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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불법 웹툰 끝까지 쫓는다”…전세계 누비는 카카오엔터 ‘피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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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유통 대응 태스크포스(TF) 피콕팀

1년간 전세계서 불법물 1000만건 차단

일부 작가 정신적 고통에 절필까지

"불법물 근절 위해 끝까지 추적"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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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웹툰을 불법 유통하는 곳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한 커뮤니티 사이트. 사이트를 추천받은 곳 등 세세한 질문에 답한 지 이틀 만에 가입 승인이 났다. 가입에 성공했지만, 곧바로 게시물을 볼 수는 없다. 여러 활동 내역을 쌓아야만 한다. 게시물을 볼 수 있는 권한을 얻기까지 일주일. 불법 웹툰 관련 게시판에 들어가니 그곳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의 한 주소가 있다. 텔레그램에 접속하자 현지에서만 사용하는 여러 은어를 통해 신분 확인에 나섰다. 이를 통과하자 불법 웹툰이 유통되는 사이트 주소를 공유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콘텐츠를 지키는 ‘어벤져스’가 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불법유통 대응 태스크포스(TF) 피콕팀이다. 5인으로 구성된 이 팀이 지난 1년간 전 세계에서 차단한 불법 웹툰·웹소설은 1000만건에 달한다.

27일 경기 성남시 판교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피콕팀 소속 제노, 하니, 제이나(가명)와 권영국 PD를 만났다. 이들은 신원이 드러날 경우 향후 조사에 어려움이 생길 것을 우려해 가명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전세계 퍼진 불법물…뿌리 뽑기 위해 잠입 조사까지
카카오엔터는 지난 2021년 피콕팀을 꾸렸다. 피콕(P.CoK)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보호를 뜻하는 ‘Protecting the Contents of Kakao Entertainment’의 앞 글자를 따 만들었다. 카카오 웹툰과 웹소설은 2018년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에서 저작권 침해 사고가 발생하자며 이를 전담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6년부터 저작권 침해 문제를 담당해온 권 PD는 “불법사이트에서 주로 이뤄지던 불법 유통이 전 세계의 언어로 텔레그램, 틱톡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이뤄지기 시작했다”라며 “피콕팀은 현지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들로 구성해 그 어떤 어둠의 경로도 침투해 적발해낸다”고 말했다.

한국 웹툰의 인기가 높아지자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불법 유통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불법 유통 수법 또한 갈수록 교묘해져, 이를 적발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피콕팀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제노는 “현지에서 불법 유통 때 사용하는 은어, 새롭게 활용되는 플랫폼 등을 매일 공부해야만 한다”며 “최근 중화권에서는 틱톡의 유행에 힘입어 웹툰을 영상으로 녹화해 숏츠 플랫폼으로 공유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잠입 조사도 필수다. 신분을 감추고 대중에게 열린 커뮤니티에 먼저 가입한 다음 불법 유통 커뮤니티로 들어가는 통로를 공유받는 것이다. 하니는 “폐쇄적인 커뮤니티의 경우 다른 비공개 커뮤니티에서 공유받은 비밀번호가 필요하다”며 “비공개 커뮤니티에 잠입하기 위해서는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해 2021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923만7802건의 불법물을 차단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총 206개의 텔레그램 그룹을 폐쇄했다. 중화권에서는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 사이에만 7만680건의 불법물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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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불법유통 대응 태스크포스(TF) 피콕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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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물 유통에 좌절하는 작가들…절필 선언까지
불법 유통 차단은 작가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권 PD는 “작가는 1주일 내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작품이 국내에서는 10분, 해외에서는 3일 만에 불법 유통된다”라고 말했다. 불법 유통 때문에 창작 의욕이 땅에 떨어지기 일쑤다. 권 PD는 “이는 창작 의욕을 극도로 떨어뜨려 일부 작가는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절필을 선언하기도 해 우리가 느끼는 책임감이 크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생계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작가들은 정식 플랫폼에 기록된 조회수 등에 기반에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불법물이 유통되면 조회수가 크게 떨어지게 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를 보면 2021년 웹툰 불법 유통으로 인한 추정 피해규모는 약 5488억원에 달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의 웹툰과 웹소설의 인기가 높아지고, 불법물 유통 경로는 더욱 음지화 돼 피해 규모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피콕팀은 불법 유통 근절을 위해 인식 개선 캠페인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의 불법 사이트 운영자 및 이용자들을 직접 찾아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것도 노력의 일환이다. 이들은 “더 이상 불법물을 유통·소비하지 않겠다”는 불법 근절 선언 인증샷을 스스로 촬영해 온라인에 게시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피콕팀은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고 있지만 어려움은 남아있다. 각 국가별로 저작권에 대한 법과 인식이 달라 한국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권 PD는 “국내 불법 사이트 폐쇄를 위해서는 운영자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해외에 도메인이 있어 추적하기 쉽지 않지만, 사법당국이 지속적인 관심만 있다면 분명히 잡을 수 있는 부분인데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국내 저작권 관련 정책이 여러 기관에 산재해 있어, 저작권 보호가 필요한 입장에서 어떤 기관을 만나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라며 “기관을 일원화하거나 역할 분담이라도 명확히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불법 유통 대응 성과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1차, 2차 글로벌 불법 유통 대응 백서를 발간한 피코팀은 올해 상반기 중 3차 백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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