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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여보~ 소변에 피가, 방광암이래”…보험금 달라하니, 진단금 10%만 [어쩌다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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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암, 뇌하수체종양…암 보험금 분쟁
보험사, 입맛대로 판단…모순적 태도 도마위


매일경제

[사진 제공 = 연합뉴스]


‘자가당착’(自家撞着). 스스로에게 부딪힌다는 뜻으로,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서로 앞뒤가 맞지 않아 일치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오히려 자신의 다른 주장을 반박하는 모양새로 작용할 때 쓰는 말이죠.

암보험금 보험 분쟁에 있어서도 보험사가 자가당착 혹은 자승자박(자신의 언행 때문에 스스로 곤란하게 됨)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암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보험약관상 암의 정의에 해당해야 하고 암으로 진단이 확정돼야 합니다.

먼저 약관은 ‘암’이란 것을 통계청이 작성·고시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서 악성신생물(정상보다 빠른 속도로 자라나는 비정상적인 조직)로 분류되는 질병을 말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약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피부암, 갑상선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은 약관상 ‘암’으로 보지 않고, ‘소액암’ 내지 ‘유사암’으로 분류해서 보통 암 진단금의 10~20% 정도만 지급합니다.

다음으로 암의 진단 확정은 병리 또는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에 의해서 내려져야 합니다.

특히, 약관에 따를 때 암의 진단 확정은 병원에서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임상 의사에 의해서 내려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임상에서 수집한 조직이나 세포를 종양인지 아닌지 판독하는 병리 의사에 의해 내려져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병리 의사는 환자를 직접 외래에서 진료하지 않으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진단서를 발급하지 않고 조직검사결과지에 진단 내용을 기재합니다.

반면,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진단서는 환자의 주치의 또는 외래 진료를 하는 임상 의사가 발급합니다.

보험소비자와 보험사 간의 분쟁은 주로 병리 의사가 약관상 암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진단하지 않았지만 임상 의사가 암이라고 진단서를 발급하는 경우, 혹은 그 반대로 병리 의사의 진단 내용에 따르면 약관상 암으로 분류가 가능하지만 임상 의사가 암이 아니라고 진단서를 발급하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첫 번째 경우에 있어 최근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비침윤성 방광암에 대한 분쟁입니다.

매일경제

[사진 제공 = 연합뉴스]


사례를 통해 설명하겠습니다.

A씨는 소변을 보다가 피가 나와 병원을 방문했고 조직검사 결과 비침윤성 방광암이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비침윤성 방괌암은 종양이 방광 근육층까지는 침범하지 않은 경우를 말합니다. 이 경우 병리 의사에 의한 진단은 약관상 유사암에 해당하는 제자리암의 질병분류코드(D09)에 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A씨의 주치의(임상 의사)는 비침윤성 방광암이라고 하더라도 재발률이 높고 침윤성 방광암의 치료와 별 차이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방광암(질병분류코드 C67.9)으로 진단서를 발급했습니다.

A씨는 암보험금을 받기 위해 진단서를 첨부해 보험금 청구를 했는데, 보험사는 병리 의사가 작성한 A씨의 조직검사결과지에 의하면 A씨는 방광암이 아닌 방광의 제자리암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암진단금의 10%만 지급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반인인 A씨 입장에서는 의사가 암이라고 진단서를 발급했는데도 암진단금을 받지 못한다니 보험사에게 사기를 당한 것 같고 황당했습니다.

매일경제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사진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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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반대인 두 번째 경우의 사례입니다.

B씨는 시력이 나빠지면서 시야 장애가 생겨 병원을 방문했다가 뇌 MRI를 촬영하고 뜻밖에도 뇌하수체선종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B씨는 수술을 받고 임상 의사로부터 뇌하수체선종(질변분류코드 D35.2)이 기재된 진단서를 받았습니다.

B씨는 주변에서 따로 암보험금이 지급되는 병명이 아니라고 해서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았다가, 최근 뇌하수체선종에 대한 병리 진단 기준 변경으로 악성 종양으로도 진단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진단서에는 악성 종양으로 기재되지 않았지만 혹시 몰라 B씨는 암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앞서 방광암의 경우와 같은 논리라면, 병리 의사의 진단을 기초로 악성으로 진단할 수 있다면 암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나 보험사는 이번에는 입장을 바꿔 임상 의사가 악성 종양으로 기재한 진단서가 발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B씨로서는 병리 의사의 진단 결과에 의해 약관상 암진단이 확정됐다고 볼 수 있는 데도 보험사가 이를 거절하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앞서 두 사례와 관련, 법무법인 한앤율 한세영 변호사는 “경우에 따라 모두 암보험금을 100% 지급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나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나름의 근거가 있는 상황이므로 이를 이용해 보험금 지급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례에서 보듯이 각 사안에서 보험사가 주장하는 내용이 서로 반대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게 자가당착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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