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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폭탄 떠안지 않은 정부, "전기·가스 요금 올려" 전문가들 목소리에 응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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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 요금 추가 논의 당정 발표에
산업부 "요금 올라도 소급 적용 없다"
전문가들 "전기료 동결하면 한전채 100조" 경고
한국일보

박대출(오른쪽 두 번째)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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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과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2분기(4~6월)를 하루 앞둔 31일 가진 당정협의에서도 전기·가스 요금을 올릴지 결정하지 못한 채 추가 논의하겠다고 발표해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중에) 요금이 인상돼도 소급 적용은 없다"고 불 끄기에 나섰지만 당장 4월 요금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증이 커진다. 전문가들은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부실화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서라도 2분기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에너지 요금 관련 중장기 계획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폭염·난방비 감안하면 2분기가 요금 인상 골든타임"

한국일보

너머서울 등 노동, 시민사회 지역 단체가 3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 계획과 오늘 발표한 인상안 잠정 보류 및 인상 불가피 입장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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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는 이날 국민의힘과 당정협의를 마친 뒤 참고자료를 내고 "관계부처, 관련 공기업, 에너지 전문가 및 소비자 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 기회를 충분히 갖겠다"고 밝혔다. 이어 에너지 요금을 올려도 소급하지 않겠다며 "요금이 조정되면 그 시점부터 적용될 것"이라고 안내했다. 당장은 현재 요금대로 가고 혹시 나중에 오르더라도 그 시점부터 바뀐 수치가 적용된다는 설명이다. 한국전력공사와 가스공사도 같은 날 "2분기 요금 조정 관련 정부와 협의를 계속해 방안을 발표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전기료는 △전력량 요금 △기후환경 요금 △연료비조정단가로 구성되고 이 중 전기료 인상의 핵심인 전력량 요금, 기후환경 요금은 아무 때나 올릴 수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가스 요금을 정했던 가스공사도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승인권자(정부)가 비정기적으로 요금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당정은 추가 요금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는데 에너지 전문가들은 한전과 가스공사의 천문학적 손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2분기 요금을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전기료 동결 시 올 연말 한전채 누적 발행 규모가 100조 원을 넘는다는 전망이 나온다"며 "한전채를 추가 발행하면 민간기업들이 사채 발행할 때 힘들어지고 사채 이율을 높이는 부작용이 따른다"고 경고했다.

한전이 민간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오는 도매요금(SMP‧계통한계가격)은 30일 기준 킬로와트시(㎾h)당 236.64원(육지 기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전이 전기를 파는 소매 가격은 140.3원으로 파는 만큼 손해를 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전은 전기를 사 오기 위해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24일 기준 장기채권 올해 신규 발행 규모는 7조6,000억 원"이라고 밝혔다. 한전의 누적 회사채는 장단기, 해외채권을 합쳐 74조6,000억 원에 달한다. 고금리 속에 이자 부담까지 커졌다. 지난달 3%대 중반까지 내려갔던 한전채 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후 최근 다시 4.25%까지 올랐다.

올해 1분기 주택용 요금을 동결한 가스공사는 8조 원대였던 미수금이 3월 말 12조 원까지 불어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미수금은 가스공사가 수입한 가스의 판매 가격을 낮게 책정해 생긴 일종의 영업손실이다. 가스공사 역시 지난해 누적 채권이 26조7,000억 원에 달했는데 다시 올해 1분기 1조 원가량을 새로 발행했다.

유 교수는 "에어컨 소비로 전기료가 치솟는 3분기, 난방비가 본격적으로 느는 4분기, 총선이 있는 내년 상반기에는 요금을 올리기가 더 어렵다"며 "한전과 가스공사의 손실을 줄이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게 하려면 2분기에 전기·가스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라리 1년치 요금 계획안 미리 달라"는 요구도 나와

한국일보

2월 14일 서울 시내의 한 오피스텔 우편함에 2월 가스비 고지서가 끼워져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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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두고 혼란이 계속되면서 중장기 에너지 요금안이 나와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이현수 가스공사 소액주주 대표는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당정협의까지 열려 에너지 요금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졌다"며 "연간 인상 한도액, 분기별 금액을 예고하면 혼란도 덜할 것이고 선례도 있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 가격이 치솟은 2021년 연말 정부는 2022년 연간 전기·가스 요금 인상액을 미리 안내했고 변함없이 그대로 시행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며 이런 방안이 에너지 요금 인상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돌발 상황이 생기면 요금을 바꿀 수 있다고 미리 알리고 큰 틀에서 연간 인상액을 안내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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