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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사랑의 불시착' 퍼뜨렸다고 총살"…1600개 '참혹한 北인권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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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① "원산에서 16~17살 청소년 6명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고 아편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 받고 총살됐습니다. 2018년 평안남도 평성 시장에선 하이힐, 화장품 등 한국 제품을 뒷골목에서 팔던 사람이 체포돼 공개 총살됐습니다." 장면② "교화소 정문 꼭대기에 사람을 매달아 놓고 모든 수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을 쐈어요. 이후 시체에 돌을 던지라고 해서 돌무더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장면③ "중국에서 강제송환된 여성이 임신 8개월 상태로 구금됐는데, 분만유도제를 통해 강제 출산시키거나 신생아를 그대로 질식시켜 죽였습니다."

모두 실제 일어났던 장면들로, 지난 6년간 탈북민이 직접 증언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의 인권 유린 실태다. 통일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30일 공개했다. 북한 인권 관련 정부 차원의 공개 보고서로선 처음이다. 윤석열 정부가 인권 문제를 고리로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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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19일 딸 김주애와 함께 전술핵운용부대들의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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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개의 참혹한 증언



이날 공개된 보고서는 2017년 이후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해 탈북민 508명이 증언한 약 1600개의 사례를 담고 있다. 총살 등 공개 처형, 생체 실험, 영아 살해, 고문 및 비인도적 형벌 등 적나라한 인권 유린 사례부터 주민들에 대한 일상화한 감시와 표현의 자유 박탈 등 열악한 생활상이 담겼다. 앞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북한 내 인권 침해를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반인도 범죄"로 규정했다.

보고서에서 정부는 "북한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자의적 생명 박탈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살인 같은 강력 범죄뿐만 아니라 마약 거래,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 종교·미신행위 등 자유권 규약상 사형이 부과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도 사형이 집행됐다는 증언들이 수집됐다"는 것이다.

2020년 말 제정된 반동문화사상배격법은 "반동사상을 유입, 시청,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극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했는데, 실제 탈북민 다수는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한국 물품을 팔았다가 처형된 사례가 있다"며 이를 뒷받침했다. 2019년엔 지인들에게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공유한 사람이 노동교화형 4년에 처해졌다. 2020년 양강도에선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드라마가 대량으로 담긴 USB를 유포한 남성이 공개총살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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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인권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북한여성인권 사진 전시회에서 참석자들이 북한 인권 관련 사진을 살펴보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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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증언을 종합하면 북한에서 총살은 "처형대상자를 기둥에 묶은 후 머리, 가슴, 다리 부분에 3발씩 총 9발을 발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2018년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천 강변에선 기관총을 연사하는 방식으로 공개 처형이 이뤄졌다는 증언도 있었다.

공개처형, 폭력, 성착취, 노동 동원 등에 있어선 "아동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북한은 2019년 5월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UPR)에서도 "사형은 희생자의 유가족 등이 강력하게 요청하면 공개적으로 집행되지만, 매우 드문 경우"라며 공개 처형이 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공개 처형은 목격한 사람들에게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는 인권 침해다. 목격자 대다수가 "처형 장면을 보고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아 며칠간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밤잠도 못 잤다"고 증언했다.



"장애인에 생체실험"



김정은 정권에 반하는 듯한 언행을 하는 이른바 '말 반동'에 대한 처벌 사례도 다수 수집됐다.

2017년에는 한 여성이 집에서 춤을 추는 영상이 시중에 유포됐는데, 동작 중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모습이 보이자 해당 여성이 공개 처형됐다고 한다. 2018년에는 사적인 자리에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평가를 한 도당 간부가 주변의 신고에 의해 가족과 함께 체포된 뒤 행방불명됐다. 북한은 '인민반 제도'와 조직 내 '생활총화'를 통해 주민들이 서로서로 감시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함경남도에서는 노부부가 군인들이 염소를 훔쳐가자 "남한 괴뢰군보다 못한 놈들"이라고 말했다가 이튿날 체포돼 정치범으로 관리소에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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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유엔총회 산하 제3위원회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 인권담당인 제3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엔 웹TV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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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을 앓거나 지적장애인 등 정확히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83호'로 불리는 병원 또는 관리소에서 생체 실험이 자행된다는 증언도 나왔다. 보고서는 "북한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존재 자체를 불명예로 인식하는 것처럼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 당국이 장애인의 결혼과 출산을 제한하고 '난쟁이 마을'을 만들어 장애인만 따로 격리해 거주시켰다는 진술도 있다"고 설명했다.

탈북 과정에서 붙잡혀 돌아온 강제송환자, 특히 여성에 대한 잔혹한 인권 유린 사례도 보고서에 담겼다. 탈북을 시도하는 여성의 열악한 사정을 약점 잡아 브로커에 의한 매매혼, 성폭력이 빈번했으며, 구금된 뒤에는 강제 낙태를 당하는 경우도 다수 보고됐다. 보고서는 "구금 시설에서 여성에 대해 소지품 검사를 하겠다며 여러 명이 보는 가운데 나체 검사를 하고, 여성의 질 내부까지 직접 확인하는 체강 검사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이뤄졌다"고 명시했다.



정부 차원 첫 보고서



이번 보고서는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북한 인권 실태를 낱낱이 밝혀 대내외에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보고서는 정부가 북한 인권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실질적 해법을 찾는데 근본적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근의 북한 인권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고, 탈북민 증언이 상반될 경우 양측을 모두 반영해 균형적이고 객관적으로 작성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2016년 북한인권법 제정 후 정부는 매년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했지만, 북한의 반발과 탈북민 정보 유출 등을 이유로 3급 비밀로 분류해 비공개 처리했다. 통일부는 "이번 보고서가 북한 인권 분야의 공신력 있는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으로 배포하고 영문판 발간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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