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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양곡법엔 거부권, 간호법엔 함구…巨野독주에 與 이중잣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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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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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간호법 제정안(이하 간호법)에 대한 여당의 대응 방식이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확연하게 대비되고 있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를 기존 의료법에서 떼어내 새로 규정한 법안이다. 이를 통해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게 간호업계의 주장이다. 간호법은 지난달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본회의 직회부(直回附)가 결정됐다. 국민의힘 소속인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심사 거부를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로써 이르면 30일 간호사법은 본회의 표결이 이뤄진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의원총회에서 “우리나라는 의료관계인들이 의료법 체계 안에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데, 간호법만 별도로 떼 내면 다른 의료직역도 모두 법을 따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며 “의료대란을 일으켜서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정권에 타격을 주려는 목적으로 야당이 추진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본회의 표결을 하루 앞둔 29일 복지위 국민의힘 간사인 강기윤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간호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요청과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가 안 됐다”며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이후에야 논의가 시작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정말로 일방 처리를 하게 되면 그때 거부권 건의 논의를 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 23일 국회 문턱을 넘은 양곡관리법 개정안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정부에게 쌀을 매입할 의무를 지우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직회부를 거친 뒤 169석의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힘으로 밀어붙여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양곡관리법의 직회부 결정이 나기 전인 지난 1월부터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며 엄포를 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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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16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광주 송정매일시장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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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거대 야당의 일방독주로 입법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여당의 반응은 왜 이렇게 다를까. 당내에서는 “간호법은 윤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추진을 약속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이던 2022년 1월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3당이 간호법을 발의했고 정부가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간호법 제정이라는 숙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공식 공약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110대 국정과제,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 등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간호업계는 윤 대통령 발언을 고리로 “공약을 지키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도 “간호법은 윤 대통령도 공약했다. 국민 신뢰를 져버리지 않겠다면 간호법 제정 공약 약속은 이행돼야 한다”(복지위 소속 서영석 의원)며 공세를 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간호법은 대선 당시 ‘공약위키’ 등으로 추천을 받은 사안”이라며 “정식 공약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거부권 행사’로 맞서기에는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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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간호사법 등 7건을 본회의 직접 회부하는 법안에 관해 무기명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은 정춘숙 위원장(오른쪽)이 투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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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위에서 직회부 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동참한 것도 부담이다. 직회부는 해당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로 결정되는데 간호법은 재적위원 24명 중 16명 찬성으로 가결 요건(15명 이상)을 채웠다. 찬성한 16명에는 민주당 의원 14명과 정의당 의원 1명 외에 간호사 출신인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동의했다. 최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찬성표를 던진 것은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당연한 얘기”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원한 여당 복지위원은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도 찬성한 법안’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거부권 행사 카드를 꺼내기 무척 난감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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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간호협회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민트천사캠페인 민심대장정 발대식을 열고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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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업계의 방대한 조직도 개별 의원이 망설이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간호협회 회원은 약 26만명(2020년 기준)으로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세종시 제외)에 지부를 두고 있다. 이렇게 주요 선거마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규모다 보니 최대한 간호협회 여론을 살피는 모습이다.

실제 3·8 전당대회 경선 레이스 도중에도 천하람 대표 후보는 “간호법 제정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간호법을 위해 당에 가입한 당원이 적지 않아 전당대회에서도 이를 의식하는 후보가 많았다”고 말했다.

영남권 초선 의원은 “간호업계는 학생 시절부터 조직화됐기 때문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며 “강대강으로 맞서면 지역구 의원으로서는 표가 줄어드는 요인일 수 있어서 말을 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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