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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서라!" 3번 경고조차 없다...'외부와 차단' 즉결총살 판치는 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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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이 북한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총살하는 등 극단적 인권탄압을 벌이는 핵심 목적은 외부정보에 대한 원천 차단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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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조사위 10주년, 북한 인권 ‘뒷걸음’. [일러스트=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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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통일부가 2017~2022년 탈북주민 508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해 공개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사형을 부과할 수 있는 범죄 조항을 크게 늘렸다. 그리고 탈북주민이 증언한 실제 사형 집행 사례의 근거는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비상방역법’에 집중돼 있다.

해당 조항은 각각 한류(韓流) 등 외부 문화 유입에 대한 단속과 코로나 확대를 막기 위한 국경ㆍ해안 봉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외형상으로 ‘법’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외부와 접촉하는 주민들을 즉결 총살할 수 있는 ‘초법적’ 규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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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북한 북부지역의 대표적 정치범 수용소인 `22호 관리소'가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운영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당시 발간한 보고서에서 민간 위성업체인 `디지털글로브'가 함경북도 회령의 22호 관리소를 촬영한 위성사진 수십장을 제시하며 "수용소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HRNK 촬영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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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은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 서구를 비롯한 한국 문화가 대거 유입되자 이를 ‘반동문화’로 규정했다. 관련 콘텐트를 접촉ㆍ유포하는 행위뿐 아니라 외국식 옷차림, 말투, 생활방식까지 단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당, 국가보위부, 사회안전성, 기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109연합지휘부’라는 대규모 전담 검열조직을 가동하고 있다.

특히 일반 외부 문화 유포 등에 최대 10년의 노동교화형을 규정한 것과 달리 ‘적대국’의 영화나 도서를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선 10년 이상이나 무기 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적대국은 한국과 미국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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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 시내의 농민시장, 일명 장마당. 북한 경제의 장마당 의존도는 70% 이상으로 옛소련 말기, 중국 개방 초기보다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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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은 이를 근거로 2020년 중국에서 한국의 영상물을 유입해 주민들에게 유포한 남성을 공개 총살했고, 2017년엔 한국 드라마를 유포한 남성이 사형 선고 직후 총살되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산 화장품 등을 판매한 사람들도 공개 총살 대상에 포함됐다.

외부 물자와 문화가 유입되는 국경 지역에서는 최소한의 형식적 사법절차도 무시한 사실상의 즉결 총살형이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코로나 방지를 명목으로 만든 비상방역법에 따라 국경경비대에 “서라고 3번 경고한 뒤에도 서지 않으면 사살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고 한다. 특히 2020년 이후엔 “국경봉쇄지역에 출입하는 자에게는 사전 경고 없이 발견 즉시 사살한다”는 방침이 주민과 국경경비대원에게 내려왔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실상 북ㆍ중 국경에서는 사전 경고도 생략한 자의적 총살이 공식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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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완 동아대학교 부산하나센터 교수가 발간한 '평양 882.6km 평양공화국 너머 사람들'에 실린 북·중 국경 초소의 사진. 강동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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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은 또 현장 총살이 아닌 일반 총살형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장마당이나 강변, 운동장 등에서 공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증언에 따르면 2018년 공개처형에는 1000명이 참관에 동원됐는데, 군중이 너무 많아 총살 이후 현장을 빠져나가는데 1시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2013년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포로 총살한 것과 유사한 방식의 기관총 연사로도 총살이 집행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탈북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2018년 함북 청진시 강변에서 자행된 공개 총살에서는 사격수 5명이 사형수에게 기관총 조준사격을 가했고, 기관총 연사는 이미 사망한 시신을 향해서도 계속해서 지속됐다고 한다.

김정은 정권이 외부와의 접촉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조치를 하는 것은 북한 사회가 김씨 일가가 수십년간 세뇌해 온 ‘지상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민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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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처형된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 위원장은 장성택 처형을 통해 권력 기반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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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정권은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유포되는 한류 등이 정권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판단해 최고의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한류 통제를 위해 대규모 109지휘부를 가동하고 있고, 북·중 국경의 경우 국경에 접근하는 주민은 물론 기존의 국경경비대가 주민들과 유착해온 관행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최전방 부대인 '폭풍군단'(11군단)을 배치해 무자비한 통제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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