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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세월호 9주기] 아홉 번째 봄, 아빠는 아직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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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 문종택씨 인터뷰]
참사 4개월 뒤부터 카메라로 영상 기록
생존자·유족 향한 2차 가해 여전한 사회
이태원 참사로 또 좌절… "똑같은 고통"
"기울어진 노란 리본 세우는 날 오기를"
한국일보

유튜브 채널 '4·16TV'를 운영하는 세월호 유족 문종택씨가 11일 경기 안산시 작업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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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링.’

11일 오후 4시 16분. 경기 안산시 단원구 ‘4ㆍ16TV’ 작업실 책상 위에 있던 문종택(61)씨의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지성이가 전화하는 거예요.” 옅은 미소가 피었다. 2014년 4월 16일, 문씨는 안산 단원고에 다니던 딸 지성양을 떠나보냈다. 이후 매일 이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는다. “알람 듣고 지인과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안부 묻는 게 좋더라고요.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의미도 있고요.” 벌써 아홉 번째 봄이다.

9년간 노란 리본 카메라 든 아빠

한국일보

경기 안산시에 있는 문종택씨의 '4·16 TV' 작업실. 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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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딸(5남매)을 잃은 그날 후로 문씨는 ‘지성이 아빠’로 ‘살아내고’ 있다. 광고ㆍ출판 업계에 몸담았던 그는 생업을 뒤로한 채 거리로 나섰다. 2014년 8월부터는 노란색 리본이 달린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세월호 관련 집회나 도보 행진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영상을 유튜브 채널 4ㆍ16TV를 통해 내보낸다. 지금까지 쌓인 영상만 1,300개. 하루 종일 찍은 영상을 26㎡(8평) 남짓한 컨테이너 작업실에서 밤낮 편집하다 잠드는 일상이다.

4월엔 더 분주해진다. 매년 이맘때면 세월호 유족이 참석하는 일정만 수십 개다. 거리가 멀고 규모가 작은 행사부터 찾는다. “몇 명 안 되는 참가자들과 손팻말 들고 마주 보다 말없이 서로 울곤 합니다.”

15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9주기 추모제에선 ‘쌍욕’이란 이름이 붙은 연극 무대에도 선다. 냉담한 언론과 권력을 향해 맘껏 울분을 터뜨리며 여전히 변하지 않은 한국 사회를 응시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한국일보

세월호 유족 문종택씨가 경기 안산시 '4·16 TV' 작업실에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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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씨는 9일 전남 진도 세월호 참사 해역에 갔다가 딸과 같은 반이던 생존자를 우연히 만났다. 20대 성인이 된 그가 겪었을 그간의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참사 당시 정부는 특례입학, 배ㆍ보상금 대책 등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생존 학생과 희생자 가족을 2차 가해로 내몰았다. “지성이 반 친구들이 가장 많이 생존했어요. 그런데 어깨 펴고 당당히 살아야 할 애들이 다 쭈뼛쭈뼛해요. 2차 가해를 넘어 사회가 보이지 않는 살인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일보

세월호 유족 문종택씨가 11일 경기 안산시 작업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 도중 눈을 감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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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9년 전 그날과 함께 그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 청소년 모임’ 소속 고교생들과 목포에서 행사를 마친 뒤 여객선을 타고 제주로 향하던 중이었다. 학생들은 소화기가 잘 비치됐는지 등 안전 점검에 열중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조금씩 변하고 있구나’ 하는 희망이 움텄다. 기대는 그날 밤 산산이 부서졌다.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서 또 아무 이유 없이 159명이 세상을 등졌다.

뭍으로 오자마자 이태원 참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진도항 방파제 등대 앞에 서면 아이들이 도란도란 속삭이는 소리가 마음으로 들려요. 이태원 골목에 서니 똑같이 젊은이들의 발자국 소리, 대화가 느껴졌습니다.”

이태원 유족들이 마련한 분향소에도 여러 번 들렀다. 그는 “참사 유족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전달되는 이야기가 있다”며 “똑같은 아픔의 길을 걷게 될 유족을 보니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목숨 걸고 끝까지 진상 규명할 것"

한국일보

세월호 유족 문종택씨의 '4·16TV' 스튜디오에 걸린 기록단 조끼와 응원 그림. 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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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하라.”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 사회는 세월호의 기억을 떨치고 싶어 한다. 4ㆍ16 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설 예정인 안산 화랑유원지 앞에도 ‘세월호 추모시설 반대’ 현수막이 수십 장 걸렸다. 문씨는 “과연 여기(안산)가 별이 된 희생자들의 고향이 맞느냐”고 되물었다.

그에겐, 유족들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진상규명이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2015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2017년),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2018년)가 나름의 조사 결과를 내놨지만, 침몰 원인은 끝내 밝히지 못했다. 문씨는 “유족들이 피눈물 흘려 싸워 얻어낸 결과가 이 정도”라며 “남은 진상규명도 우리가 목숨을 걸고 달라붙어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튜브를 통해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씨는 참사 10주기가 되는 내년 3월엔 10년의 기록 영상을 모은 장편 다큐멘터리(바람의 세월ㆍ가제)를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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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택씨의 작업실 벽에 한 시민이 만들어 준 노란색 방석이 걸려있다. 문씨는 가운데 기울어진 리본을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는 날 바로 세울 생각이다. 안다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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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씨 작업실 벽면엔 한 시민이 손수 만들어 준 노란색 방석이 걸려 있다. 방석 가운데 옆으로 누운 참사 상징 리본도 보였다. 2017년 3월 23일 참혹한 쇳덩어리 배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세월호가 옆으로 누워서 올라왔잖아요. 진상규명이 완성되는 날, 저 리본을 바로 세울 겁니다.” 다시 4월이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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