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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오전까지 "尹 방미뒤 교체"…돌연 바뀌었다, 김성한 사퇴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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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30일 전격 사퇴했다. ‘고심 끝에’ 사의를 수용한 윤석열 대통령은 곧바로 후임 안보실장에 조태용 주미대사를 내정했다. 이미 김일범 의전비서관(12일), 이문희 외교비서관(27일)이 바뀐데 이어 윤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을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에서 안보실장까지 전격 교체되면서 큰 파장이 일 전망이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5시55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김 실장의 사의를 오늘 고심 끝에 수용하기로 했다”며 “후임 안보실장에 조태용 주미대사를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주미 대사 후임자는 신속히 선정해 미 백악관에 아그레망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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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1월 10일 용산 청사 브리핑실에서 순방 일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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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 50분 전인 오후 5시, 김성한 실장은 “오늘부로 국가안보실장 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입장문을 배포했다. 김 실장은 “1년 전 대통령님으로부터 보직을 제안받았을 때 한ㆍ미 동맹을 복원하고 한ㆍ일 관계를 개선하며 한ㆍ미ㆍ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고 썼다. 김 실장은 이어 “이제 그러한 여건이 어느 정도 충족됐다고 생각한다”며 “미국 국빈 방문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어 새로운 후임자가 오더라도 차질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특히, “저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와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 실장의 자진 사퇴와 관련해 이날 기자들과 만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안보실장 교체를 검토한 바는 없었다”라면서도 “대통령께서도 만류한 것으로 아는데 김 실장이 외교와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여러 차례 피력해 고심 끝에 수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 안팎에선 사실상의 경질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 곧바로 후임자가 내정돼 발표까지 된 데다, 김 실장은 이날 아침까지도 주변에 “윤 대통령의 신뢰는 여전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실 관계자는 28일까지만 해도 “미국 국빈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외교안보 수장을 교체한다는 게 상식선에서 맞지 않다”며 교체설을 공식 부인했다.

그렇다면 왜 이같은 ‘비상식적 인사’가 벌어진 것일까. 여권에선 1차적으로 한ㆍ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의 잇따른 실책이 교체 원인이란 말이 나온다. 특히, 한ㆍ미 합동 공연을 추진 과정에서의 문제가 컸다고 한다. 미국 측에서 먼저 한ㆍ미 가수 협연을 제안하며 BTS를 요청했는데, 김 실장 등 안보실 라인이 관련 보고나 조치 없이 그냥 보류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블랙핑크와 레이디가가의 합동 공연으로 정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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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조태용 주미 대사가 신임장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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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 실장 라인이 이 역시도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물론이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제대로 공유를 안 했고, 윤 대통령에게도 보고가 누락됐다는 것이다. 관련 사실을 다른 경로로 뒤늦게 보고받은 윤 대통령이 김 실장을 비롯한 안보실 라인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단순한 문화 공연 차원을 넘어, 국빈 방문 일정을 조율하는 한ㆍ미 간의 프로세스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양국 대통령의 부부동반 일정과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정상회담과 관련한 주요 문서 수 건과 관련한 보고가 누락됐고, 비공개로 진행된 한ㆍ미 주요 행사에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가 초청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실무격인 비서관들이 교체됐지만, 김 실장의 경우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즉각 교체 기류는 아니었다고 한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ㆍ미 협연 보고 누락 사건이 터진 뒤 김 실장이 힘들어했다”며 “그럼에도 한ㆍ미 정상회담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차질없이 준비하고, 성과를 낸 뒤 교체한다는 게 내부 컨센서스였다”고 전했다. 여론의 ‘토끼몰이’에 등 떠밀리듯 안보실장을 교체해선 안 된다는 기류도 강했다고 한다. 전날 “김 실장 교체를 검토한 바 없다”는 대통령실의 입장이 나온 배경이다.

분위기가 확 바뀐 건 이 날 ‘내부 패싱’ 문제가 재차 불거졌기 때문이다. 김 실장 바로 밑에서 외교안보 현안을 챙기는 김태효 안보실 1차장도 관련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실장을 중심으로 몇몇 사람이 정보를 독점했지만, 관련된 준비 작업은 전혀 진도가 안 나갔다”며 “김 차장까지 이른바 ‘패싱’을 당한 상황을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김 실장은 윤 대통령과 같은 대광초를 졸업한 50년 지기 친구 사이이기도 해 이날 전격적인 교체카드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참모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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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업무보고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규현 국정원장, 김성한 안보실장.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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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김 실장과 김 차장의 관계는 매끄럽지 못했다. 대선 캠프 때 김 실장이 외교안보 자문 그룹의 좌장으로 역할 했는데, 김 차장은 이와는 무관하게 물 밑에서 윤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사실상의 별동대로 활동하던 김 차장이 공식적으로 외교안보 라인 전면에 등장한 건 대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다. 김 실장은 외교안보분과 간사로, 김 차장은 같은 분과 위원으로 합을 맞추기 시작한 두 사람은 정부 출범 후엔 안보 실장과 1차장으로 함께 일했다. 그러나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보다 부딪히는 경우가 더 많았고, 대통령실 안팎에선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를 윤 대통령도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 새어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어서 임기 초반부터 ‘과연 케미가 맞겠느냐’는 우려가 퍼져있었다”며 “한ㆍ미 정상회담이라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 누적돼온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MB) 청와대 시절 김 차장이 이충면 신임 외교비서관의 상급자로 함께 일한 이력도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외교가에선 김 실장 교체가 대통령실과 안보실의 조직 개편으로 이어질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시시때때로 ‘세일즈 외교’를 언급하며 외교도 경제의 연장이라 강조하지만, 그간 안보실이 보안을 이유로 벽을 높게 친 탓에 비서실과 안보실 사이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평가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어떤 측면에선 비서실과 안보실의 소통 단절이 근본적 원인일 수 있다”며 “안보실장 교체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아 조직 개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권호ㆍ현일훈 기자 kw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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