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하버드대 로스쿨 서보현씨
/박상훈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광화문 인근에 묵고 있는데 연일 데모 열기가 뜨겁더군요. 이 에너지를 대화와 토론에 쓴다면 더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한국계 최초로 2013년 세계학생토론대회와 2016년 세계대학생토론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서보현(29)씨는 서울 시내서 열린 집회들을 보며 “호주나 미국에선 이런 열기를 거의 볼 수 없다”며 “민주주의를 보존하려는 에너지는 존경스럽지만, 합리적 토론과 논쟁으로 거리를 좁혀야 할 때 같다”고 했다. “한국은 모두가 하나로 뭉쳐 성공적으로 경제 성장을 일궜던 나라잖아요. 이제 하나가 아닌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서 통합을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것이 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주 국가대표 토론팀 및 하버드대 토론팀 코치로 활동한 그는 ‘좋은 논쟁’과 ‘토론의 기술’에 대해 쓴 자신의 책 ‘디베이터’(문학동네)의 한국 발간을 계기로 11~21일 한국을 찾았다. 8살 때 가족과 호주로 이민 가 외국인 친구들 틈에서 조용한 성격으로 지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토론팀에 들어간 일을 계기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 세계 토론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했고, 정치이론 전공으로 하버드대를 최우등 졸업했다. 2년간 기자로도 일했으며 현재 하버드 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사회가 양극화된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 그는 “(요즘은) 대놓고 논쟁을 벌이진 않지만 마음속에 상대를 향한 온갖 의심과 경멸, 미움이 커져 있는 상태 같다”고 했다. “불신을 꺼내 놓고 건강하게 소통하기보다 익명성 뒤에서 상대편에 대한 미움을 폭발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토론도 변질된다. 그는 “토론이 필요하면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자는 식의 ‘끝장토론’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토론은 대화를 마친 뒤 또 대화를 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해서 관계를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토론”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와 나 자신에 대해 배우고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진짜 이기는 것이죠.”
그는 이민자로서 갈등을 피하려고만 했던 어린 시절 자신을 예로 들며 토론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항상 웃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동조하는 척하는 건 진짜 자기 모습이 아니죠. ‘동의하지 못한다’는 말을 못 하는 것도 ‘사회의 병’입니다. 나를 적절히 보여줄 수 있는 토론의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토론 대회에서 1등을 해도 부모님과의 논쟁은 어렵다. 그는 가까운 사람과 ‘잘 싸우기’ 위한 기술로 ‘논쟁 전에 토론 주제에 이름을 붙일 것’ ‘논점이 흐려져 진척이 없을 땐 토론을 일단 끝내고 우리가 가진 공통점으로 돌아갈 것’ ‘토론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가꾸는 일이란 걸 잊지 말 것’을 조언했다.
[김민정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