 6명의 신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 공범인 ‘부따’ 강훈 등은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상공개 처분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신상공개 제도를 규정하는 법률이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에 반한다는 취지로 위헌법률심판제청도 신청했다. 법적 다툼은 법원이 모두 기각하며 강훈의 완패로 끝났다.



“실효성 강화해야”vs“수사나 재판에 악영향”



최근에는 신상공개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하다는 여론도 비등하고 있다. 정유정과 같이 공개된 사진과 현재 모습을 비교할 수 없거나, 차이가 큰 사례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택시기사·동거녀 살해 사건’ 피의자 이기영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 모두 공개된 사진이 실제 얼굴과 크게 달라 논란이 됐다. 일부 전문가들이 “사회적 이목을 끄는 범죄자의 신상 공개는, 알권리도 충족될 뿐더러 사회적인 응징을 받고 있다는 공감대를 확산시켜 잠재적인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등의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도 신상공개 강화 여론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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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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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켠에선 이같은 흐름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상공개는 대중들의 처벌 감수성에 부합하는 측면은 있지만 구체적인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며 “공정한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쳐 발생하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만에 하나 누명을 쓴 사람의 신상공개에 따른 여론 재판이 주는 부작용은 가늠하기 힘들 거라는 우려다. 김 연구위원은 “국가의 피의자 신상 공개 강화 움직임이 사적 제제에 나서려는 이들의 동기와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도 자주 지적된다. 피의자 신상 공개는 경찰 3명과 외부 전문가 4명 등 7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범죄의 잔인성’ ‘피해의 중대성’ ‘피의자가 범죄자일 충분한 증거’ 등 조건을 따져 결정한다. 사례가 누적되고 있지만 아직 공개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가 선명하지 않다는 평가다. 결국 공개여부가 여론에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달 16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신상 공개 요건이나 공개 결정 주체 등이 명확하지 않아 법률유보 원칙 내지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는 전문위원 검토내용이 보고되기도 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신상공개 기준 체크리스트를 정교하게 세분화하고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전문가들이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언론에 공개되는 사건 뿐만 아니라 특강범에 해당되는 사건 모두를 신상공개위에 올리돼 현재 지방경찰청 단위에 주어져 있는 신상공개여부 판단 권한을 경찰청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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