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웃음 피던 곳에 그을음만…나이지리아 4남매 참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부모와 다섯 자녀까지 7명 함께 거주

먼저 대피한 부모와 2살 막내 생존

쿠키뉴스

27일 오전 화재로 나이지리아 국적 어린 남매 4명이 숨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한 빌라. 사진=임지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밝은 아이들이었는데…”


골목길은 슬픔과 애도로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썩하게 지나간 자리엔 매캐한 탄내가 가득했다. 27일 새벽 집 안에서 일어난 화재로 나이지리아 국적의 어린 남매 4명이 안타깝게 숨진 그 골목길이다.

불은 이날 오전 3시28분 경기 안산시 선부동 한 3층짜리 빌라 1층에서 일어났다. 그로부터 12시간도 지나지 않은 오후 2시20분, 집은 새카맸다. 유리창이 모두 떨어져 나가 주방 겸 거실과 방 2개 구조로 이뤄진 집 내부가 훤히 보였다. 검게 탄 주방 기구와 집기류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빌라 입구엔 아동용 자전거와 유모차, 킥보드 등이 그대로 남았다. 이곳에 살았던 아이들의 흔적이었다. 검게 그을린 건물 앞에서 마주친 피해 아이들 유족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화재 당시 집 안에는 나이지리아 국적의 50대 A씨와 40대 아내 B씨, 그리고 아이 5명이 있었다. 불이 난 것을 안 A씨 부부는 이제 두 살인 막내와 먼저 대피했다. 다른 자녀들은 미처 구하지 못했다. 이 불로 11세·4세 딸과 7세·6세 아들은 하늘의 별이 됐다. A씨 부부는 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경찰과 소방의 합동 감식 결과, 불은 지상 1층 203호 출입문과 인접한 거실 바닥에서 난 것으로 조사됐다. 현관 쪽 벽면 콘센트와 연결된 멀티탭에서 합선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쿠키뉴스

27일 새벽 불이 난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한 빌라 1층에 아이용 자전거와 킥보드, 유모차 등이 놓여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씨 부부를 기억하는 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하며 “밝고 착한 아이들”이었다고 기억했다.

나이지리아 국적의 마이클 씨에 따르면 아이들은 성격이 밝고 사이도 돈독했다. 한국어가 아직 서투른 첫째, 둘째 아이는 국제 다문화대안학교를 다녔다. 한국 생활에 열심히 적응하는 중이었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도 “빨래 건조대에 늘 아이들 옷이 많았다” “한국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안 낳는데, (그들의) 다복한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A씨 부부가 이번 화재로 잃은 아이들 외에 아이가 더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이들이 선부동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가깝게 지냈다는 김모씨는 A씨 부부에 대해 “참 좋은 사람들”이라며 “고향에서 키우는 아이들이 더 있는 것으로 안다. 사고 난 아이보다 더 큰 아이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지인들은 A씨 가족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생계를 위해 한국에 온 성실한 사람들로 기억했다. A씨 부부를 도와 온 정모(59)씨는 이들에 대해 “국내에서 각종 고물을 수집해 수출하는 사업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A씨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던 정씨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A씨 부부가 둘째 아이를 출산했을 당시 첫째 아이를 일주일 동안 대신 돌봐주기도 했다. 정씨는 당시 본인 집에서 함께 지낼 당시 밝게 웃는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쿠키뉴스

2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한 빌라 1층에서 불이 나 나이지리아 국적 어린 남매 4명이 숨졌다. 주민들 사이에선 골목길마다 양쪽으로 차가 주차돼 소방차 진입이 쉽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사진=임지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선 소방차 진입이 쉽지 않았던 것을 두고 쓴소리가 나왔다. 화재가 난 현장은 다세대주택이 밀집된 지역이다. 이웃들은 골목길마다 양쪽으로 차가 주차돼 이날도 소방차 진입이 쉽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날 현장에 출동한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40여분 만인 오전 4시16분 진화를 완료했다.

30년 이상 이 동네에 살았다는 주민 C씨는 “지금은 사고가 나서 정리된 것이 이 정도다. 밤이면 여기 주차된 차가 너무 많아서 위험하다”며 “소방차가 들어오기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과 대화하는 도중에도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안산시는 이날 화재현장을 찾아 사고 수습 및 피해현황을 점검하고 구호물품을 지원했다. 안산시 관계자는 “(A씨 가족이 퇴원하면) 이재민 임시거주시설 통해서 거주공간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사망자들의 시신을 부검 의뢰하는 한편, 부모 등을 대상으로 자세한 화재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이날 화재로 A씨 가족 외에도 같은 건물에 살던 나이지리아인 3명과 우즈베키스탄인 2명, 러시아인 1명 등 6명이 경상을 입었다.

안산=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