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왼쪽)과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중국 외교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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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 외교부장이 필리핀을 찾았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에 급속히 접근하는 필리핀을 중국 쪽에 묶어두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필리핀은 미-중의 치열한 전략 경쟁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줄타기 외교’를 이어갔다.
중국 외교부는 22일 자료를 내어 친강 외교부장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마르코스 대통령을 만났다고 밝혔다. 자료를 보면, 친 부장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1월 방중 기간 중 두 나라가 발표한 공동성명의 취지를 확인했다”며 “필리핀이 역사의 일반적인 추세를 정확히 파악해 지역 평화와 안정의 전반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두 민족의 근본적인 이익을 위해 행동하며, 대만·해양과 관련한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고 중국의 주권·안보·영토보전을 존중하는 등 약속을 실천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역사의 일반적 추세’나 ‘두 민족의 근본적 이익’까지 언급하면서 미국에 급속히 접근하려는 필리핀을 견제한 것이다.
친 부장의 이날 필리핀 방문이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모은 것은 미묘한 타이밍 때문이었다. 필리핀과 미국은 지난 11일부터 필리핀 전역에서 연합 군사훈련인 ‘발리카탄’(타갈로그어로 어깨를 나란히)을 벌이고 있다. 28일까지 이어지는 이 훈련은 최근 남중국해와 대만 인근에서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진 탓에 1만7600여명이 참여하는 최대 규모로 치러지고 있다.
이처럼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의 주요국인 필리핀의 외교 행보 역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필리핀은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기엔 ‘친중’ 노선을 분명히 했지만, 지난해 6월 마르코스 대통령이 취임한 뒤 분명한 ‘친미’ 외교를 하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중국과 영토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서필리핀해(남중국해)에서 우리 권리가 1㎡라도 짓밟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아세안을 제외한 첫 해외 순방국으로 지난해 9월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나아가 ‘발리카탄’ 훈련을 시작하는 날 미국 워싱턴에서 외교·국방장관(2+2) 회담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두 나라는 앞으로 5~10년에 걸쳐 ‘동맹 현대화’를 완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필리핀 국방 현대화에 필요한 레이더, 드론(무인기), 군용 수송기, 해안 방어와 방공 시스템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필리핀은 그 대가로 지난 2월 자국 내 군사기지 4곳을 미군이 추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이 가운데 3곳은 대만을 건너다보는 필리핀 북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어 대만 유사사태(전쟁)가 발생하면 중요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필리핀이 미국 일변도 외교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올해 첫 해외 순방국으로 중국을 택해 1월4일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났다. 친미 행보를 보이던 마르코스 대통령이 중국을 찾자 시 주석은 양국 간 최대 쟁점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다룰 직접 소통 창구를 열기로 합의했다. 필리핀 외교부는 이날도 마르코스 대통령과 친강 부장의 회담 결과를 전하는 입장문에서 “서필리핀해(남중국해) 이견이 양국 관계의 모든 게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며 “농업, 인프라 개발, 에너지, 과학기술 분야 협력은 양국 경제관계의 중요한 요소다.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두 나라의 인적 연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쪽에선 미국과 연합 훈련을 하며 다른 쪽으로는 중국과 경제 협력도 놓치지 않으려는 유연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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