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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할 수 없는 현대차 사고기록 분석장치...미국선 팔고 국내선 팔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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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할 수 없는 현대차 사고기록 분석장치...미국선 팔고 국내선 팔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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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는 잊을만하면 일어납니다. 대부분 대형사고로 이어집니다.

조사기관이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차량의 EDR을 확보하는 겁니다.

EDR은 사고기록장치(Event Data Recorder)의 영어 단어 앞 글자를 딴 줄임말입니다. 사고 직전 5초간의 기록이 저장돼 있습니다. 운전자가 브레이크나 가속페달을 어떻게 작동했는지부터 속도와 핸들 각도 등 차량 상태 전반 등이 사고 원인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자료가 모두 EDR에 담겨있습니다.

급발진 의심 사고 EDR 분석〈자료=JTBC뉴스룸〉

급발진 의심 사고 EDR 분석〈자료=JTBC뉴스룸〉




EDR에 암호로 남겨진 기록을 읽으려면 'EDR 분석기'가 필요합니다. 제조사가 만든 암호를 읽어내는 일종의 '리더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일반인은 정보 접근의 진입장벽이 생깁니다. 벤츠 BMW GM 폭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 상당수는 해외 B사의 'EDR 분석기'를 사용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B사 EDR 제품 하나면 시중에서 판매하는 자동차 대부분의 EDR 분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B사의 'EDR 리더기'로 분석이 안 되는 차가 있습니다. 바로 현대차와 기아차입니다. 현대차기아의 'EDR 분석기'는 현대모비스의 자회사 '지아이티(GIT)'가 제조합니다. 이 분석기는 국내에서 살 수 없습니다.


취재진은 국내 한 대학병원 연구원 A 씨를 만났습니다. A 씨는 교통사고를 유형별로 나누고 사고 직전 차량의 상태가 운전자의 어떤 상해로 이어지는지 연구 중입니다. 이 연구팀은 지난 2019년부터 국내 운행 중인 모든 차량의 EDR 분석기를 구입 중인데 유독 현대차와 기아차 제품만 구하지 못했습니다. A 씨는 영리 목적도 아니고 무상으로 달라는 것도 아니라면서 현대 기아차가 EDR 분석기를 팔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급발진 의심 사고차를 조사중인 국과수〈자료=JTBC뉴스룸〉

급발진 의심 사고차를 조사중인 국과수〈자료=JTBC뉴스룸〉




현대차기아 측은 취재진에 "국내법상 판매 강제 규정이 없고 개인 정보 등의 문제가 우려돼 개인에게는 (현대 기아차 EDR 분석기를) 팔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차들도 똑같은 상황인지 확인해 봤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B사의 EDR 분석기로 대부분 차량들의 분석이 가능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현대차 EDR분석기 〈사진=아마존〉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현대차 EDR분석기 〈사진=아마존〉




그런데 취재 중 기자가 현대 기아차의 'EDR 분석기'를 미국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5150달러(우리돈 약 670만원)면 아마존에서 온라인 직구로 현대차 EDR 분석기를 살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연방법으로 자동차 회사가 신차를 내놓으면 90일 안에 EDR 분석기를 누구나 살 수 있게 하라고 제조사에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시장에서는 일반 소비자부터 경찰, 보험사, 사고분석기관과 로펌, 병원 등 분석기가 필요한 곳이면 살 수 있는 겁니다.

취재진은 A씨에게 미국 시장에서 직구로 현대 기아차 EDR 분석기를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이미 그렇게 해 봤지만 분석이 불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아마존에서 직구로 산 현대차와 기아차 분석기를 한국서 출고된 현대차에 연결했더니 시스템 접속이 안 됐던 겁니다. 미국 현대 기아차의 EDR 분석기는 국내에선 활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난 현대차와 기아차의 EDR 분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고 피해자 혹은 가족이 현대차기아에 의뢰해 분석 결과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절차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는 피해자 처지에선 사고 차량 제조사가 분석한 EDR 자료를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지금까지 급발진 의심 사고 중 법정에서 제조사 책임이 인정된 사례는 1건도 없었습니다. 최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강릉 도현군' 급발진 의심 사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족은 차량 제조사와 벌이는 법정 다툼에서 제조사가 분석한 EDR 자료를 신뢰할 수 없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영석 한라대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겸임교수는 "현실적으로 차량 제조사 말고는 해당 EDR을 분석해 줄 곳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제조사가 EDR 분석기를 일반에 판매만 해도 이런 논쟁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차기아 측은 이에 대해 "최근 여러 급발진 의심 사고로 EDR 분석 논란이 많은 것을 고려해 향후 (EDR 분석기를) 일반에 판매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윤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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