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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푸틴 웃고 리라화 울고···불확실성 몰고 온 에르도안 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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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28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정의개발당(AKP) 당사 앞에 모여 대선 결선 투표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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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선 후 세계 경제 상황과 지정학적 위기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이 몰고올 불확실성으로 한동안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초고물가에도 저금리 정책을 펼쳐온 에르도안 대통령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후부터 리라화 가치는 사상 최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는 치솟고 있다.

세계 경제의 근심이 커지는 것과 반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장 크게 웃었다. 친러시아 노선을 고수할 것으로 보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당선에 푸틴 대통령은 “친애하는 친구여”라고 부르며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에르도안 재선에 리라화 하락···경제 정책 바꿀까


에르도안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29일(현지시간) 오전 리라화 가치는 달러당 20리라 안팎에서 움직이며 사상 최저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투자금융사인 웰스파고의 이머징마켓 담당자인 브렌던 멕케나는 CNBC에 “에르도안의 집권으로 리라화에 대해 상당히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며 2분기 말까지 달러당 23리라, 내년에는 25리라까지 환율이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집권이 세계 경제에는 ‘악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투자정보업체 텔리머의 경제분석가인 하스나인 말릭은 “에르도안의 승리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면서 “초인플레이션, 초저금리, 순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현재의 튀르키예 경제 상황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비정통적인 금리 정책에서 촉발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재임 시절 물가 상승 우려 속에서도 성장률 제고를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자국 통화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을 유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지난 5년 동안 리라화 가치는 달러 대비 77%나 하락했다. 추락하는 리라화를 부양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지난 1년 반동안 2000억달러 이상을 지출하면서 튀르키예의 순 외환보유고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반면 물가는 한때 85% 이상 치솟았다. 시장에 정부의 예측할 수 없는 규제 조치가 비공식적으로 끊임없이 도입되면서 2013년 이후 외국인의 튀르키예 주식과 채권 보유액은 약 85% 감소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재집권 후에도 이 같이 비정통적인 경제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선 승리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면서 “2년 간 중앙은행이 금리를 19%에서 8.5%로 인하해왔으므로 인플레이션 역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가가 금리와 함께 내려갈 것이라는 예측은 환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다. 아울러 국가 재정 관리를 위해 “국제적 신뢰”를 가질 만한 새로운 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튀르키예의 국가 신용도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튀르키예의 향후 5년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대비한 보험 성격의 신용파생상품 신용파산스와프(CDS) 비용은 지난 14일 이후 급등해 최근 6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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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선 결선투표가 열린 28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이스탄불에서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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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색한 푸틴, 속내 복잡한 미국


튀르키예 대선 결과를 놓고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는 희비가 엇갈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다음 임기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친러시아적 외교 노선은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튀르키예 대선의 또 다른 승자가 푸틴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동안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기조와 달리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도 어깃장을 놨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 기간에 외교 정책 변경을 시사한 바 없다. 푸틴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라고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미국을 향해서는 오히려 격렬한 반미 감정을 드러냈다. 결선 투표를 앞둔 유세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이 튀르키예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 바이든이 (야권에) 에르도안을 타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표를 얻기 위해 나토 회원국이자 동맹인 미국을 공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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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선 결선 투표가 열린 28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이스탄불에서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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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임기 동안 양국 관계 악화 요인은 쌓여 왔다. 2010년대에 튀르키예는 미국의 이슬람국가(IS) 퇴치 작전이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을 자극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2019년 미국은 튀르키예가 러시아제 S-400 방공시스템을 구매한다는 이유로 F-35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에서 퇴출시켰다.

에르도안 정권의 수명 연장은 미국의 중동 외교, 대러 제재 등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씽크탱크 채텀하우스의 터키 분석가 갈리프 댈러이는 “에르도안은 더이상 서구의 지배가 유효하지 않은 단계로 세계가 나아갔다고 믿는다”며 “이는 미국과 미국의 경쟁자(러시아·중국) 사이 지정학적 균형에서 튀르키예가 얻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밝혔다.

실제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곡물협정을 중재한 것에 대해서도 “서방으로부터 ‘잘했다’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익을 우선시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을 비롯한 튀르키예의 동맹국들은 국제 관계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까다로운 파트너를 5년 더 상대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 재선이 확정되자 푸틴 대통령은 “친애하는 친구, 진심으로 축하한다. 양국 관계를 우호적으로 강화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호혜적으로 협력하려는 기여를 높이 평가한다”고 메시지를 냈다.

반면 미국은 당장 흑해와 지중해의 연결로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제하는 튀르키예를 통해 러시아를 단단히 봉쇄하려는 전략이 동력을 얻기 힘들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한다”며 “나토 동맹국으로서 양자 이슈와 공동의 글로벌 도전과제에 대해 협력을 이어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유럽의 안보 및 안정을 위한 협력이 강화되길 기대한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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