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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이태원 참사

‘참사 200일’ 앞두고 떠난 가족의 생일 맞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태원 참사 2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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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5일 서울 중구 시민분향소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경철씨의 생일을 맞아 케이크가 놓여있다. 김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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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200일을 하루 앞둔 15일 오전 서울시청 앞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에 ‘30’ 숫자 초가 꽂힌 케이크가 놓였다. 케이크의 주인공은 이날 생일을 맞은 참사 희생자 조경철씨. 경철씨의 20년 지기 김용건씨의 어머니가 송편 두 팩과 함께 준비했다. 경철씨와 용건씨 모두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7남매 중 둘째인 경철씨는 한 살 터울 누나 경미씨(30)에게 친구이자 든든한 오빠 같은 존재였다. 어버이날 같은 행사가 있을 때 경미씨와 돈을 모아 엄마 박미화씨의 선물을 준비한 것도, 지금도 누나의 꿈에 나와 ‘엄마 잘 부탁한다’고 얘기하는 것도 경철씨다.

웃음이 많던 경철씨는 엄마에겐 애교쟁이였다. 경철씨는 박씨를 엄마 대신 ‘미화씨’라고 불렀다. ‘기억하겠습니다. 영원한 나의 껌딱지. 커피를 사랑하는 애교쟁이 조경철’ 박씨는 먼저 보낸 아들의 영정에 이같이 적은 쪽지를 붙여뒀다. 귓가에는 아들이 즐겨 부르던 윤도현 밴드의 노래가 여전히 맴돌고, 직접 조립한 커피머신으로 내리던 커피 향도 생생하다.

가족들은 먼저 떠난 경철씨의 생일을 맞아 이날 시민분향소 앞에 다 함께 모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큰누나 경미씨가 지난주 경찰과 충돌해 뇌진탕으로 병원에 입원한 탓에 계획이 틀어졌다.

경미씨는 지난 8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집회를 준비하던 중 경찰과 충돌했다.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였지만 경찰은 ‘집회시위 물품 반입은 금지된다’며 트럭에서 현수막과 피켓 등을 내리는 유가족들을 막았다. 항의하며 물품을 내리던 경미씨는 경찰의 팔꿈치에 밀려 3번을 뒤로 넘어졌고 머리를 바닥에 부딪혔다. 이날 다른 유가족도 갈비뼈에 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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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준비하던 중 경찰의 제지로 부상을 당해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병원에 입원 중인 희생자 조경철씨의 누나 조경미씨(30)가 15일 병원 야외 휴게공간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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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이나 외출이 어려운 경미씨는 동생에게도, 가족에게도 미안하다고 했다. “동생 생일에 가보지 못해 죄책감이 크죠. 그리고 이미 경철이를 하늘로 보낸 엄마 마음에는 (입원한) 저까지 잘못될까 하는 걱정으로 대못이 박혔을 거예요.”

경철씨가 떠난 지 200일이 다 돼가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머니 박씨는 야간근무를 마치고도 유가족 협의회 기자회견과 추모문화제에 힘을 보태느라 눈을 붙이지 못한다. 경미씨도 부상을 입은 뒤 지난주 직장을 잃었다.

경미씨가 1인 피켓 시위 중 만난 시민 중에는 ‘이제 이태원은 다 끝났는데 왜 이러고 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참사 당일 경철씨가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앞으로 이런 참사가 또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유가족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두 번 다시 저처럼 남동생을 잃는 참사가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특별법이 제정됐으면 하는 거예요” 경미씨가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아들의 생일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 “이렇게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언제 이렇게 컸을까 생각하며 아들과 술 한 잔 같이 기울였던 지난해 생일은 아득하기만 하다.

오후 4시30분쯤 서울광장 시민분향소 앞에는 김치찜과 수육, 파김치, 생일케이크가 놓였다. 평소 경철씨가 좋아하던 음식들이다. 박씨가 경철씨의 생일을 기리기 위해 집에서 직접 준비해왔다. 박씨는 “김치찜을 해달라고 했었는데 작년에는 바빠서 못 해줬다”고 했다. 다음 생일 때는 커피를 좋아하던 경철씨의 소원대로 커피볶는 기계를 사주려고 했지만 이룰 수 없게 됐다. 박씨는 음식을 놓으며 “(이제와서) 생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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