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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장하준 “‘주69시간’은 시대착오적···문제는 생산성이지 노동시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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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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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런 일 없게 노동시간 규제
그것을 자유로 여기면 전근대적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임금을 낮춰서 경쟁하려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봅니다. 중국은 임금이 한국의 4분의 1이고, 베트남은 중국의 3분의 1입니다. 노동시간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주 69시간을 일해도 주 100시간 일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이렇게 갈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죠.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기술 개발하고 교육·연구에 투자해 젊은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1970년대도 아니고 지금 그런 어젠다가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장하준 런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현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장하준은 10년 만에 낸 신작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 출간을 기념해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장하준은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일할 자유’에 대해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에 나온 내용을 언급하며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할 자유’는 18~19세기 사고방식이다. 1905년 미국 뉴욕주에서 하루 16시간 일하던 제빵사들의 노동시간을 하루 10시간으로 제한하자, 대법원이 이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런 자유는 (개인과 구조를 함께 보는) 사회과학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라고 말했다.

“주어진 상황에서의 자유도 있지만, 그 상황을 가져온 구조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독극물을 쓰는 위험한 공장에서 일하면 병들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일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공장에서 쓰는 유해물질을 규제하고,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겁니다. 그것을 자유라고 하는 건 전근대적입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마늘·코코넛·소고기·초콜릿 등 18가지 식재료를 통해 경제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책이다. 장하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게 경제논리로 결정된다. 경제를 이해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의미 없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수학 공식과 통계, 어려운 전문 용어가 아닌 친숙한 음식 이야기로 알기 쉽게 다가가기 위해 썼다”고 말했다. 책은 가난과 부, 성장과 몰락, 자유와 보호, 공정과 불평등, 금융 자유화와 금융 감독, 복지 확대와 축소까지 경제 전반의 영역을 다룬다.

코코넛 열매를 논하면서 노동시간과 생산성의 문제를 다룬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 못사는 나라 사람들은 게을러서 가난하다며 “코코넛 나무 아래서 코코넛 열매 떨어지기만 기다린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그런 일은 있지도 않고, 코코넛 열매에 맞으면 죽는다”며 반박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더 오래 일한다.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가난하고 ‘더운’ 나라 사람들은 독일인, 프랑스인보다 60~80% 오래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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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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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해서도 “감세하면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해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증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세율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법인세가 낮은 게 좋다면 모든 기업이 법인세율이 10%도 되지 않는 파라과이로 가야겠지만, 법인세가 30%인 독일에 가서 장사를 한다. (파라과이는) 사회간접자본이 취약하고 치안과 노동력의 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며 “세금은 ‘가성비’의 문제다. 세금을 거둬서 공공서비스를 강화하고 복지를 통해 노동력의 질을 높이면 세금을 더 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 관계 중요하지 않은 일본은
정치 이익 위해 무역 버릴 수 잇어
일본 주도 한·미·일 공조 조심해야


장하준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미국이 겉으로는 중국을 공격적으로 대하지만 사실은 실용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다. 미국의 생산기반이 많이 없어졌고 중국에서 많이 들여오는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중국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협력하는 관계”라며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 한쪽에 확실히 붙어야겠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일관계에 대해선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경제 중 하나이며 무역의존도가 15%밖에 안 된다. 일본은 무역 관계가 중요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쪽을 버리고 한쪽을 택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일본이 추구하는 한·미·일 공조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자기 땅을 갖고 자급자족하는 지주라면, 한국은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집안에 가깝다. 일본이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할 순 없다. 실용주의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제일 좋은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국제정치학적 시각으로만 보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후속편


장하준은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우려되는 금융위기에 대해선 “2008년 금융위기의 후속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2008년이 제대로 종료된 게 아니다.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막은 것이지 근본적 개혁이 없었다. 0%에 가까운 낮은 이자를 유지하면서 양적팽창을 해 돈을 풀어 엄청난 자산거품이 끼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때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하는데 주식시장은 역사상 최고치를 거의 매주 경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시장 국제화로 위기가 어디에서 터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장하준은 복지와 돌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출생률이 세계 꼴찌인 것을 우려하면서 노동시간을 늘리려 한다. 복지제도를 통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걸 도와주고 기업들이 성차별을 하지 않도록 제도를 갖춰야 한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되지 않도록 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책엔 식재료별로 장하준이 즐겨 만드는 요리의 레시피가 소개돼 있어 흥미와 입맛을 돋운다. 그는 그중 가장 잘 만드는 음식으로 ‘가지 파스타 베이크’를 꼽았다. 볶은 가지와 파스타, 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이용한 요리다.

경향신문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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