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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핏줄 500명 '정자 기증왕'…"근친상간, 멈춰달라" 엄마들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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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약 500명 이상의 ‘핏줄’을 뿌린 네덜란드 40대 정자 기증자가 근친상간 위험을 키운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가 무분별하게 정자를 기증한지 모르고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제발 정자 기증을 멈춰달라”고 호소했으나 거절당하자 소송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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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 출신인 40대 음악가 조나단 제이콥 마이어는 정자 기증으로 약 500여명의 자녀가 있다고 밝혔다. 사진 조나단 제이콥 마이어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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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 헤이그 출신의 음악가 조나단 제이콥 마이어(41)는 불임클리닉과 인터넷 등을 통해 전 세계 수백 명의 여성에게 정자를 기증해 500명 이상의 아이를 태어나게 했다.

마이어는 최소 13곳의 클리닉에 정자를 기증했는데, 그중 11곳이 네덜란드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임클리닉의 비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겨냥해 정자 기증 관련 웹사이트에도 홍보해 개인적으로도 정자를 기증했다고 한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마이어는 2007년께부터 정자를 기증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외모와 음악을 좋아하는 온화한 이미지가 여성들을 사로잡았을 거란 얘기가 나온다. 마이어의 정자로 아이를 낳은 여성은 네덜란드·호주·이탈리아·세르비아·우크라이나·독일·폴란드·헝가리·스위스·루마니아·덴마크·스웨덴·멕시코·미국 등에서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몇 명의 아이가 태어났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이어는 그의 정자를 받아 아이를 낳은 한 여성에게 “500명 이상의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그중 네덜란드에서만 최소 102명이 태어난 것으로 2017년 밝혀졌다.

네덜란드 정부는 당시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모든 클리닉에 마이어의 정자 사용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네덜란드에선 25명 이상의 아이를 낳거나 12명 이상의 여성에게 임신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은 근친상간이나 근친결혼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생물학적으로 수백 명의 ‘형제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의 심리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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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지난 1월 31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한 불임 클리닉 실험실에서 난자 세포질 내 정자 주입술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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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이어는 이후 케냐에서 거주하면서 여러 가명을 사용해 덴마크, 우크라이나 등의 클리닉과 소셜미디어(SNS) 홍보 등을 통해 계속 정자를 기증했다. 한 호주 부부는 덴마크 불임클리닉을 통해 6000유로(약 846만원) 이상을 지불하고 ‘루드’라는 이름의 남성 정자를 받아 아이를 낳았는데, 후에 마이어 정자를 받은 것을 알게 됐다. 이 엄마는 “창의적이고 똑똑한 남성으로 보여 선택했는데, 이토록 많이 기증한 줄을 몰랐다”면서 “정말 역겹고 화가 난다. 내 아이에게 수백명의 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전 세계 피해 여성들은 모임을 만들어 마이어를 생물학적 아버지로 둔 아이들이 장래에 연애나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우선 마이어에게 “더는 정자를 기증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마이어는 “사람들이 아이를 갖는 꿈을 실현하도록 돕고, 전 세계에 내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고 싶다”면서 거절했다.

이에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동의 인권을 위해 설립된 네덜란드의 도너카인드가 피해를 본 25가족을 대리해 최근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마이어가 가명까지 써서 정자를 기증하는 것을 막고 저장고에 있는 그의 정자를 모두 폐기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중 한 네덜란드 여성은 “2018년 SNS 광고를 보고 마이어 정자를 선택했는데, 그가 이미 100명 넘게 자녀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제 법정에 가는 것만이 내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했다. 법적 공방은 다음달 중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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