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민주당, 주식 관련법 개정 입장 밝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주주권리 보호 취지
총선 앞두고 동학개미에 뜻깊은 소식이지만
기업 난색, 자본시장 룰 개편 진통은 풀어야
韓증시 장기 투자로 가는 정책 경쟁 주목돼
“윤정부가 추진하려는 주주친화 정책을 이 대표가 흉내낸 것 아닙니까.”(윤석열정부 관계자)
윤석열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물밑 신경전이 치열합니다. 최근 들어 주식 관련법 개정 입장을 앞다퉈 얘기하고 있습니다. 상법이나 자본시장법을 바꿔 주주 친화적인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입니다. 일반 개인투자자들인 ‘동학개미’들을 위한 법 개정을 하겠다는 것인 만큼 주목되는 소식입니다. 자본시장 룰을 바꾸는 파급력 큰 사안이기도 합니다. 올 하반기에 ‘게임의 룰’이 바뀔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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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문은 이재명 대표가 먼저 열었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천사백만 개미투자자 권익 보호를 위한 일반주주·더불어민주당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대표는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소수의 대주주들에게 부당한 이익을 부여하는 나쁜 관행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상법 개정안 처리를 강조했습니다. 해당 상법은 이용우·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입니다.
이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제382조의3) 조항을 수정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현행 상법에는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의원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로, 박 의원안은 ‘회사와 총주주’로 바꾸는 내용입니다. 두 법안 모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이 개정안이 처리되면 파장이 클 전망입니다. 이사회의 경영적 판단으로 주주에게 손실이 발생하면 주주들이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적분할 상장도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어, 위법 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각종 인수합병(M&A), 자사주 매매, 공개매수 등을 놓고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법이 개정되면 올해 거셌던 주주 행동주의 움직임이 앞으로 더 활발해질 전망입니다.
윤석열정부도 주식 관련법 개정을 준비 중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6월까지 자기주식(자사주) 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2분기에 전문가 등이 참석하는 세미나를 열어 복수의 자사주 제도개선안을 공개하고 관계부처·기관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을 할 것”이라며 “최종안 확정은 아니더라도 어느 방향으로 갈지 상반기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 (자료=이용우 민주당 의원실) |
최대 관심사인 ‘소각 의무화’ 방안도 열어 놓고 검토 중입니다. 특히 금융위 정책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강력하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안동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통화에서 “자사주 매입 후 일정 기간 내에 소각 의무화,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 금지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상법(341조 등)이나 자본시장법(165조)을 개정해야 합니다.
이같은 법 개정도 이재명 대표의 상법 개정 못지않게 자본시장에 미칠 파장이 큽니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이나예 연구원)에 추산에 따르면, 상장사들이 3년에 걸쳐 보유한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면 코스피가 3620으로 올랐습니다. 이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윤정부와 이재명 대표의 이같은 법개정 추진은 명분이 있는 제도개선 논의입니다. 그동안 이사회 이사들이 경영적 판단을 할 때 소액주주 이익보다는 대주주 이익만 고려했다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소액주주들이 회사의 의사결정이나 업무 집행에서 배제됐다는 반발도 컸습니다. 물적 분할과 상장을 통해 소액주주들이 주가 하락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국내 상장사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2021년 2조5408억원에서 지난해 3조1356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현대차(005380), KB금융(105560), 기아(000270), 메리츠화재(000060), 크래프톤(259960), 하나금융지주(086790), 신한지주(055550), 메리츠증권(008560), SK(034730), 메리츠금융지주(138040), 미래에셋증권(006800) 등이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혔다. (사진=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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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소각의 경우, 올해는 늘어났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소각에 나선 기업은 2.3%(자본시장연구원 집계)에 불과합니다. 소각 없이 기업의 부당한 지배력 강화에 악용되거나 매물로 나와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에 신설회사 신주를 배정하는 것도 논란이 많았습니다. 추가 출자 없이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쓰거나,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우호적 주주에게 매각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식으로 활용됐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같은 법개정에 불씨가 될 쟁점도 많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상법 개정론에 대해서는 소송만 남발될 우려가 제기됩니다. 필요한 인수·합병(M&A)도 주저하게 돼, 시장이 위축·냉각될 우려도 있습니다.
윤석열정부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검토 관련해 기업들은 난색을 표하는 상황입니다. 기업들은 언제든 자사주를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유인이 크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경기가 어렵고 증시 불확실성이 큰데, 효과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인 자사주 제도가 대폭 바뀌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큽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 조언을 종합해보면 크게 두 가지 당부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급할수록 돌아가라’입니다. 신현한 한국증권학회장(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은 통화에서 “무리수로 인한 후유증이 우려된다”며 소액주주뿐 아니라 자본시장 전반의 파장을 면밀하게 고려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둘째, 진정성입니다. 총선용 표심만을 노리는 정책은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싸한 ‘말의 성찬’은 있지만 제대로 된 추진 동력을 갖기도 힘듭니다. 결국 법 개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을 진정성을 가지고 절충하는 게 필요합니다.
‘밧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 금양 홍보이사는 최근 출간한 저서에서 “‘한국 증시는 장기 투자하면 안 된다’고 했던 이들의 콧대가 납작해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윤석열정부와 민주당이 ‘동학개미를 모십니다’라며 주주친화적 정책 경쟁을 나선 만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한국 증시의 장기투자가 안착되길 기대해봅니다.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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